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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부터 내고 논문 쓰는 와이즈만 … “우리 기술로 32조 매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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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창업 국가' 이스라엘을 가다
와이즈만연구소 셰베스 부총장 인터뷰 

연구개발(R&D) 지출 집중도 2위, 생산성 21위. 블룸버그가 올 1월 발표한 대한민국의 ‘2018 혁신지수’다. 2017년도 생산성인 32위보다 크게 도약한 수치이지만, 투자 대비 성과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뜻이다. 반면 한국과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비율 1,2위를 다투는 이스라엘은 R&D 지출 집중도 1위, 생산성 9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데카이 셰베스 와이즈만 부총장 겸 기술사업화 지주회사 예다 대표. 한국 정부나 기관의 초대를 받아 한국을 자주 찾은 덕분에 한국 사정에 밝았다. [사진 정수경]

모데카이 셰베스 와이즈만 부총장 겸 기술사업화 지주회사 예다 대표. 한국 정부나 기관의 초대를 받아 한국을 자주 찾은 덕분에 한국 사정에 밝았다. [사진 정수경]

이스라엘의 와이즈만연구소는 R&D 생산성과 기술 사업화를 얘기할 때마다 모범사례로 거론되는 기관이다.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한 곳인 이곳은 한 해 평균 100여 건의 특허를 통해 지식재산을 사업화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연 100건 특허, 로열티만 1000억원 #기술이전 기관 통해 74개국 수출 #기초과학 사업화 성과 20년 예사 #정부는 지원하되 간섭 말아야

연구기능과 별도로 독립 운영되는 기술이전회사 예다(YEDA)를 통해 세계 74개국에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연구소 기술이 제품화돼 발생하는 파생매출만 280억 달러(약 32조원)에 달하고, 로열티 수입만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 지난 15일 르호봇 현지에서 예다를 이끌고 있는 모데카이 셰베스 와이즈만 부총장을 만났다.

기초과학를 하는 곳에서 올리는 기술이전 성과가 놀랍다.
“와이즈만연구소는 기술 이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특허를 먼저 내고 다음으로 논문을 낸다. 우리의 임무는 과학기술로 인류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것이다. 와이즈만이 존재하는 의미다.  모든 부문이 그렇지는 않지만 그래도 돌아보면 아주 성공적이다. 특히 제약부문이 두드러졌다. 블록버스터 신약 코팍손이 대표적이다. 다발성 증후군 시장에서 매년 수십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기술 이전을 통한 파생매출 32조원 중 신약ㆍ바이오 부문에서만 4조원에 가깝게 거둬들인다. ”  
처음부터 기술사업화를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와이즈만과학연구소는 1949년에 세워졌다. 하지만 1959년 예다가 생기기 전까지는 아무도 특허에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 이스라엘은 기초연구를 포함한 모든 연구에서 기술이전을 목표로 하고 있다. 자원이 부족하고 사방에 적인 나라의 절박함에서 나온 생각이다.”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 남쪽 소도시에 위치한 와이즈만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정문. [사진 정수경]

이스라엘의 수도 텔아비브 남쪽 소도시에 위치한 와이즈만연구소(Weizmann Institute of Science)의 정문. [사진 정수경]

기초과학 연구가 기술이전이란 성과로 이어지기까지 얼마나 걸리나.
“제약 분야의 경우이긴 하지만 20년이 걸리기도 하고 이보다 더 오래 걸리기도 한다. 15년이면 아주 짧은 거다. 처음부터 조금씩 수익을 내기 시작했지만 90년도부터 본격적으로 큰 수익이 나기 시작했다. 수익을 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응용과학이 아닌 기초과학의 기술사업화의 과정에 어려움이 적지 않았을 것 같다.
“산업부문에서는 학계의 연구가 응용 개발로 발전하기까지 잘 기다려주지 않는다. 우리는 이것을 ‘데스밸리(death valley:죽음의 계곡)’라 부른다. 예다는 이 데쓰밸리를 연결해주는 역할을 한다.” 
와이즈만연구소 캠퍼스 내에 있는 기술사업화 전문 지주회사 예다의 건물. 로열티 수입만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로열티를 거둬들이는 곳이지만, 건물도 단층으로 소박하고, 직원은 20명에 불과하다. 최준호 기자

와이즈만연구소 캠퍼스 내에 있는 기술사업화 전문 지주회사 예다의 건물. 로열티 수입만 연간 1000억원이 넘는 로열티를 거둬들이는 곳이지만, 건물도 단층으로 소박하고, 직원은 20명에 불과하다. 최준호 기자

특별한 기술이전의 노하우가 있다면.
“와이즈만은 언제나 과학자들을 최고로 우대해왔다. 무엇을 연구하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자유롭게 연구할 수 있도록 최고의 환경만을 제공한다. 기술이전은 예다가 보유한 기술이전 전문가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다. 와이즈만의 연구 가운데 특허를 받을 수 있고, 사업화가 가능한 과제를 선제적으로 발굴하고, 과학자를 대신해 특허를 출원하고, 등록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취재진이 찾아간 예다의 건물은 단층으로 작고 소박했다. 직원도 20명이 전부다. 예다 전체의 연구인력은 4000명에 달한다.)
한국에도 2000년대 초반 예다식 기술이전모델이 도입됐는데, 잘 안 되고 있다.
“기술 이전은 아주 어려운 문제다. 정말 잘하고 싶다면 예다처럼 전문적이고 프로페셔널한 기관을 만들어야 한다. 정부든 대학이든 기다려주고 간섭하지 않아야 한다. 대학도 정부도 지금껏 나를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물어본 것도 없다. 한국 정부는 기다려 주지도 않고 간섭을 많이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홍석의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기술사업화센터장은 “국내 대학과 출연연의 기술사업화 부서는 실질적 권한이 없고, 전문성이 뛰어난 인재가 올 수 있는 동기도 없다”며 “관련 법상 기술이전은 국내기업에 우선해야 하고, 제도적으로도 연구자가 R&D를 실제 성과물로 이어갈 노력을 할 필요가 전혀 없게 돼 있다”고 말했다. )

르호봇(이스라엘)=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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