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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멜레온 위장크림 퇴출? 軍 "먼거리서 소용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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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곰신(군에 입대한 남자친구를 둔 여성을 뜻하는 ‘고무신’의 준말)이 남자친구에게 보내는 위문품에 빠지지 않는 품목이 있다고 한다. 바로 ‘사제’ 위장크림이다.

[이철재의 밀담]

시가행진 중인 멕시코 해병대. 안면위장이 위압적이다. [사진 멕시코 해병대]

시가행진 중인 멕시코 해병대. 안면위장이 위압적이다. [사진 멕시코 해병대]

짙은 색의 위장크림을 얼굴이나 신체에 칠하면 눈에 덜 띄게 된다. 위장크림의 목적은 얼굴색을 어둡게 해 캄캄한 밤에 안 보이도록 하는 게 아니다. 그런 목적이라면 흑인은 위장크림을 바를 필요가 없다. 하지만 흑인도 위장크림을 바른다. 얼굴이나 피부색이 주변 환경과 다르기 때문에 색대비 효과로 눈에 띌 수도 있고, 빛에 반사되면 쉽게 들킬 수 있기 때문에 어두운 색상의 위장크림을 발라야 한다.

안면위장용 위장크림을 바르고 있는 육군 병사. [사진 Jiminpapaㆍ육군]

안면위장용 위장크림을 바르고 있는 육군 병사. [사진 Jiminpapaㆍ육군]

물론 군에서 보급 위장크림을 나눠준다. 예전에 보급용 위장크림이 없어 먹지나 구두약을 바르거나, 신문지를 태웠던 때와 비교하면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 그런데도 민간회사에서 위장크림을 팔고, 인터넷 쇼핑몰에서 따로 코너를 둘 정도로 사제 위장크림이 인기를 끌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보급 위장크림은 잘 지위 지지 않는 게 장점이지만, 동시에 피부의 땀구멍을 막아 피부 트러블을 일으키는 단점도 있다. 신세대 장병이 선뜻 보급 위장크림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다.

한 인터넷 쇼핑몰의 '사제' 위장크림 코너.

한 인터넷 쇼핑몰의 '사제' 위장크림 코너.

그래서 사제 위장크림은 다들 ‘저자극’을 내세우고 있다. 천연 추출물 성분으로 만들거나 자외선 차단 기능을 추가하거나 케이스 안에 여자친구 사진을 넣는 공간을 마련한 제품도 있다. 군복을 입은 남성이 거울을 보며 정성스럽게 얼굴에 위장크림을 바르는 모습이 마치 여성이 콤팩트를 바르는 모습과 비슷하다. 그래서인지 위장크림을 ‘소년의 첫 색조 화장’이라고 부른다.

지난 9월 9일 열병식에서 북한군 특수부대이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북한군도 안면위장을 하는데, 모든 훈련에서 안면위장을 하지는 않는다. [AP]

지난 9월 9일 열병식에서 북한군 특수부대이 시가행진을 하고 있다. 북한군도 안면위장을 하는데, 모든 훈련에서 안면위장을 하지는 않는다. [AP]

그런데 앞으로 위장크림의 사용이 줄어들 전망이다. 육군이 안면위장에 대해 재검토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안면위장을 완전히 없앤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야전에 훈련만 나가면 무조건 위장크림을 바르고, 헬멧 위장포에 풀을 꽂는 게 타당할지 따져보자는 것이다.

한밤중 미 육군의 아파치 헬기가 야시장비로 이라크 무장세력을 발견했다. 신체에서 나오는 열로 포착했다. 이런 장비 앞에서 안면위장은 별 소용이 없다. [유튜브 캡처]

한밤중 미 육군의 아파치 헬기가 야시장비로 이라크 무장세력을 발견했다. 신체에서 나오는 열로 포착했다. 이런 장비 앞에서 안면위장은 별 소용이 없다. [유튜브 캡처]

육군이 위장크림과 안면위장을 검토하는 배경엔 현대기술의 발달 때문에 위장의 개념이 달라진 점이 있다. 먼 거리의 대상을 또렷하게 보는 전자광학 카메라, 신체의 열을 탐지하는 열상 장비, 지상에서 움직임을 포착하는 레이더 등이 나오면서 두껍게 안면위장을 하더라도 적에게 발각될 수 있게 됐다. 또 보병이 컴뱃 고글이나 야시장비를 달 경우 위장크림을 바를 얼굴의 넓이도 줄어들게 된다.

미 육군 병사가 안면크림을 바르고 있다. 이 병사가 입은 전투복이  BDU다. [사진 미 육군]

미 육군 병사가 안면크림을 바르고 있다. 이 병사가 입은 전투복이 BDU다. [사진 미 육군]

또 미군의 실전 경험에 따르면 안면위장은 가까운 거리에서 효과가 있지만, 먼 거리에선 안면위장을 안 한 경우와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군사 월간지 ‘플래툰’의 홍희범 편집장은 “미군은 지휘관이 현장 상황을 보고 안면위장 실시 여부를 결정한다”고 말했다.

육군 관계자는 “지금까지 안면위장의 위장성을 측정하지 않았다”며 “얼마나 위장이 되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안면크림을 안 바른 장병을 혼냈다. 안면위장 상태를 군기의 상징으로 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육군 교육사령부는 위장 전반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육군은 ▶야간 ▶매복ㆍ정찰 작전 ▶근접전이 예상되는 상황에서만 반드시 안면위장을 하고, 나머지 경우 지휘관이 알아서 판단하도록 지침을 바꿀 것으로 보인다.

아이벡스는 소과 염소속 동물이다. 이 사진에선 아이벡스가 몇마리일까? 정답은 3마리다. 이처럼 주변 환경 속에서 몸을 감추는 위장에 뛰어난 동물이 있다. [사진 위키피디어]

아이벡스는 소과 염소속 동물이다. 이 사진에선 아이벡스가 몇마리일까? 정답은 3마리다. 이처럼 주변 환경 속에서 몸을 감추는 위장에 뛰어난 동물이 있다. [사진 위키피디어]

위장은 눈에 덜 띄게 하거나 다른 물체로 보이도록 하는 기술이다. 자연에서 배운 눈속임이다. 동물은 포식자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반대로 먹이가 눈치채지 않도록 위장한다. 군사에선 ▶주변 환경과 비슷하게 보이거나 ▶점이나 줄무늬를 그려 윤곽을 흐리게 하고 ▶주변이 밝을 경우 그에 맞춰 빛을 내는 방법으로 위장한다.

군사용 위장의 역사는 제법 길다. 로마 시대 지중해의 해적은 배를 바다색으로 칠해 은폐했다고 한다. 19세기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세운 영국 육군은 빨간색 전투복을 입어 ‘레드코트(Red Coat)’라는 별명을 가졌다. 그러나 1899~1902년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제2차 보어전쟁 때 빨간색 전투복은 표적과 같은 역할을 했다. 남아프리카 초원에서 빨간 전투복의 영국 육군은 멀리서도 너무 잘 보였기 때문이다. 사상자가 늘자 영국 육군은 카키색 전투복으로 바꿨다.

2011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촬용한 미군. 미군이 아프카니스탄군과 상의하고 있다. 왼쪽 둘째 장교가 OCP가 그려진 ACU를 입고 있다. 나머지는 UCP의 ACU를 입고 있다. 한눈에 봐도 OCP가 UCP보다 눈에 덜 띈다. 미 육군은 일부 전투복에서 사용하던 OCP를 2015년부터 모든 전투복으로 확대했다. [사진 미 육군]

2011년 아프카니스탄에서 촬용한 미군. 미군이 아프카니스탄군과 상의하고 있다. 왼쪽 둘째 장교가 OCP가 그려진 ACU를 입고 있다. 나머지는 UCP의 ACU를 입고 있다. 한눈에 봐도 OCP가 UCP보다 눈에 덜 띈다. 미 육군은 일부 전투복에서 사용하던 OCP를 2015년부터 모든 전투복으로 확대했다. [사진 미 육군]

현대 군사용 위장의 대표는 전투복이다. 미 육군은 1952년 제2차 세계 대전 때부터 써오던 M1943 전투복을 OG-107 전투복으로 교체했다. 민무늬 녹색 전투복이다. 단색 전투복보다 패턴을 넣은 전투복이 더 위장효과가 있다는 연구에 따라 1981년 BDU를 채택했다. 야간에 적외선으로 탐지하는 야시장비가 나오면서 BDU엔 적외선 차폐 물질을 발랐다. BDU를 다리미로 다릴 경우 적외선 차폐 코팅이 닳게 된다. 그래서 다리미 사용을 금지했는데 당시 이를 무시하는 미 육군 장병이 제법 있었다고 한다.

BDU는 패턴(위장무니)가 특정 지형에만 사용할 수 있어 범용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래서 미 육군은 모든 지형에 위장효과를 거둘 수 있는 ACU를 보급했다. 그런데 ACU가 당초 목적대과 달리 모든 지형에서 위장효과가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다. 위장무늬인 UCP 때문이다. UCP는 컴퓨터가 사막ㆍ정글ㆍ설원 등 자연환경과 도심의 지형색을 조합해 만들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모든 환경과 비슷한 패턴을 그리기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2015년 OCP란 패턴을 그린 ACU를 보급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11일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서 공군 F-15K 편대가 플레어를 뿌리며 축하비행을 하고 있다. 전투기의 기체는 대개 회색으로 칠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지난달 11일 대한민국 해군 국제관함식에서 공군 F-15K 편대가 플레어를 뿌리며 축하비행을 하고 있다. 전투기의 기체는 대개 회색으로 칠한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위장패턴은 전투복뿐만 아니라 전차ㆍ장갑차ㆍ트럭 등 각종 장비도 위장패턴을 넣는다. 군함과 군용기는 회색 계열로 칠한다. 바다와 하늘이 파란색으로 보이지만 먼 거리에선 회색 계열로 바뀐다. 또 회색은 거리감이 덜 느껴지고, 가시성도 떨어진다.

길리슈트를 입은 영국 육군과 프랑스 육군의 저격수들. [사진 영국 육군]

길리슈트를 입은 영국 육군과 프랑스 육군의 저격수들. [사진 영국 육군]

길리슈트를 입은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어디 있을까. [히스토리채널 방탄조끼단 유튜브 캡처]

길리슈트를 입은 사람을 찾기 쉽지 않다. 어디 있을까. [히스토리채널 방탄조끼단 유튜브 캡처]

빨간 원 안에 길리슈트를 입은 사람이 엎드려 있다. [히스토리채널 방탄조끼단 유튜브 캡처]

빨간 원 안에 길리슈트를 입은 사람이 엎드려 있다. [히스토리채널 방탄조끼단 유튜브 캡처]

길리슈트는 헝겊 조각을 잘게 잘라 이어 붙인 뒤 주변 자연물을 덮는 위장복이다. 주로 스나이퍼(저격수)가 입는다. 숲이나 정글에서 길리슈트를 입은 스나이퍼를 찾기가 건초더미에서 바늘 찾기만큼 어렵다. 스코틀랜드 사냥터 관리인들이 삼베 조각을 옷에 달고, 머리에는 넝마 두건을 뒤집어쓴 게 길리슈트의 조상이다. 최근 ‘배틀그라운드’ 등 슈팅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길리슈트는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선물이 돼버렸다.

미츠페넷 헬멧 위장포를 쓴 이스라엘군이 소총으로 조준을 하고 있다. [사진 이스라엘 국방부]

미츠페넷 헬멧 위장포를 쓴 이스라엘군이 소총으로 조준을 하고 있다. [사진 이스라엘 국방부]

이스라엘군은 전 세계의 추세와 달리 아직도 올리브색 민무늬 전투복을 입는다. 그러나 머리엔 두건을 헬멧 위에 덧대어 쓴다. 모양이 버섯과 닮았다. 이스라엘은 풀과 나무가 드문 지형이 많다. 멀리서도 핼멧의 윤곽선이 그대로 드러나기가 쉽다. 그래서 헬멧 위장포를 쓰면 윤곽선이 이그러져 구분이 힘들다. 이 헬멧 위장포는 유대교 고위사제가 쓰는 두건인 미츠네펫(Mitznefet)을 닮았다고 해서 미츠네펫이라 불린다.

사브의 기동위장시스템인 바라쿠다 위장막을 두른 독일 육군의 박서 장갑차. [사브]

사브의 기동위장시스템인 바라쿠다 위장막을 두른 독일 육군의 박서 장갑차. [사브]

적외선 탐지 장비 화면에 나타난 모습. 왼쪽 원이 바라쿠다를 씌운 전차, 오른쪽 원이 안 씌운 전차. [사브]

적외선 탐지 장비 화면에 나타난 모습. 왼쪽 원이 바라쿠다를 씌운 전차, 오른쪽 원이 안 씌운 전차. [사브]

이제 위장은 사람의 눈만을 속이는 방법이 아니다. 탐지센서로부터 모습을 감추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래서 장비 위에 덮어 적 항공기로부터 숨기는 위장막은 최근 열ㆍ자외선을 차단하고 전파를 흡수하는 기능까지 갖췄다. 스웨덴의 사브가 만든 미래형 위장막 바라쿠다가 대표적 사례다. 창(탐지수단)이 날카로워지면 그에 맞서 방패(위장수단)도 튼튼해지는 법이다.

미 육군의 신형 위장막 ULCANS을 덮은 차량. [사진 Fibrotex]

미 육군의 신형 위장막 ULCANS을 덮은 차량. [사진 Fibrotex]

미 육군은 내년부터 신형 위장막인 ULCANS를 보급한다. 이 위장막은 이스라엘 기술이 들어갔다. 바라쿠다처럼 센서의 탐지를 막는 기능이 있다.

지난해 서울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 나온 가짜 탱크 디코이. 적의 눈을 속이는 디코이(Decoy)한국 육군 주력전차 K1A1과 모양과 크기가 똑같다. [중앙포토]

지난해 서울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ADEX)에 나온 가짜 탱크 디코이. 적의 눈을 속이는 디코이(Decoy)한국 육군 주력전차 K1A1과 모양과 크기가 똑같다. [중앙포토]

위장의 개념도 달라졌다. 항공기나 인공위성에서 보면 실제 무기로 착각하도록 만든 디코이(decoy) 또는 더미(dummy)라는 장비가 나왔다. 적외선 탐지에 일부러 걸리도록 열을 내는 장치가 들어 있다.

영화 '공각기동대'의 광학미채. 메타물질 연구가 진행하면 SF가 아닌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 될 것이다. [유튜브 화면 캡처]

영화 '공각기동대'의 광학미채. 메타물질 연구가 진행하면 SF가 아닌 현실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이 될 것이다. [유튜브 화면 캡처]

판타지 영화 해리포터의 투명 망토와 SF 영화 공각기동대의 광학미채는 아예 투명인간으로 변신시켜준다. 미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는 메타물질 연구를 후원하고 있다. 메타물질은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인공물질이다. 빛을 산란시켜 반사하거나 흡수하지 않고 뒤로 흘려보내는 성질을 갖고 있다. 메타물질 안에 물체를 넣으면 아예 보이지 않도록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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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 전문 자유기고가인 최현호씨는 “완벽한 위장은 없다. 더군다나 최근 기후변화로 지구의 자연환경이 급격하게 변하고 있기 때문에 위장이 더 힘들어진다”며 “한국군도 위장에 대한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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