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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배틀그라운드] 휴대전화 끊어지고 포격…실전보다 치열 KCTC 무박 2일 르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박용한 배틀그라운드

고도 1100m, 여의도 면적 41배 #북한군 보병연대 전술·복장 갖춰 #화생방 방호·사망자 처리 실전적 #싸우면 이기는 군대 발전 계기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북한군 역할을 맡은 대항군 연대 지휘소 [사진 박용한]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북한군 역할을 맡은 대항군 연대 지휘소 [사진 박용한]

“땅크가 움직이고 있는가?” “방어선 신경 써라” “알겠습니다” 지난 31일 오후 1시 30분 낮선 북한 말투에 긴장감이 돌았다. 여기는 강원도 인재와 홍천 일대에 조성된 육군 과학화 훈련장(KCTC), 북한군 역할을 맡은 대항군 연대 지휘소는 외딴 건물 구석에 마련됐다. 이곳 훈련장에서 대항군과 훈련부대 진영을 넘나들면서 무박 2일, 배틀그라운드 현장을 밀착 취재했다.

훈련장에 들어서자 휴대폰 신호가 끊어졌다. 취재진을 안내했던 장교는 “배터리 빨리 소모된다. 그냥 꺼두시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훈련장은 여의도 면적 41배 크기인데 해발고도 1100m 험준한 산악지역이다. KCTC는 여단급 훈련부대가 들어와 2주 동안 전문 대항군을 상대로 실전 같은 전투를 경험하는 훈련장이다. 실제 사격 대신 레이저를 쏘는 마일즈 장비를 활용해 피 흘리지 않으면서도 전장 상황을 묘사한다. 대항군은 실전적 훈련을 위해 북한군 복장도 갖춘다.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화생방 공격을 받고 보호의와 방독면을 착용하는 훈련부대 장병 [사진 박용한]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화생방 공격을 받고 보호의와 방독면을 착용하는 훈련부대 장병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북한군 역할을 맡은 대항군 연대 지휘소에서 연대장 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북한군 역할을 맡은 대항군 연대 지휘소에서 연대장 명령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대항군 지휘소를 나와 훈련에 참여한 3사단 23연대 지역에 들어서자 대항군 침투조가 곳곳에서 공격에 나섰다. 유류 탱크 차량 주변에 화학탄도 떨어졌다. 침투조가 위치를 보고하자 포병이 지원에 나선 거다. 장병들은 빠르게 화생방 보호 의와 방독면을 착용했다. 화학탄 공격을 받고 1분 이내로 착용을 완료하지 않으면 사망으로 처리된다.

“양호, 전파 바람” “도로정찰대 도착했습니다” “2대대장 알고 있지?” “OK” 비교적 친숙한 대화가 들렸다. 23연대 지휘소는 산 중턱에 나뭇가지로 가려진 천막이다. 허리를 숙여 움직이는 좁은 천막에는 군 간부 32명이 붙어 앉아 전투를 지휘하고 있었다.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이날 훈련에 참여한 3사단 23연대 연대 지휘소 [사진 박용한]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이날 훈련에 참여한 3사단 23연대 연대 지휘소 [사진 박용한]

‘삐리릭~삐리릭~’ 통신기가 울리며 보고가 빗발쳐 들어왔다. “연대장님 보고드립니다. 1명 사망 1명 중상” “접촉팀 관련 보고드리겠습니다” 연대장과 참모는 빔프로젝터가 비춘 전투지도를 보면서 실시간 올라온 상황을 토의했다. 곳곳에서 컴퓨터 부팅소리도 들여왔다. 전기를 사용하지 않고 랜턴으로 지도를 살피던 대항군과 다른 모습이다.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이날 훈련에 참여한 3사단 23연대 연대 지휘소 [사진 박용한]

10월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이날 훈련에 참여한 3사단 23연대 연대 지휘소 [사진 박용한]

매복한 병력을 지나 산골짜기 깊은 중턱에서 지휘차량을 발견했다. 대대장과 참모들은 차 안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있었다. “대항군 공격을 받아 천막 설치는 포기하고 기동지휘소를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항군 침투조는 이처럼 작전에 큰 차질을 가져왔다. 23연대 3대대도 침투조 6개를 대항군 진영에 보냈지만 이미 4개 팀이 전멸했다.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대대 지휘소 인근에 매복한 장병.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대대 지휘소 인근에 매복한 장병.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적 공격을 받은 대대장은 이동 지휘소를 꾸렸다.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적 공격을 받은 대대장은 이동 지휘소를 꾸렸다. [사진 박용한]

훈련장에선 전사자 처리도 실전처럼 이뤄진다. 긴급장례식은 애국가를 부르고 묵념을 한 뒤 기도하는 순서로 이뤄졌다. “여러분은 전투 중에 전사했고 1시간 동안 눈을 감고 가족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영현식을 진행한 법사는 병사들 한명 한명 가슴 위에 태극기를 올렸다. 병사들 입에는 인식표도 물렸다. 여군 하사는 전투사망자 명부를 작성해 연대 본부에 보고했다.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영현 체험은 인식표를 입에 물리는 등 실전적으로 이뤄진다.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영현 체험은 인식표를 입에 물리는 등 실전적으로 이뤄진다.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영현 체험 중 사망자 명부도 작성하는 실전적 훈련이다.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영현 체험 중 사망자 명부도 작성하는 실전적 훈련이다. [사진 박용한]

영현식 동안에도 주변에 모의 포탄이 떨어졌다. 연막탄과 폭음으로 실제와 같은 효과를 냈다. 취사차량이나  부식차량이 파괴되면 전투식량으로 식사를 때워야 한다. ‘도로에서 5분 이상 정차하지 말고 신속히 이동하라’는 지침이 내려온 이유다. 송승달 일병이 주먹밥을 만들어 줬다. 병사들이 ‘돼김’이라고 부르는 돼지고기 김치볶음 주먹밥이다. 지금까지 먹어본 주먹밥 중 가장 맛있었다. 주먹밥이 담긴 비닐 봉투를 묶은 뒤 작은 구멍을 만들어 전투중 틈틈이 짜내어 먹을 수 있다.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돼김' 주먹밥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돼김' 주먹밥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해가 넘어가는 오후 3사단 23연대 장병들이 이동한다.주변에 매복한 대항군이 있어 점령지역 이동중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사진 박용한]

지난달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해가 넘어가는 오후 3사단 23연대 장병들이 이동한다.주변에 매복한 대항군이 있어 점령지역 이동중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다. [사진 박용한]

야간 공세 준비 

어둠이 내린 뒤 23연대 지휘소를 다시 찾았다. 지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닐봉지에 담긴 식은 ‘돼김’ 주먹밥도 보였다. 연대장은 야간 공세에 앞서 참모를 다독였다. 우선 부대가 이동했으니 통신대책을 강구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중계기를 설치하지 않으면 무전기 운용이 어려운 산악 지형이다.

연대장은 교란작전도 준비토록 했다. 차량에 전차 기동 소리를 출력하는 스피커를 달아 대항군 침투조를 유인한다. 훈련에 처음 등장한 장비다. 각 부대별 경계를 강화하라는 지침도 내렸다. 이날 전투가 평소보다 더 치열한 이유도 있다. 부대 관계자는 “23연대 연대장 박문기 대령과 대항군 연대장 조원희 대령은 육사 51기 동기”라고 귀띔해줬다.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23연대장 박문기 대령.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23연대장 박문기 대령. [사진 박용한]

“9중대 진출 중 피해 다수 발생” 한숨 돌릴 틈도 없이 피해 보고가 쏟아져 들어왔다. 연대장은 무인정찰기(UAV)를 띄워 상황 파악에 나서라고 주문했다. “위협 세력이 있어 UAV 운용이 제한됩니다” 참모가 만류했다. 연대장은 고민 끝에 참모를 질책했다. “파괴돼도 좋다. 당장 운용하라. 사용하지 못하고 전투를 끝내는 것보다는 낫다”며 “적 위협을 제거하고 사용할 방법을 찾아보라”는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다음날 확인해 보니 UAV는 사용하지 못했다. 연대장은 아쉬움을 크게 드러냈다.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박격포 공격을 준비하는 장병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박격포 공격을 준비하는 장병 [사진 박용한]

밤은 깊어졌고 하늘엔 별이 빛나고 있었다. 산 중턱에선 81㎜ 박격포가 공격하고 길가에 늘어선 105㎜ 견인포는 불을 뿜었다. 밤이 깊어질수록 침투부대는 상대 진영으로 더 깊이 들어가고, 대항군과 23연대 병력 사이 거리는 점점 줄어들었다. 이제 곧 해가 뜰 무렵이면 본격적으로 충돌하게 된다.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새벽 공격에 앞서 장비를 점검하는 장병들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새벽 공격에 앞서 장비를 점검하는 장병들 [사진 박용한]

새벽, 본격적인 공격 

새벽이 지나 해가 뜨기 직전까지 어두웠다. 안개 사이로 길을 건너는 고라니가 보였다. 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곳곳에 고인 물은 이미 얼었지만, 전투지역은 뜨거웠다. 대항군 습격대가  황병골 삼거리 산 중턱에 숨어 길목을 막았다. 불과 10여 명이지만 이들을 제압해야 도로에 매설된 지뢰를 제거할 수 있다.

대대장이 2개 소대 병력을 투입해 소탕작전에 나섰다. “2소대장, 2소대장, 야! 대답해!” 중대장이 무전기를 들고 소리쳤지만 응답은 없다. 조금 전 2소대장은 사망했기 때문이다. 훈련장에선 사망자는 방탄모를 벗고 전투지역을 벗어난 뒤 무전기에 응답하거나 대화를 할 수 없다.

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대항군을 포위하기 위해 질주하는 장병들. 엄폐하다 함께 쫓아가면서 전쟁 영화처럼 사진도 흔들렸다. [사진 박용한]

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대항군을 포위하기 위해 질주하는 장병들. 엄폐하다 함께 쫓아가면서 전쟁 영화처럼 사진도 흔들렸다.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대항군 역할을 맡은 병사가 훈련부대와 교전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대항군 역할을 맡은 병사가 훈련부대와 교전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습격대를 포위하는 데 성공했다. 대대장 일행을 태운 차량도 현장에 도착했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대항군 3명은 끈질기게 저항했다. “동무들 탄약 아끼라우” 나무 사이에 숨어 있던 대항군이 외쳤다. 그러나 30분 가까운 치열한 전투 끝에 모두 사살됐다. 

23연대 손실이 너무 컸다. 소ㆍ중대장 모두 사망했다. 더구나 대대장도 희생됐다. 차량이 멈춰 선 뒤 RPG(로켓추진탄) 공격을 우려해 차량 밖으로 나왔다가 숨어있던 대항군 공격을 받아 사망했다. 희생 끝에 막혔던 길이 뚫리자 기다리던 전차가 질주했다. 이때까지 매복한 침투조 몇 명 때문에 전차와 차량은 멈춰있었다.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기동로를 확보한 뒤 전차가 작전 지역으로 돌입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기동로를 확보한 뒤 전차가 작전 지역으로 돌입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상황평가 해보자” 연대장은 참모들을 불러 모았다. 정보 과장이 대항군 상황을 보고했다. 연대장은 기상분석을 듣더니 “화생방 공격 가능성은 작다”고 판단했다. 이어 “신속하게 추격해 적이 집결하는 걸 막고, 조기에 목표를 확보하라”며 “우리 23연대는 사단 2단계 작전에 투입될 예정이니 장비와 인원 손실도 보완할 수 있도록 상급부대에 건의하라”는 지침을 내렸다.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CAS(근접항공지원) 지원 업무를 맡은 공군 조종사가 교신 중에 있다.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CAS(근접항공지원) 지원 업무를 맡은 공군 조종사가 교신 중에 있다. [사진 박용한]

전투기 굉음이 들려왔다. CAS(근접항공지원) 임무를 위해 공군기지에서 F-15K 전투기가 출격했다. 연대장은 공격 명령을 내렸다. 파견 나온 공군 조종사가 1만 피트 상공을 비행하던 전투기에 전달했다. “적 전차 6대 파괴” 전과는 실시간으로 보고됐다. 공격을 마친 전투기는 정찰임무도 수행했다. 이틀 동안 이어진 전투는 정오쯤 끝났다. 23연대장 박 대령은 “준비를 많이 했지만 부족한 점도 많이 발견하고 배웠다”며 “싸우면 반드시 이기는 부대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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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련 효과는 나타났다. 이전 부대는 이틀 동안 연대지휘소를 5번이나 이동했다. 그러나 이번엔 위치가 발각되지 않아 한 번도 이동하지 않았다. 연대장 박 대령은 “이전 훈련을 검토해 보니 결정적 시기에 지휘소를 옮기는 바람에 전투력 손실이 컸던 점을 참고했다”고 말했다. 연대 지휘소 근처에 방어 병력은 00명이나 배치돼 대항군이 접근하지 못했다.

공격기회도 잘 살렸다. 이전보다 대항군 진영으로 더 많이 들어갔다. KCTC 관계자는 “대항군도 요즘 긴장하고 있다. 훈련부대가 연대급으로 커지자 화력 지원이 강력해져 전투력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과학과훈련장 훈련 통제소에서는 대항군과 훈련부대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31일 강원도 인제 KCTC 훈련장. 과학과훈련장 훈련 통제소에서는 대항군과 훈련부대 상황을 실시간 파악하고 있다. [사진 박용한]

KCTC는 ‘피 흘리지 않는 전투 체험을 통해 평범한 군인을 비범한 전사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통제소에서 훈련 과정을 지켜보던 한경록 KCTC 단장은 “훈련을 반복하면서 훈련부대 실력이 늘어나고 있다”면서도 “대항군 인원을 늘리면 더 많은 훈련을 할 수 있는데 그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훈련부대는 부대로 돌아가지만, 대항군은 짧은 휴식을 마친 뒤 바로 다음 훈련을 시작해서다.

현장 곳곳에 훈련 통제관도 배치했다. 통제관은 구급장비를 갖춰 환자를 치료하고 훈련 효과를 높이는 역할이다. 통제관은 사후평가에 참여해 상황별 요소를 돌아보며 개선점을 찾아낸다. 승패가 목적이 아니라 훈련부대 전투발전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글·사진 박용한 군사안보연구소 연구위원,
영상 강대석·공성룡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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