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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통 괴로워하는 딸 남기고 병원서 뛰쳐나간 엄마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1)

마냥 아이 같은 막내딸로 30년을 편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미술 전공자. 철부지 딸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그려본다.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기록해보는 삼대 이야기. <편집자>

만삭이 됐을 때 혼자 살살 산책하러 다니다가 힘들어서 구청 앞 화단 벤치에 앉아 생각 없이 배를 내려다보며 사진을 찍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많이 나온 배가 신기해 SNS에 올렸는데, 바로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 사진 지워, 하나도 안 예뻐.” 엄마는 내 임신 기간 내내 안쓰러워했다. 예쁘고 날씬했던 엄마 딸이 배는 잔뜩 나오고 얼굴은 호르몬 탓인지 코며 입이며 몇배로 퉁퉁 붓고 목, 겨드랑이, 배는 새카맣게 줄이 생겼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엄마는 내가 아이를 낳아도 별로 예뻐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예정일이 다 지나도 아이가 나올 생각을 하지 않아 입원했는데, 엄마는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다짜고짜 수술하면 좋겠다고 했다. 당연히 병원에선 촉진제를 맞아야 한다고 했다. 엄마는 산통을 느끼는 내 모습을 볼 자신이 없다고 집으로 가버리셨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그러나 이틀이 지나도 진통이 걸리지 않아 결국 수술해야 한다는 소리에 바로 달려와 옆을 계속 지켜주셨다. 수술 후에 마취가 덜 풀린 나는 엄마를 보고 하염없이 엉엉 울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그렇게 딸아이를 낳고 나서, 나를 속상하게 바라보던 마음이 이해됐다. 엄마의 눈엔 아직도 어린 딸인 내가 상의가 꽉 낄 만큼 나온 배에 남자가 신는 등산화같은 신발을 신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10시간이고 20시간이고 너무 아프다며 진통하는 모습을 엄마는 차마 볼 자신이 없던 것이다.

장윤정, 주부 kidsart8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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