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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 칼럼] ‘10월의 하늘’ 해마다 기적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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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8호 35면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 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뭔가를 9년째 지속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가슴 설레는 것이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함께 해주고 선한 사람들이 도와준다. 혼자서는 할 수 없는 ‘현상’이 세상 속에 만들어진다. ‘10월의 하늘’이 그렇다.

과학자들이 작은 도시 도서관에서 #강연기부하는‘10월의 하늘’ 9년째 #더 나은 미래 위해 내 재능 나누며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감동받아 #‘오늘·내일의 과학자’ 만남 실현 #10주년엔 100개 도서관서 하고파

민감한 청소년 시기, 우연히 듣게 된 과학자의 강연, 무심코 읽게 된 과학책 한 권이 젊은이들에게 과학자의 꿈을 품게 만든다. 우주와 자연, 생명과 의식의 경이로움에 매혹된 채 말이다. 안타깝게도 작은 도시의 청소년들은 과학자를 만날 기회가 좀처럼 없다. 일상에 존재하지 않는 과학과 친숙해지기란 쉽지 않다.

이런 안타까움을 달래고자, 과학자들이 작은 도시 도서관에서 과학강연을 기부하는 행사가 바로 ‘10월의 하늘’이다. 올해도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2시에 전국 25개 도서관에서 50명의 과학자들이 과학강연을 펼쳤다.

지금은 커다란 행사가 되었지만 그 시작은 미미했다. 2005년 무렵 서산의 한 도서관에 초청을 받아 그곳에서 과학강연을 하게 됐는데, 의외로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과학자를 보기 위해 읍내에서 1시간 넘게 버스를 타고 온 학생부터 과학자를 처음 본다며 몸을 만지려는 장난꾸러기까지. 그 후 지방 도서관에서 과학강연을 하는 걸 재능기부인 줄도 모른 채 몇 해 동안 해왔다.

혼자만 하기 아쉬워, 2010년 9월, ‘저와 함께 작은 도시 도서관에서 강연 기부를 해주실 과학자 없으신가요?’라는 트위터의 작은 메시지 하나를 큰 기대 없이 띄웠다. 그런데 불과 8시간 만에 연구원·교수·의사·교사 등 100여 명이 기꺼이 강연 기부를 하겠다며 신청해 주셨다. 허드렛일이라도 돕겠다는 분, 책을 후원하고 싶다는 분들도 수백 명에 달했다.

온종일 트위터 타임라인을 훈훈하게 달구면서, 결국 그해, 전국 29개 도서관에서 67명의 과학자들이 동시에 과학강연을 기부하는 ‘아름다운 기적’이 만들어졌다. 1년 중 364일은 자신의 재능을 세상에 정당히 청구하지만,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하루만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내 재능을 기꺼이 나누고 기부하자는 취지에 공감한 과학자들이 참여해 준 덕분이다.

단 하루 동안 벌어지는 행사이지만, 20명이 넘는 사람들이 석 달 전부터 애써야 한다. 초여름부터 모인 준비위원회 멤버들은 올해도 ‘10월의 하늘’을 치르기 위해 도서관을 섭외하고, 강연자를 모집했다. 출판사의 도움으로 강연을 묶어 책으로 펴내고, 강연에 참석한 학생들은 강연을 듣고 정성스레 감사편지를 써 강연자에게 선물할 수 있도록 엽서를 마련했다. 홍보를 위해 포스터를 만들어주신 분들, 주제곡을 작사·작곡하고 동영상을 만들어주신 분들, 뒤풀이 때 강연기부자들에게 드릴 선물을 기꺼이 내놓는 분들. 이렇게 이 행사에 참여하는 모든 분들은 아무런 대가 없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돈이 오가지 않는 행사, 재능과 시간, 그리고 각자 가진 것들을 기부해 운영되는 행사, 법인도 없고 지원금이나 예산도 없고 그저 ‘기억으로 가입하고 망각으로 탈퇴하는’ 느슨하고 유연한 조직이 단군 이래 가장 큰 과학행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놀라운 기적은 모두를 감동시키는 한순간이 필요하다. 소풍 가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버스를 갈아타서 도착한 작은 도서관에서 만나게 되는 작은 눈망울들, 강연을 들은 학생들이 정성스레 써준 감사의 편지들,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시면서 건네준 마늘이나 밤 같은 지역특산물 선물까지,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감동이 우리를 9년째 참여하게 만든다.

‘10월의 하늘’은 한없이 가난하다. 지방으로 내려가 기꺼이 과학강연을 기부하겠다고 자원해준 과학자라면 누구나 할 수 있다. 교수나 연구원만이 아니라 대학원생, 과학교사, 과학기자 등 과학을 하는 누구라도 말이다. 잘 꾸며진 강연장이 아니라 100석도 채 안 되는 작은 도서관에서 벌어지며, 듣는 청중들도 대부분 그 지역 중고등학생들이다.

내년에는 드디어 10주년이 된다. 올해 ‘10월의 하늘’ 행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부터 내년을 생각하며 가슴이 설렜다. 내년에는 야심차게 100개의 도서관에서 ‘10월의 하늘’을 진행하고 싶다. ‘오늘의 과학자가 내일의 과학자를 만나다’라는 우리의 모토를 실현해 보고자, 학생들의 3분 강연 시간도 마련해보고 싶다. 슬라이드 중심의 과학 강연이 아니라 현장에서 실험하고 학생들이 실제로 참여하는 과학강연들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앞을 보지 못하거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없는, 몸이 불편한 학생들도 참여할 수 있는 과학강연도 준비하고 싶다. 연극이나 공연으로, 낭독회나 모의법정으로 어떻게 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시도해 보고 싶다.

2019년 10월 26일, 10월의 마지막 토요일을 벌써 달력에 표시해둔다. 지금부터 그날을 준비하는 우리들의 마음은 일 년 내내 10월의 하늘일 것이다. ‘10월의 하늘’에서 강연을 들었던 청소년들 중에서 한 명이라도 과학자 혹은 공학자가 되어 세상을 좀 더 근사한 곳으로 만드는 데 기여해 준다면, 우리는 항상 ‘10월의 하늘’을 준비할 것이다.

정재승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문술미래전략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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