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할리우드판 막장 영화, 한국보다 심심하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608호 30면

고난을 견뎌내고 왕자를 만난 신데렐라와 캔디의 이야기는 요즘 TV에서 막장극으로 번안돼 꽤 오래 인기를 끌었다. 고난의 강도가 세진 것은 물론이고, 더 자극적인 사건을 더해가면서다.

영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이 영화의 플롯 역시 전형적인 막장극이다. 미혼모 가정에서 자란 뉴요커 레이첼(콘스탄스 우)은 1년간 사귄 남자친구 닉(헨리 골딩)과 함께 그의 절친 결혼식이 열리는 싱가포르로 간다. 싱가포르에 가서 보니 남자친구는 왕족 수준의, 싱가포르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었다. 게다가 그는 “집안이 부유한 것일 뿐”이라며 카페 쿠폰 도장도 꼬박꼬박 챙기는 검박하기 짝이 없는 인품을 가진데다가, 잘생겼다. 뒤늦게 알고 보니 싱가포르 결혼 후보 1순위 신랑감인 그의 여자친구의 수난 시대는 바로 열린다. 사교계 명사들의 질투와 닉의 어머니를 비롯한 집안의 반대는 점점 거세진다. 이후 아침 드라마에서 많이 본 듯한 막장 에피소드 같은 사건들이 줄줄 이어진다. ‘알고 보니 남자친구 아버지가 내 아버지’와 같은 수준의 반전은 없지만 말이다.

이 뻔한 이야기가 할리우드를 뒤흔들었다고 한다. 지난 8월 개봉했는데 “역대급 로맨틱 코미디”라는 평가와 함께 전 세계적으로 2억 3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뒀다. 제작비로 3000만 달러를 썼는데 7배의 수익을 올린 셈이다. 3주 연속 북미 박스오피스 1위 자리를 지켰는데, 이는 로맨틱 코메디 장르에서 ‘귀여운 여인’(1990) 이후 28년 만의 기록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제작됐다는 것. 가족 중심의 유교적인 아시아 문화가 할리우드에서는 이색적으로 비쳐져서 흥행 포인트가 된 모양이다. 출연 배우 전원이 아시아계인데다가 원작소설의 저자 케빈 콴도 싱가포르계 미국인이다. 그는 책과 영화의 성공에 힘입어 2018년 타임지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통상 할리우드에서 아시아계 배우들의 캐릭터는 악인 또는 우스꽝스런 오타쿠, 하층민처럼 제한적이었다. 그런데 아시아계 배우들이 왕자부터 공주까지 모든 캐릭터를 전부 소화하는 영화라니, 색다를 수밖에 없다(출연진 전원이 아시아계였던 영화는 1993년 제작된 ‘조이 럭 클럭’ 이후 25년 만이다).

레이첼도 비련의 여주인공이라기보다 뉴욕대 최연소 경제학 교수가 된 인재로 설정됐다. 일방적으로 막장에 당하기보다 자기 주도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주체적인 여성으로 그려진다. 주요 캐릭터도 모두 여자다. 레이첼과 예비 시어머니 엘레노어(양자경)와 남자친구의 사촌 누나 아스트리드 영(젬마 찬)의 이야기가 주축이다. 심지어 집안이 갑부인 닉의 경우 뉴욕에서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언급되지 않는다.

뻔하지만 조금 다른 시각을 얹은 이야기에 슈퍼 리치 아시아인의 싱가포르 삶이 볼거리를 제공한다. 나폴레옹이 남긴 격언, “중국을 잠자게 내버려 둬라. 그들이 깨어나면 세상을 뒤흔들 테니”로 영화의 서두를 열며 기대감을 높인 대로다. 2000억 원대 저택에서 열리는 ‘가족파티’와 크루즈 선상에서 열리는 ‘총각파티’의 등이 펼쳐진다.

더 자극적인 막장을 기대했다면, 영화를 보고 실망할 수도 있다. 가볍게 눈요기하기 좋은 로맨스 영화다. 영화는 할리우드에서의 인기를 등에 업고 개봉 일주일 만에 속편 제작이 확정됐다. 속편은 3부작으로 이뤄진 케빈 콴의 소설 중 2편 『차이나 리치 걸프렌드』를 토대로 제작된다. 존 추 감독이 또 메가폰을 잡는다.

글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