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당신’ 꿈꾸는 여성들, 담배연기 걷힌 그곳에 몰린다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609호 22면

[스포츠 오디세이] 생활스포츠 새 바람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에 있는 강남당구아카데미에서 주정모 코치(오른쪽 둘째)가 여성 수강생들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오남훈 원장(왼쪽 둘째)은 ’여성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근처에 있는 강남당구아카데미에서 주정모 코치(오른쪽 둘째)가 여성 수강생들에게 레슨을 하고 있다. 오남훈 원장(왼쪽 둘째)은 ’여성들의 문의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국민 생활스포츠’ 당구가 돌아왔다. 지난해 12월 전면 시행된 ‘당구장 금연’이 당구 붐에 날개를 달아줬다. 스포츠 채널을 켜기만 하면 나오는 당구 경기 영상, 은퇴기에 접어든 5060 세대가 큰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다는 점도 당구 열기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작년 12월 전면 금연 뒤 쾌적해져 #TV 켜면 나오는 당구 중계도 한 몫 #직장동료·연인·가족 한 게임 즐겨 #은퇴 전후 5060 동창회 중심 확산 #3쿠션인 캐롬, 한국이 세계 1위 시장 #포켓볼·스누커로 외연 확대가 과제

자욱한 담배연기, 배달시켜 먹는 짜장면 냄새, 쉴 새 없이 오가는 일본식 용어와 거친 말들…. 당구장을 연상하면 떠올리게 되는 이런 모습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담배연기 없는 쾌적한 당구장으로 가족·친구끼리 삼삼오오 모여든다. 직장인들은 점심을 일찍 먹은 뒤 한 게임 하고 사무실로 들어간다. 회식 문화도 바뀌었다. 전에는 1차를 한 뒤 노래방이나 호프집으로 몰려갔다면 요즘은 당구 한 게임 하고 깔끔하게 헤어지는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다. 서울 강남·양재·남부터미널 역 부근에는 낮 시간에 게임비를 10분당 1000원(보통은 10분에 2000원)만 받는 당구장이 늘어났다. 고교 동창을 중심으로 한 5060세대의 사랑방이다. 국내 당구장 수는 2만5000개 정도 된다고 한다. 한 번이라도 당구 큐를 잡아본 사람은 1000만명이 훨씬 넘는다.

서울시청 옆에 있는 한 당구장에서 만난 업주는 “금연 시행 이후 잠깐 손님이 줄었지만 요즘은 다시 회복되는 추세다. 특히 여성 손님이 부쩍 늘었다. 금연은 비흡연자에게도 좋지만 하루 종일 당구장을 지켜야 하는 업주 입장에서는 복음과 같은 소식”이라고 말했다.

남몰래 와서 레슨 받는 사람 많아

지난 6일 오후, 서울지하철 2호선 선릉역 인근에 있는 강남당구아카데미를 찾았다. 이곳은 일반 손님을 받지 않고 회원을 대상으로 레슨만 하는 곳이다.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들이 혼자서 연습을 하거나 코치에게 기본기 지도를 받고 있었다. 당구 선수를 꿈꾼다는 교복 차림의 고교생도 눈에 띄었다. 월 35만원을 내고 주 3회 레슨을 받는 회원이 60명 정도 된다고 한다.

4년 전 이 가게를 인수했다는 오남훈 원장은 “베이비붐 세대인 1956-59년생 은퇴자들이 가장 많고, 은퇴를 앞두고 퇴직 프로그램을 알아보는 분들도 있다. 몇 달 당구를 배우고 운영 시스템을 익힌 뒤 당구장을 인수한 분들도 있다”고 소개했다. 물론 당구 실력을 올리기 위해 오는 회원도 많다. 오 원장은 “고교 동창끼리 당구장에서 어울리는 문화가 급속히 확산됐다. 골프를 하기에는 여유가 없고, 예전처럼 술도 많이 마시지 않는 분위기 아닌가. 친구들에게 여기 오는 걸 비밀로 하고 비기(秘技)를 익히려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했다. 사진기자가 레슨 장면을 담으려 하자 몇 사람은 “난 절대 나오면 안 된다”며 자리를 피했다.

금연이 시행된 이후 여성들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한다. 부부간 또는 부녀·모자간에 와서 서로 가르치고 배우는 훈훈한 모습도 볼 수 있다. 오 원장은 “당구는 날씨·계절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고, 체력이 크게 필요하지 않으며, 60대에 배워도 20년 이상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년층에 크게 확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당구는 크게 캐롬·포켓볼·스누커로 나뉜다. 보통 우리나라 당구장에서 손님들이 즐기는 게 ‘스리쿠션’이라고 하는 캐롬이다. 직사각형 당구대에서 공 하나(수구)를 쳐 다른 공 두 개(목적구)를 맞히는데 그 사이에 수구가 세 번 이상 당구대 면을 맞고 퉁겨야 한다. 스리쿠션을 하기 전 당구에 입문할 때 배우는 게 ‘4구’다. 흰색 수구로 빨강 목적구 2개를 쿠션에 상관 없이 맞히면 된다. 큐로 수구를 치는 지점(당점)과 수구가 제1 목적구에 맞는 위치에 따라 다양한 회전과 각도가 나온다.

당구의 발상지라고 하는 영국에서 나온 게 스누커다. 유럽과 영연방 국가들에서 성행한다. 여섯 개의 구멍(포켓)에 공을 집어넣는 경기다. 당구와 골프는 작대기로 멈춰 있는 공을 쳐서 구멍에 넣는 놀이라는 점에서 뿌리가 같다.

복잡한 스누커를 간편하게 변형한 게 포켓볼이다. 포켓볼은 미국을 중심으로 성행하다가 아시아권으로 확산하고 있다. 일본에서도 포켓볼을 소재로 한 영화 ‘컬러 오브 머니’가 히트하면서 캐롬에서 포켓볼로 대세가 넘어갔다고 한다.

한국은 캐롬 시장이 세계에서 가장 크다. 국내에서 대회를 하면 세계 최고수들이 모여든다. 이달 12일 태릉선수촌에서 개막하는 3쿠션월드컵에도 ‘4대 천황’이라 불리는 쿠드롱(벨기에)·브롬달(스웨덴)·야스퍼스(네덜란드)·산체스(스페인)가 모두 출전한다.

캄보디아 출신 스롱 피아비의 ‘성공기’도 화제다. 한국으로 시집 온 스롱은 남편을 따라 당구장에 다니다 선수가 됐고, 지난 9월 터키에서 열린 세계여자3쿠션선수권에서 동메달을 땄다. 스롱은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포상금 1만5000달러를 받았다.

등록선수 1016명, 캐롬이 80% 차지

대한체육회장배 캐롬 결승에서 맞붙은 김행직(왼쪽)과 조재호. [사진 대한당구연맹]

대한체육회장배 캐롬 결승에서 맞붙은 김행직(왼쪽)과 조재호. [사진 대한당구연맹]

지난 주말 강원도 양구에서 대한체육회장배 전국당구대회가 열렸다. 양구 청춘체육관에는 54대의 당구대가 설치됐고, 엘리트(선수부)-동호인부로 나눠 1400여 명이 실력을 겨뤘다. 선수부 캐롬에서는 국내 랭킹 2위 김행직이 조재호(13위)를 꺾고 우승했다. 2018년 현재 대한당구연맹 등록 선수는 1016명이다. 각 시·도 당구연맹을 통해 선수 등록을 신청하면 대한당구연맹에서 심사해서 등록 여부를 결정한다.

대회장에서 만난 나근주 대한당구연맹 사무처장은 “당구 인기가 올라가면서 중계권 수입과 후원사가 크게 늘었다. 대한당구연맹 올해 예산(38억6000만원)은 5년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뛴 것이다. 다만 캐롬 쪽에 너무 치우친다는 게 문제다. 한해 30여개 대회가 열리는데, 출전 선수는 캐롬 80%, 포켓볼 18%, 스누커 2%로 정확하게 나뉜다. 포켓볼-스누커-캐롬 순인 국제 추세와 반대다. 여성들이 좋아하는 포켓볼의 점유율을 높여야 한다. 또한 등록선수 관리, 심판 육성, 용품 국산화 등 가야 할 길이 멀다”고 말했다.

4구 2000점 이상은 큰 의미 없어 … 400점은 3쿠션 18개가 적당

당구장에 처음 가서 큐를 잡고 흰색 공(수구)으로 빨강 공(목적구) 2개를 ‘톡’ 맞힐 수 있으면 30점 수준이라고 한다. 4구는 50점-80점-100점 순으로 올라간다. 게임을 할 수 있을 정도인 100점을 치려면 얼마나 배워야 할까. 강남당구아카데미 오남훈 원장은 “초보자가 100점을 치려면 주 3회 기준 2개월 정도 배우면 된다”고 말했다.

프로 선수들의 당구 실력을 ‘4구’ 기준으로 하면 몇 점 정도가 되는지 궁금해 하는 사람도 많다. 프로 선수인 유진희 서울당구연맹 부회장은 “프로급이 4구를 치면 공을 모아놓고 끝도 없이 점수를 올릴 수 있다. 따라서 4구는 2000점 이상은 큰 의미가 없다. 3쿠션은 4구에 비해 공이 작고 당구대는 크다. 4구에서 실력을 연마한 사람은 자연히 3쿠션으로 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 대회에도 4구 종목은 없다.

3쿠션을 치는 당구대는 ‘중대(中臺)’라고 부르는 일반 사이즈(254X127cm)와 ‘대대(大臺)’라고 하는 국제경기용(284X142cm)이 있다. 요즘은 당구장 입구에 ‘국제용 대대’라고 써 붙인 곳이 많다. 3쿠션의 엘리트 대회에서는 40점을 먼저 올리면 이긴다. 동호인끼리 할 때 30점을 놓으면 매우 높은 수준이다. 유진희 부회장은 “4구로 200점 정도를 치는 사람이 3쿠션 게임에서는 10개, 400점이면 18개 정도를 놓는 게 적당하다”고 알려줬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