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文정부와 싸운 경제부총리"…교체된 김동연 몸값 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7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교체된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9일 “남아있는 골든타임 동안 기재부가 경제컨트롤 타워로서 제 역할을 다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날 청와대 발표 직전에 국회에서 기재부 간부들을 소집해 회의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고 기재부가 전했다.

김 부총리는 그러면서 “임기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직무를 수행하는 것이 공직자의 도리”라며, 국회 제출한 내년 예산안 처리등을 차질없이 준비할 것을 지시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경제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야지 베네주엘라행 비행기를 타면 실패한다”며 “그래도 미국행 비행기를 타려고 했던 김동연 부총리의 낙마에 아쉬운 생각뿐”이라는 글을 올렸다.

김 부총리의 교체가 확정되면서 정치권에선 그의 과거 행적이 새삼 주목받는 분위기다.

“신(神)이 사람을 단련시키고 키우는 가장 전형적인 방법은 그 사람이 ‘있는 자리’를 흩트리는 것이라고 한다. ‘있는 자리’란 바로 내가 처한 환경, 나 자신 그리고 내가 사는 세상이다. (…) 가끔은 안전지대 안에서 잘되는 사람이나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성취가 오랫동안 공고하게 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교체된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출간한 저서 『있는 자리 흩트리기』의 한 대목이다.

그동안 김 부총리는 교체설에 힘이 실릴수록 정치권에서 몸 값이 오르는 양상이었다. 자유한국당은 김 부총리를 '현 정부와 각 세운 경제부총리'로 포장해서 차기 대선주자군에 포함시키려는 분위기도 있다. 반대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는 “김 부총리를 보수 진영에 빼앗겨선 안된다”는 위기감이 감돈다.

김 부총리는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경제위기라기보다 경제에 관한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라고 말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또 8일에는 “여야가 ‘경제 연정’이라도 했으면 좋겠다”며 지지부진한 국회 상황에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외람되지만’이라는 표현을 자주 붙이면서도 정치권에 할 말은 다 하는 모양새였다.

김 부총리는 8일 예결위 회의에 출석해 ‘정치적 의사결정의 위기’라는 표현을 쓴 이유를 설명했다. 김 부총리는 “우리 경제가 지금 위기냐는 취지의 이장우 한국당 의원 질문에 답변하는 과정에서 개인적으로는 경제위기라기보다 정치적 의사 결정의 위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며 “규제개혁 입법, 경제구조개혁 입법에 대해 외람되지만 정치권에서 책임있는 결단을 내려주셨으면 좋겠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김 부총리는 “여야정협의체도 운영되고 있는데 경제에서만큼은 경제연정이라도 할만큼 격렬한 토론을 벌여서 우리 경제가 나아갈 길을 정했으면 좋겠다”며 “그런 취지로 정치적 의사결정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부연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은 김 부총리가 문재인 대통령 등 최고위층을 겨냥한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김병준 한국당 비대위원장은 8일 비대위 회의에서 “김 부총리의 발언은 경제 위기를 부인하는 발언이라기보다는 현재 경제 위기의 근원이 청와대에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명색이 경제사령탑이라지만 그동안 정책 결정에서 제대로 자율성을 갖지 못했다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정진석 자유한국당 의원도 페이스북에 “2016년 제가 당 대표 권한대행으로서 김 부총리를 우리 당 비대위원장으로 영입하려 했다”며 “경제사령탑을 핫바지로 만들고, 몽상적 사회주의 정책을 몰아붙이고 있는 이데올르그들과 이제 작별하라”고 적었다. 한국당이 영입하려 했을 때 김 부총리는 아주대 총장 신분이었고,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켜야한다며 제안을 거절했다고 한다. 정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부총리를 다시 영입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고 어디서든 지혜를 발휘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4월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당시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중앙포토]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4월 30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당시 김동연 국무조정실장. [중앙포토]

한국당이 공식적으로 김 부총리에게 러브콜을 보낸 건 아니지만 당내에는 우호적인 평가가 많다. 김 부총리는 이명박 정부 때 기획재정부 2차관, 박근혜 정부 때는 국무조정실장을 지내 야당 인사들과도 가깝다. 송희경 한국당 원내대변인은 8일 “김 부총리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불굴의 의지로 경제 수장에까지 오른 흙수저 신화의 상징”이라며 “비난 받는 극히 일부 공직자들과 달리, 윗사람 눈치 보지 않고 오직 실력으로 승부해 온 분이었기에 야당도 상당한 기대를 걸었던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지난 6일 국회 예결위 회의에서도 김 부총리는 한국당 의원들에게 “요즘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이 많은데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아름답다”(박덕흠 의원), “뜻을 다 펼치지 못해 안타깝다”(함진규 의원) 등의 격려를 받았다. .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입장에선 김 부총리와 한국당의 미묘한 관계가 신경쓰일 수밖에 없다. 이미 경제부총리 교체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지만 현 정부에서 김 부총리를 더 활용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중진 의원은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을 잘 알고 있고 경제 전문가인 김 부총리가 상대 진영으로 넘어가면 우리가 받는 타격이 너무 크다”며 “김 부총리를 청와대 정책실장에 기용하든지 해서 그런 우려 자체를 해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