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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감추어둔 슬픔을 찾아서 …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9호 32면

책 속으로 

너는

너는

너는
곽효환 지음
문학과지성사

돌아갈 수 없는 삶의 시원, 돌이킬 수 없는 시간 같은 것들을 이국 처녀, 북방(北方) 같은 이미지 안에 담는 작업을 해 온 곽효환 시인의 네 번째 시집이다. 자연히 이전 작업의 흔적, 이전과는 다른 변화가 새 시집에는 섞여 있다. 언뜻 시인의 시편들은 더디 읽힌다. 산문 성격이 강한 탓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찬찬히 읽다 보면 절절한 정경, 사례인 경우가 많다. ‘낯선 모국으로의 여행’ 같은 작품은 일간지 신문기사를 사실상 고스란히 옮긴 경우다. 하지만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 아이로 살아온 아홉 살 소녀 마히아가 집안 형편상 아버지만 한국에 남기고 나머지 가족과 함께 고향 방글라데시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의 내용은 웬만큼 무디지 않고서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기사의 행간에서 눈물을 찾아내 요령 있게 압축하는 일이 시인의 일이다.

해설을 쓴 평론가 성민엽씨의 감상처럼 이번 시집에서는 유독 사랑시가 눈길을 끈다. 시인이라면 누구나 우리고 우려먹은 사랑시 말이다. 곽효환의 사랑시는 역시 사랑의 사망 이후 사랑을 회상하는 형식이다. 하지만 곽효환식 사랑의 복기는 요란한 수사로 떠들썩하지 않다.

“하얗게 쌓이는 눈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가장자리에서부터 중심을 향해 조금씩 얼어가는/ 어둡고 깊고 아름다운 호수를 보며 나는/ 당신이 감추어둔 슬픔을 찾아 서성이다/ 혹한의 빙야와 혹서의 마른 초원을 홀로 지킨/ 미루나무가 비워놓은 깊은 그늘을 생각한다/ 그 마음과 기다림의 숨결이 이러했으리라고.”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에서’의 뒷부분이다. 대개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지만 사랑의 사업에서도 언제나 깨달음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법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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