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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제맥주 가격의 절반이 세금… 종량세로 바꿔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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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더,오래] 황지혜의 방구석 맥주여행(3)

미니멀 라이프를 지향하면서 맥주는 짝으로 쌓아놓는 이율배반적인 삶을 사는 맥주 덕후. 다양한 맥주를 많이 마시겠다는 사심으로 맥주 콘텐츠 기업 비플랫(Beplat)을 운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다양한 맥주 스타일, 한국의 수제 맥주, 맥주를 맛있게 즐기는 방법 등을 소개한다. <편집자>

제천 봉양읍 솔티마을에서는 여섯 농가가 1만9834㎡ 규모의 홉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황지혜]

제천 봉양읍 솔티마을에서는 여섯 농가가 1만9834㎡ 규모의 홉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사진 황지혜]

2018년 9월 초 충북 제천시 봉양읍 솔티마을. 하늘로 쭉 뻗어 올라간 선명한 초록빛의 덩굴 사이로 150명이 넘는 외지 사람이 속속 모여들었다. 맥주의 풍미를 만들어내는 재료인 홉을 수확하는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주머니마다 한 가득씩 홉을 딴 후 솔티마을의 맥주 양조장인 뱅크크릭 브루잉에 들러 향긋한 수제맥주를 마시며 바비큐 파티를 즐겼다. 지난 4월에는 한 여행사가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 솔티마을의 맥주 양조시설과 홉 농장을 견학하는 프로그램을 내놔 인기를 끌기도 했다.

6차산업의 핵심이자 청년실업 고민해결사

수제맥주가 농업·제조업에서 상업·관광업까지 아우르는 6차 산업의 핵심 아이템이자 청년 실업의 고민 해결사로 떠오르고 있다. 수제맥주는 소규모로 제조되는 맥주로 국내에서는 맥주 양조 시설(담금·저장조) 120㎘ 이하인 양조장에서 만든다.

제천 솔티마을에는 지난 2015년 맥주 양조장이 들어선 이래 여섯 농가가 작목반을 구성해 1만9834㎡의 밭에서 홉을 재배하고 있다. 고추와 오이를 주로 키우던 농가들이 홉으로 작물을 바꾸면서 소득이 크게 늘었다. 현재 솔티마을을 비롯해 경기 청평, 전북 고창, 강원 홍천 등에서 홉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1980년대까지만 고랭지 농업의 주요 작물이었지만 대기업들이 수입산으로 눈을 돌리면서 사라졌던 국산 홉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거의 전멸했던 국산 맥주용 보리가 전국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제주도에서는 국내에서 새로 개발된 보리 품종으로 맥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경남 남해군 서면 인근 들녘에 자란 청보리. [뉴시스]

거의 전멸했던 국산 맥주용 보리가 전국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제주도에서는 국내에서 새로 개발된 보리 품종으로 맥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사진은 경남 남해군 서면 인근 들녘에 자란 청보리. [뉴시스]

보리도 마찬가지다. 거의 전멸했던 국산 맥주용 보리가 전국 곳곳에서 싹을 틔우고 제주도에서는 국내에서 새로 개발된 보리 품종으로 맥주가 만들어지고 있다.

또 수제맥주 양조장은 각 지역의 특색을 담고 있어 여행 아이템으로 주목받는다. 뱅크 크릭(bank creek)이라는 양조장의 이름에는 제천(堤川)이라는 뜻이 담겨있고 주변에서 생산된 농작물로 맥주를 빚는다. 여기에 효모가 살아있는 수제맥주의 경우 양조장에서 가장 신선한 상태로 마실 때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수제맥주 양조장을 중심으로 여행의 저변이 눈에 띄게 넓어지고 있다. 기존 여행사들이 투어 상품을 내놓는가 하면 맥주 여행 스타트업도 생겨났다. 특히 수제맥주는 고용효과 측면이 부각되고 있다. 소규모 제조업이다 보니 자동화된 무인 설비로 맥주를 생산하는 대기업에 비해 고용 효과가 20배 이상 크다.

대기업과 수제맥주의 고용효과 비교. [제작 현예슬]

대기업과 수제맥주의 고용효과 비교. [제작 현예슬]

청년고용에 있어서도 다른 산업을 압도한다. 전체 103개 수제맥주 회사의 청년고용 비율은 77.5%로 운수(5%), 정보통신서비스(21%)는 물론이고 숙박및음식점(63%)에 비해서도 크게 높은 수준이다.

시설 투자가 선행되는 제조업인 데다 맥주 유통(상업)까지 연계되다 보니 ‘맥주 경제’를 기대하는 강원도 삼척시, 경북 청도군 등 지방자치단체는 수제맥주 육성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수제맥주 시장 400억원, 전체 맥주시장의 1% 

이렇게 수제맥주의 경제 순기능이 주목받고 있지만 업계의 실상은 초라한 수준이다. 2017년 말 기준 수제맥주 시장 규모는 약 400억원으로 전체 맥주 시장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수제맥주 양조장이 빠르게 늘고 있지만 대부분 영세한 수준에 그치고 있다.

수제맥주 시장이 도약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세 구조다. 한국은 맥주의 원가에 세금을 매기는 ‘종가세’ 체계를 택하고 있다. 소품종을 대량생산하는 대기업에 비해 다품종을 소규모로 생산하는 수제맥주는 원가가 높을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 유리한 세금 체계 때문에 애초 공정한 경쟁은 기대할 수가 없다. 결국 이런 세금 구조 때문에 가격이 비싸져 소비자는 수제맥주에 쉽게 손을 내밀지 못하게 된다.

선진국들은 대부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생산량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 ‘종량세’를 채택하고 있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한국을 포함해 오직 다섯 국가만이 종가세를 채택하고 있다.

수제맥주 종량세 종가세 비교. [제작 현예슬]

수제맥주 종량세 종가세 비교. [제작 현예슬]

한국수제맥주협회에 따르면 종량세가 도입돼 수제맥주 양조장이 350개까지 늘어난다면 1만여 명의 직접 고용이 이뤄지고 농업, 서비스업 등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4만6000개 이상의 일자리가 창출된다.

이와 함께 맥주는 다른 주류와 비교해 과도한 세금을 내고 있다. 와인에는 30%의 주세가 적용되고 전통주의 주세는 5%에 불과하지만, 맥주에는 무려 72%의 주세가 붙는다. 주류에는 주세와 함께 교육세, 부가세가 붙기 때문에 수제맥주 소비자가격의 절반 정도는 세금이라고 보면 된다.

또한 각종 규제도 수제맥주 업계의 발목을 잡고 있다. 맥주 생산량을 측정하는 유량계의 경우 실질적인 역할을 못 하고 있지만 양조장에서는 규제에 발맞추기 위해 유량계 관리와 수치 체크에 의미 없는 에너지를 쏟고 있다.

맥주 산업은 규제 변화에 큰 영향을 받는다. 2002년 국내 처음으로 소규모 맥주 제조가 허용되면서 전국에 100개가 넘는 양조장이 생겨났다. 그러나 양조장에서 생산된 맥주의 외부 유통이 금지된 탓에 활로를 개척하지 못하고 얼마 안 가 양조장 수가 반 토막 났다.

지난 2014년 수제맥주를 외부에 유통할 수 있게 되면서 다시 양조장 수가 3년 만에 40개 이상 늘어났다.

국내 맥주제조 면허 수. [제작 현예슬]

국내 맥주제조 면허 수. [제작 현예슬]

수제맥주 업계에 대한 제도적 지원 시급  

꿈틀거리기 시작한 수제맥주 업계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시급하다. 이 시기를 놓치면 한국 맥주는 그저 ‘소맥용’이라는 인식에서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소비자가 다양한 맥주에 눈을 뜨면서 맥주 수입량이 매년 사상최대치를 경신하고 있지만 대응할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 지금 현실이다.

이제 수제맥주의 판을 키워야 한다. 제도가 바뀌면 한국의 수제맥주가 맥주의 본고장 독일로, 영국으로, 벨기에로, 미국으로 수출될 수 있다. 또 해외 관광객들이 맥주 양조장에 방문하러 한국을 찾게 될 것이다.

우리도 충분히 맥주 계의 ‘슈퍼스타’를 키울 수 있다. 이미 국내 수제맥주 업계는 충분한 역량을 갖췄다. 10개에 달하는 국내 양조장이 세계 주요 맥주 대회에 나가 수상하는가 하면 국내 맥주 전문가들이 국제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나서고 있다.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 있는 수제맥주 업계에 이제 국가가 손을 내밀 때다.

황지혜 비플랫 대표·비어포스트 객원에디터 jhhwang@bepla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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