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CEO 남의 말 안 들어 … 바이어들 “외계인 같다” 불만

중앙선데이

입력 2018.11.03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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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16면

홍병기의 CEO 탐구
김은주 대표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들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자기만의 인맥을 만들어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김은주 대표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려는 중소기업들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 자기만의 인맥을 만들어나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경빈 기자]

김은주 EMC글로벌 대표이사(47)의 주무대는 중소기업의 해외 시장과 판로 개척을 위한 수출컨설팅 분야다. 지방대 출신, 여성이라는 약점을 딛고 창업해 글로벌 세일즈에 도전한 그는 지난해 자신의 경험을 담은 『하이힐 신고 납품하던 김 과장은 어떻게 17개 명함 가진 CEO가 됐을까?』란 책을 발간해 화제가 됐다.

김은주 EMC글로벌 대표
기업인들, 해외 시장 인식 태부족
커뮤니케이션 문제 있는 경우 허다

국내 중소기업 사전 준비 안 해
80~90%가 영문 카탈로그도 없어

감·데이터 믿지 말고 해외 현장 확인
돈 걱정한다면 수출 생각 말아야

해외 시장 진출을 노리는 국내 중소기업의 수출 전략에 대한 김 대표의 고민과 조언을 들어봤다.

‘수출컨설팅’이란 개념이 다소 생소하다.
“기업의 수출을 지원·관리·장려하는 일종의 지식 기반 서비스다. 국내에선 그동안 수출컨설팅 업무를 오퍼상이나 브로커로만 인식해왔다. 거래의 단순한 소개에서 벗어나 의무와 책임감을 갖고 국내 기업의 입장에서 경험과 노하우를 지원하면서 해외 기업과 직접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역량을 배양하는 것이다. 회사 이름 ‘EMC’도 ‘수출 관리 회사(Export Management Company)’에서 따온 말이다.”
주로 어떤 일을 하나.
“커넥터 부품을 생산하던 중소기업에서 해외 영업을 10여년간 맡으면서 경험이 부족한 국내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도움이 되는 수출 컨설팅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현재 자동차부품·건축자재 등 7개 중소기업과 MOU를 맺고 해외 시장 진출과 글로벌 파트너쉽 구축을 돕는 컨설팅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그가 가진 17개의 명함은 자신이 관리하는 기업들로부터 받은 마케팅·수출 업무 관련 ‘이사’ ‘부장’ 등 대외 직명을 비롯해 각종 수출 지원 관련 기구 자문·전문위원 등이다. 김 대표는 “많은 중소기업이 ‘바이어 하나 소개해봐라. 잘 되면 수수료 줄게’라는 식으로 중개업자처럼 취급하는 게 가장 어려웠다”고 말했다. ‘시간은 공짜’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지식 노동 가치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치르는 거래로 정착시켜나가는 게 과제라고 강조했다.

수출 현장에서 국내 중소기업에 부족한 점은 무엇인가.
“최고경영자(CEO)의 마인드다.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20~30년쯤 성장하다 보니 기업 규모는 커졌지만 해외 시장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경우가 많더라. 해외 시장을 뚫을 때 능숙한 외국어보다도 어떤 마음가짐을 갖느냐가 중요하다. 현지 바이어와 커뮤니케이션에서 문제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상담에 들어가면 우리 기업들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한다. 해외 기업이 뭘 원하는지 경청하는 게 상당히 부족하다.”
구체적으로 말해보자.
“해외 바이어들은 ‘한국의 중소기업인들을 만나면 외계인과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 해외 비즈니스는 내 희망이나 요구를 주장하는 게 아니다. 상대방의 요구를 경청하는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상대방과 합의점을 찾아 협력하는 게 중요하다.”
왜 그럴까.
“우리 기업인들이 해외 진출을 너무 쉽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컨설팅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현장에서 진지한 고민 없이 정성을 들이지 않는 데다 사전 준비도 턱없이 부족한 경우를 많이 목격했다. 국내 중소기업의 제품 소개 카탈로그만 하더라도 영문 자료가 아예 없는 회사들이 80~90%다. 자기 기업에 (해외 바이어들이) 관심을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기 기업을 잘 포장하는 일이 우선이다. 수출 마케팅과 기술개발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많은데도 이조차도 알아보지 않는 기업인들이 많다.”
수출 시장 뚫기를 원하는 중소기업들에 해주고 싶은 말은.
“매출이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경영이 안정될 때까지는 수출에 의지하겠다는 생각을 꺼내선 안 된다. 돈 걱정을 해야 한다면 수출 생각을 아예 하지 마라. 수출은 경영의 돌파구가 아니다. 해외 시장의 고객은 무형자산으로 투자가 우선이다. 기회는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지지 않는다.”
기억에 남은 일화가 있다면.
“사우디아라비아 담수화 설비에 참여하려는 토목공사용 파이프 제조업체 일을 맡은 적 있다. 현지 바이어를 3번이나 직접 만나서 수출 여건을 확인해보니 자국 생산품 우선 구매 등과 같은 규제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 여건에 맞지 않아 과감하게 수출을 포기하라고 조언한 적이 있다. 대신 규제가 덜한 베트남 시장을 공략해 수출에 성공했다. 감이나 데이터를 믿지 말고 항상 현장을 확인해야 한다. 기업의 운명이 달린 일인 만큼 ‘~카더라’는 말 대신 항상 발로 뛰어서 직접 듣고 확인해야 한다.”
제목이 독특한 책을 냈다.
“대학 졸업 후 중소기업에 취직해 수입 오퍼 업무를 현장에서 배웠다. 그러다 결혼으로 2년을 쉬다보니 경력 단절로 일자리를 다시 얻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다 결국 전에 다니던 회사에 재입사하게 됐다. 영업업무를 맡으면서 고객과 상담하기 위해 정장에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녔다. 어떤 때는 제품 박스 몇십 개를 차 뒷자리에 싣고 직접 납품까지 하기도 했다. 부르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그러면서 현장에서 배운 게 많았다.”
경력 단절 여성으로서의 경험도 소중했을 것 같다.
“당시엔 재취업이 너무도 어려워서 외롭고 힘들었다. 사회에서 배신당한 것 같고 다시 직장으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좌절도 많이 했다. 그러나 인생을 길게 보면 모두가 소중한 시간이다. 시간이 걸리지만, 의지와 뜻이 있다면 반드시 일할 곳은 생긴다. 절망과 좌절 속에서 한 걸음 더 나아 가는 용기를 잃지 말라는 말을 전해주고 싶다.”
사회 진출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은.
“자신의 역량을 향상하려 하지 않고 좋은 대우만 바라선 안 된다. 쉬운 선택만 하지 말고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자신의 노력·시간·정성을 기울여야 한다. 영어 단어 하나를 외우기에 앞서 자신이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를 놓고 많이 고민해라.”
[글씨로 본 이 사람] 활달하고 성취 욕구 있어
김은주 대표 글씨

김은주 대표 글씨

김은주 대표의 글씨(사진)는 활달한 필체로 큼직큼직하게 쓰는 게 특징이다. 필적 분석 전문가인 구본진 변호사는 “큰 글씨를 쓰는 사람들은 열정과 성취 욕구가 있고, 확장 지향적이며, 진취적으로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라고 설명했다.

‘ㅎ’자의 꼭짓점이 큰 것은 최고가 되려는 의지를 뜻하며, 글씨의 가로 선과 세로 선이 모두 긴 것은 인내력이 있고 일을 완수하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다만 큰 글씨를 쓰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현실 감각이 약하고, 충동적이며, 일을 마무리하지 못하는 단점도 있다는 게 구 변호사의 분석이다.

홍병기 선임기자 klaat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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