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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잘 사는 사회를” 문 대통령 해법은 인내와 세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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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에서 2019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마친 뒤 본회의장을 나서며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1일 국회에서 2019년도 예산안 관련 시정연설을 마친 뒤 본회의장을 나서며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임현동 기자]

문재인 대통령의 세 번째 국회 시정연설의 핵심은 ‘함께 잘 살자’였다. 해법은 ‘인내’와 ‘세금’이었다.

소득주도 유지 밝힌 시정연설 #“불평등 키우는 과거 방식 복귀 안돼” #“자영업·고령층 힘겨운 분 생겨” #정부 경제정책 부작용 일부 인정 #“2%대 저성장 고착화 가능성 커”

문 대통령은 1일 국회에서 한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우리는 ‘잘 살자’는 꿈을 어느 정도 이뤘지만 ‘함께’라는 꿈은 아직 멀기만 하다”며 “경제 불평등을 키우는 과거의 방식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는 우리 사회가 가야 할 방향과 목표”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년6개월은 함께 잘 살기 위해 우리 경제와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자 했던 시간이었다”며 “이제 우리는 경제적 불평등의 격차를 줄이고 더 공정하고 통합적인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했다. 소득주도·공정경제·혁신성장으로 요약되는 자신의 경제 기조를 수정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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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은 분배에 초점을 맞춘 경제정책으로 인한 부작용에 대해 일부 인정했다. “새롭게 경제기조를 바꿔 가는 과정에서 소상공인·자영업자·고령층 등 힘겨운 분들도 생겼다”면서다. 그러나 고용악화 등에 대한 유감 표명은 없었다. 오히려 “우리 경제 체질과 사회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성과가 나타날 때까지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물은 웅덩이를 채우고 나서야 바다로 흘러가는 법”이라며 “전환과정에서 발생하는 고통을 함께 이겨 내겠다”고 말했다.

지난 한 달간 국내 상장사의 시가총액은 262조원이 줄었다. 그러나 이날 연설에는 주가 폭락에 대해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고 말한 뒤 “미국의 금리 인상, 미·중 무역분쟁 등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라는 외부 요인을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여러 해 전부터 시작된 2%대 저성장이 고착화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했다.

해결책으로 “재정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할 때”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적극적 재정운용을 통해 경기 둔화의 위험에 선제적으로 대비하고 일자리·양극화·저출산·고령화 같은 구조적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며 “IMF·OECD 등 국제기구들도 재정 여력이 있는 국가들은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영할 것을 권고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올해보다 9.7% 늘어난 470조5000억원의 내년도 예산안을 제출한 상태다. 2009년 이후 가장 큰 폭의 증가다. 문 대통령은 수퍼 예산에 대해 “포용 국가로 가기 위한 예산”이라고 말했다. 특히 “일자리를 통해 누구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 혁신성장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며 “일자리 예산을 22% 증가한 23조5000억원 배정했다”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또 “8월까지 7만 개의 법인이 새로 생기고, 2조2000억원의 신규 벤처투자가 이뤄졌다. 단지 혁신성장뿐 아니라 우리 경제에 희망을 주는 지표”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은 판문점 선언 비준 동의를 직접 요청하지 않았다. 대신 “전 세계가 한반도를 주목하고 있는 이때 우리 스스로를 존중하자는 간곡한 요청 말씀을 드린다”며 “정부와 미국 정부가 북한과 함께 노력하고 있는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프로세스에 국회가 꼭 함께 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적같이 찾아온 기회다. 결코 놓쳐서는 안 될 기회다. 평화야말로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며 “이 기회를 놓친다면 한반도의 위기는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적폐청산과 관련해선 “국민은 일상에서의 작은 불공정도, 조그마한 부조리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회를 원한다”며 “권력 적폐를 넘어 생활적폐를 청산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당은 박수치지 않아=이날 시정연설에선 모두 21번의 박수가 나왔다. 대부분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반응이었다. 남북 교류협력과 평화 관련 언급이 나올 때는 민주평화당 등 일부 야당 의원도 박수를 보냈다.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문 대통령이 퇴장할 때까지 박수를 치지 않았다. 지난해 한국당은 검은색 상복과 ‘근조(謹弔)’ 리본을 착용하고 ‘민주주의 유린, 방송장악 저지’라는 피켓과 현수막으로 침묵시위를 벌였다. 문 대통령은 연설 중 49페이지의 프레젠테이션(PT)을 본회의장 전광판에 띄웠다.

문 대통령은 본회의장에 입장할 때는 민주당 의원들과 인사했다. 퇴장할 때는 한국당 의원석을 향했다. 문 대통령은 약 4분여간 본회의장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퇴장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연설에 앞서 문희상 국회의장을 비롯한 5부 요인(대법원장·국무총리·헌법재판소장·중앙선거관리위원장), 여야 5당 대표·원내대표와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문 의장은 “경제가 무척 어렵다는 게 정부 정책이 변화하는 과도기라고 보는 사람도 있지만, (실제) 민생의 어려움을 얘기하는 사람이 많다”며 “그 점을 대통령께서 신경 써 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말씀하신 부분에 역점을 두고 예산안을 편성했다. 많이 도와달라”고 답했다. 이어진 비공개 환담에서는 “판문점 선언 국회 비준 동의 얘기는 나오지 않았고,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에 대한 대통령의 말씀이 있었다”고 홍영표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했다.

우리 44회, 성장 25회 언급 … 작년엔 성장 16회, 함께 13회

문재인 대통령이 2019년도 예산안 국회 시정연설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는 ‘우리’(44회), ‘국민’(28회)이었고 ‘경제’(28회), ‘지원’(27회), ‘성장’(25회), ‘함께’(25회)가 뒤를 이었다.

‘예산을 9.7% 늘려 서민과 청년을 지원하고 경제 성장을 이뤄 함께 잘 사는 포용 국가로 나아가겠다’는 메시지가 단어 빈도수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연설의 단어 빈도수도 ‘국민’(69회), ‘우리’(42회), ‘경제’(39회), ‘지원’(26회) 순으로 유사했다. 다만 ‘성장’(지난해 16회), ‘함께’(13회)는 올해 훨씬 더 많이 사용했다. 연설 끝부분에서 문 대통령은 한반도 평화와 국정에 대한 야당의 협력을 요청하며 “우리는 함께 잘 살아야 한다. 우리는 함께 잘 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강태화·하준호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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