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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터 브레첼이 식상한 당신에게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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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28면

빵요정 김혜준의 빵투어: 서울 군자동 ‘초이고야’ 

빵집 베이커들과 대화를 나눌 때가 있다. 살짝 낯을 가리는 나는 몇 번 얼굴을 익히고 시간이 흘러야 이야기를 편하게 하게 되는 스타일인데, 높은 친화력으로 단번에 이야기를 주도해가는 베이커도 있다. 그 중 한 명이 서울 군자동 ‘초이고야’의 최은영 베이커다.

▶초이고야 #서울시 광진구 군자동 48-17 #02-467-9566 #월, 화 휴무, 10:00~빵 소진 시까지

그 적극성이 어디서 나올까 싶었는데, 경력을 듣고서야 이해가 갔다. 이제 30대 중반을 향하는 젊은 나이지만 제빵업에 몸 담은 지는 15년이 넘었단다. 어디 내놔도 중견급 내공이니 대화법 정도야 어련할까.

새벽부터 일어나 빵을 만들고 아침 햇살을 친구 삼아 작업복에 묻은 밀가루를 털어내며 하루를 시작하는 것이 제빵사의 숙명이라면, 그에게 빵은 어떠한 의미인지 궁금했다. 어떻게 빵을 그리 일찍 시작하게 되었을까.

“초등학교 때 집에 오븐을 사면서 빵을 만들어 먹게 되었어요.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그때 빵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그 뒤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중·고등학교 때 제빵학원에 다니기 시작했고 대학도 그쪽으로 진학했다. 졸업을 하고는 4년쯤 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일본 여행을 떠났다. 이것이 터닝 포인트가 됐다. 일본의 앞서 있는 빵 문화를 경험하고 충격을 받아 귀국 후 바로 유학을 준비했단다.

정착 초기에도 특유의 돌파력이 발휘됐다. 처음 어학원에 입학하고 일단 빵집을 무작정 찾아가 “일본어를 못 하지만, 이곳에서 케이크를 만드는 것을 배우고 싶다”고 청했다. 돈을 받지 않아도 좋으니 일을 시켜달라고 졸랐다.

이를 들은 셰프도 통이 컸다. “케이크는 손으로 만드는 것이지 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네가 일본어를 못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맞장구를 쳐줬다. 다만 그는 여기가 일본이니 한국에서의 경력은 없는 것과 다름없고, 일단 홀에서 2년 정도 손님을 응대하고 제품에 대한 서비스를 배운 후 주방으로 들어와 설거지부터 시작하라고 했다. 최 베이커는 그렇게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일을 시작했고, 이후 제과 이론에 대한 지식에 욕심도 생겨서 제과 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깜빠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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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해서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빵집의 책임자로 일도 하고, 작은 빵집들을 컨설팅하며 론칭을 돕기도 했다. 그렇게 3년여를 현장에서 보내다 자신만의 매장을 열기로 결심했다. 여전히 젊고, 실패해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나이였으니까.

그런데 왜 이 외진 군자동을 택했을까. 당시 살고 있던 곳은 경기도 동두천 쪽이라 연고도 뚜렷이 없었다.

그도 처음엔 홍대·강남·종로 등 유명 상권을 둘러 봤단다. 그러다 어느 날 어머니가 군자동에 일이 있다 하여 모셔다드리고 큰 생각 없이 들른 부동산에서 인연을 찾았다. 번화가도 아니고 지하철 역세권과도 거리가 있는 곳이었지만, 작게 시작해 소소하게 꾸려나가고자 하는 생각에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단다. 그리하여 2015년 초이고야(Choigoya)의 간판을 내걸었다.

작지만 사업 전략은 지대했다. 군자동의 이 작은 빵집을 24시간 알리는 길, 만드는 과정을 샅샅이 공유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소셜미디어(SNS)였다. 단순히 빵을 만들고 파는 일을 넘어 함께 일상을 공유하고 그날의 이슈들을 함께 즐기고 나누는 놀이터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나갔다. 나 역시 SNS를 통해 초이고야를 알게 되었고 덕분에 그가 일했던 일본의 ‘르 수플레’까지 방문하기도 했다.

그의 바게트는 밀이 가진 고유의 투박하지만 고소한 맛, 씹을수록 더해지는 단맛과 감칠맛을 최대한 끌어낸다. 천연 발효종인 르방을 키워 사용하고 프랑스 밀가루를 초이고야 스타일로 블랜딩해 만든다. 산미가 튀지 않게 부드럽게 어우러져 마치 매일 먹는 밥처럼 편하게 먹기 위한 아이디어다.

프렛즐샌드위치

프렛즐샌드위치

바게트만큼이나 추천하는 메뉴는 브레첼이 알차게 속을 채워낸 샌드위치. 자칫 밋밋하게 느낄 수 있는 브레첼 사이에 버터와 살라미 햄, 루꼴라와 하바티 치즈를 채워 완성했는데, 이렇게 간단한 조합만으로도 든든하고 알찬 한 끼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최 베이커는 급격히 변하는 유행에 휩쓸리지 않고 한결같이 변함없는 색을 지닌 빵집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언제 들러도 맛있는 바게트가 있고, 맛있는 메쉬 커피 원두와 스콘을 즐길 수 있는 그런 꾸준함이 유지되는 빵집 말이다. 군자동에 발길이 닿았을 때 문득 생각나는 그 곳이 되는 것, 초이고야가 가고자 하는 길이다.

『작은 빵집이 맛있다』 저자. ‘김혜준컴퍼니’대표로 음식 관련 기획·이벤트·브랜딩 작업을 하고 있다. 르 꼬르동 블루 숙명에서 프랑스 제과를 전공했다. ‘빵요정’은 그의 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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