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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진 글씨를 보고 속이 후련해지고 싶다면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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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9호 20면

윤광준의 新생활명품 <91> 에센바흐 모빌룩스

요즘 즐겨 찾는 음식점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좌식 테이블 일색인 한식당이 점점 가기 싫어진다. 미묘한 변화는 사실 꽤 오래전부터다. 밥 먹고 일어날 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단번에 일어나지 못하고 테이블을 집거나 반 바퀴 정도 돌아야 한다. 함께 한 이들이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어야 한다. ‘청년인 척하더니 순 뻥이구먼 완전 노인네야 노인네 .’ 이러니 식당가기 전 좌석부터 확인하는 버릇이 생길 수밖에.  


백세 시대라지만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나이를 먹을수록 건강 나이와 신체 나이가 불화하기 시작한다. 몸이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서글픔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 마음은 몸속에 들어있는 법인데 마음만 앞선다는 게 뭔지를 알겠다. 노화의 노골적 증상들은 이제 마음으로도 가릴 방법이 없다.

후배들과 만나면 마냥 젊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어느새 사십대를 넘겼기 일쑤다. “벌써!”라는 탄식이 나올 만하다. 그들이 나이 먹는 동안 나라고 멈췄을 리 없다. 오랜만에 나를 본 후배들 또한 늙어버린 모습에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가는 세월이야 어쩔거나. 공휴일과 일요일에도 어김없이 늘어나는 이자마냥 나이 먹는 일 또한 마찬가지다. 노안이 찾아와 안경을 들었다 놨다 하는 후배들을 보니 작은 위안이 되긴 한다. “니들이라고 별수 있겠어.”

확대경은 길거리 좌판에서나 사는 물건인 걸까

요즘 나오는 스마트 폰엔 글자 확대 기능이 들어있다. 사용자들의 연령을 짚어보면 반수 이상은 이 기능을 기다렸을 터다. 잔글씨 볼 때마다 짜증을 냈던 이들이 어디 한 둘인가. 스마트 폰은 그렇다 치고 잔글씨 가득한 신문과 책은 어떻게 읽을까.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노안 증상은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다. 누가 이를 자랑스러워할까. 드러내 놓지 못하는 당혹감은 젊은 척하는 이들이 더 크다.

안경잡이인 이들은 외려 빨리 적응해 간다. 용도에 맞는 돋보기 안경을 맞추면 되니까. 처음엔 그런대로 버틸 수 있다. 해가 지나면 점차 안경의 개수가 늘어난다. 책 읽을 때와 TV 볼 때가 다르기 때문이다. 내 생활공간에만 두세 개의 안경을 번갈아가며 쓴다. 보이지 않는 것만큼 답답한 일은 없다. 노화의 증상에 대처하는 방법이란 언제나 번거롭고 불편하며 옹색하기만 하다.

안경만 가지고 해결되지 않는 일이 점점 늘어난다. 세상은 잔글씨로 가득하다. 포장지에 써져 있는 용법과 특징은 도대체 어떻게 읽을 것인가. 로션 병에 가득 쓰인 내용은 또 뭐란 말인가. 이래저래 짜증나는 일 투성이다. 시력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 큼직하게 확대된 글씨가 보인다면 속까지 후련할 게다. 쓸 만한 확대경이 절실해 진다.

요즘 부쩍 좋은 물건 하나 추천해 달라는 이들이 늘었다. 검색하면 다 나올 내용인데 왜 내게 물어보는 걸까. 이유를 알았다. 실물을 보지 못하고 사는 불안감이 컸다. 선택의 내용이 너무 많아 무엇을 결정해야 할지 모르는 게 더 큰 문제였다. 평생 관심 가질 일 없는 광학 용어와 수치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알 턱이 없으니까. 잘 모르니 아무거나 사게 된다. 용도와 제 눈의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확대경은 별 쓸모가 없다.

이런 번거로운 결정을 도와주는 데가 없다. 모든 걸 다 안다는 네이버에도 나오지 않는다. 확대경은 많은 사람들에게 절실한 시력 보완용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취급하는 전문점이 보이지 않는다. 도쿄나 오사카에선 지팡이나 확대경 같은 시니어 용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점포들이 꽤 있다. 유럽의 도시에서도 이런 가게들을 본 적 있다.

이 나라에선 확대경을 길거리 좌판이나 잡화점에서 판다. 아니면 인터넷 사이트를 통하거나 발 빠른 이들이 선호하는 해외 직구 등을 통해 알아서 구하는 게 보통이다. 이런 물건은 안경점에서 취급하면 편할 것 같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정작 안경점에선 확대경을 취급하지 않는다. 대체 관계에 있는 물품이기 때문일지 모른다. 뭔가 이상한 일이다.

독일 기술력 고품질 렌즈에 LED 램프까지    

시원찮은 시력 때문에 확대경은 내 생활의 필수품 역할을 한다. 속 시원히 들여다보아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많다. 온갖 확대경이 내 손을 거쳐 갔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싸구려 확대경은 대부분 쓰레기 같은 물건들이다. 심지어 독일에서 산 확대경조차 메이드 인 차이나의 그렇고 그런 물건이었다.

이 동네 최고의 물건은 독일의 에센바흐(ESCHENBACH)다. 설립된 지 100년이 넘는 에센바흐의 전문성과 품질의 우수함은 따라잡을 회사가 없다. 용도와 시력에 맞춘 촘촘한 구색은 수백 종을 넘겼다. 자신의 시력에 최적화된 확대경은 여기보다 풍부한 데가 없다.

확대경의 생명은 당연히 렌즈의 품질이다. 좋은 렌즈가 들어간 확대경이라야 사물의 형체가 왜곡되지 않고 번져 보이지 않는다. 겉보기에 똑같이 보여도 렌즈 재료의 성분과 연마도 표면 코팅의 정도에 따라 그 차이가 크다. 광학적 성능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이다. 명색이 사진가인 내가 렌즈의 품질을 강조하는 덴 이유가 있다.

에센바흐는 이전에도 쓰고 있었다. 그동안 진행된 노안과 시력 저하로 더 높은 배율의 확대경이 필요했다. 십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으니 이런 변화는 당연할지도 모른다.

그동안 에센바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유행에 둔감한 독일 제품치곤 꽤 많은 변신이 이루어졌다.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이게 하는 자체 조명을 붙인 LED의 채택이다. 이런 방식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했다. 문제는 내용이다. 배터리로 구동되는 LED 램프 불빛과 밝기가 변하지 않는 기술이 들어가 있다. 싸구려 LED 램프는 눈에 좋을 게 없는 청색광이 너무 많이 나온다. 이를 차단하고 안정되게 비춰지는 불빛을 만들어낸 거다. 여기에 더해 눈을 보호해 주는 노란색과 주황색 필터를 붙이면 빛은 더욱 부드러워진다.

다양한 확대 배율의 선택도 장점이다. 자신이 보통 사람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여기는 분들은 3X(숫자 뒤의 X는 배율)에서 4X정도를 선택하기 바란다. 이 정도 배율의 제품이어야 적당한 거리가 유지된다. 배율이 커지면 크게 보이는 만큼 더 가깝게 들이대야만 보이게 된다. 인터넷에서 숫자만 보고 고배율을 선택하는 이들이 많아 하는 말이다.

나의 선택은 모빌룩스(mobilux LED)다. 사각의 작은 크기와 깔끔한 디자인이 마음에 든다. AA 규격의 배터리 2개가 들어가는 크기의 넓적한 손잡이는 쥐기도 좋다. 갖고 있던 에센바흐 확대경은 조명등이 없고 배율이 낮아 답답했다. 훤한 불빛이 비춰지고 배율 3.5X로 글씨가 큼직하게 확대되어 보인다.

이젠 잔글씨가 두렵지 않다. 모빌룩스는 보이지 않는 답답함을 씻어준 고마운 물건이 되었다. 에센바흐를 보고 생각했다. 왜 우리는 일상의 불편과 누구라도 겪을 수 있는 문제들에 둔감한가를. 거창한 구호에 솔깃하면서 정작 자신의 삶은 방치하는 불균형은 또 왜인가. 자동차와 전자 기기는 대단하게 여기고 꼭 필요한 물건들은 잡동사니 취급하는 태도는 .  

글 쓰는 사진가. 일상의 소소함에서 재미와 가치를 찾고, 좋은 것을 볼 줄 아는 안목이 즐거운 삶의 바탕이란 지론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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