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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O 200분의1 비용' 유전자 가위로 새로운 품종 개발 도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툴젠 종자연구소의 모습. 종자연구소는 유전자 가위를 기반으로 새로운 육종 기술을 연구한다. 한 연구원이 감자싹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 툴젠]

툴젠 종자연구소의 모습. 종자연구소는 유전자 가위를 기반으로 새로운 육종 기술을 연구한다. 한 연구원이 감자싹을 들여다 보고 있다. [사진 툴젠]

연초록색 싹을 틔운 감자가 투명한 플라스틱 안에서 자라고 있었다. 냉장고와 비슷한 크기의 배양기에선 하루 이틀 간격으로 싹을 틔운 실험용 감자 50여개가 들어차 있었다. 이 감자들은 조만간 미세한 조각으로 분해돼 유전자 가위 교정을 거친 뒤 배양 등을 거쳐 감자 뿌리나 줄기 등으로 자라나게 된다.

국내 첫 유전자가위 전문 종자연구소 #갈색으로 변하지 않는 감자 연구 중

지난달 31일. 서울 금천구 가산동 한 오피스건물 12층에 자리 잡은 툴젠 종자연구소를 찾았다. 권순일 종자연구소 팀장은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갈변 현상을 없앤 감자를 만들 것”이라며 “이를 응용하면 오래 놔둬도 색이 변하지 않는 사과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갈변 현상이란 감자나 사과 속의 폴리페놀옥시다인이란 효소가 산소와 만나 일어나는 현상이다. 유전자 가위로 DNA 속 특정 염기를 제거하는 방법으로 갈변을 없앤다는 얘기다.

생명공학 전문 벤처기업 툴젠이 종자연구소를 설립한 건 지난 달이다. 농우바이오를 비롯해 종자를 생산하고 판매하는 기업은 적지 않다. 이곳 연구소가 기존 종자기업과 다른 건 유전자 가위만을 활용해 종자 개량 연구를 진행한다는 점이다. 권 팀장은 “유전자 가위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녹말 성분을 강화한 찰진 감자와 몸에 좋은 불포화 지방산 함량을 높은 콩을 개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툴젠 종자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감자의 싹을 잘라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사진 툴젠]

툴젠 종자연구소에서 한 연구원이 감자의 싹을 잘라 연구에 활용하고 있다. [사진 툴젠]

좋은 종자만을 골라내는 육종 기술 중 가장 오래된 방법은 바로 교배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 통일벼가 대표적이다. 서로 다른 벼 품종을 교배한 통일벼는 기존 대비 수확량을 30%나 늘렸다. 하지만 교배는 성공률이 낮고, 여러 세대를 거쳐야하는 만큼 상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이를 대체한 게 30년 전 처음으로 등장한 유전자 변형 생물(GMO)이다. GMO는 세균 등에서 유래한 외부 유전자를 동ㆍ식물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유전자 가위를 통한 육종은 유전자를 바꾼다는 점에선 GMO와 비슷하다. 하지만 교정이 필요한 유전자만을 골라 교체한다는 점은 GMO와 다르다. 한지학 종자연구소 소장은 “유전자 가위가 육종에 적용되기 시작한 건 4년 전”이라며 “이를 활용하면 원하는 부위의 유전자만을 콕 짚어 교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자 가위가 주목받고 있는 건 육종 개발비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소장은 “GMO 한 품종을 새롭게 개발할 경우에는 1000억원 이상이 필요하지만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면 4억~5억원이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유전자 가위는 기술 혁신을 거듭하며 3세대 크리스퍼 가위까지 개발됐다. 유전자 가위를 하나 만드는 비용은 1만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저렴한 만큼 연구가 활발해 응용 분야도 넓어지고 있다.

유전자 가위는 세계 종자 지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혁신 기술로 꼽힌다. 65조원 수준의 세계 종자 시장은 바이엘ㆍ바스프 등 다국적 기업 4곳이 70%를 독점하고 있는데 유전자 가위를 활용한 육종 전문 기업이 등장하고 있어서다. 2010년 미 미네소타주에서 문을 연 육종 기업 칼릭스트가 대표적이다. 칼릭스트는 유전자 가위를 활용해 불포화지방산을 높인 콩을 만들었다. 이렇게 만든 콩은 올리브 열매처럼 기름지다. 이 기업은 소화를 돕기 위해 섬유질 성분을 높인 밀 개발에 연구력을 모으고 있다.

한 소장은 “유전자 가위가 등장하면서 독점 시장이 깨지고 있다”며 “유전자 가위 기술만 확보하면 벤처 기업도 종자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했다.

전망도 밝다. 세계 종자 시장은 인구 증가에 따라 꾸준히 성장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제연합(UN)은 2050년 무렵 세계 인구가 100억명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유전자 가위로 개량한 식물은 2020년 무렵 시장에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넘어서야 할 관문도 있다. 유전자 가위로 개량한 식물은 GMO 안전성 문제와 맞물리며 새로운 논쟁을 낳고 있다. 핵심은 ‘유전자 가위로 개량한 식물을 GMO와 동급으로 볼 것이냐’다. 한국에선 잠잠하지만, 해외에선 뜨거운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유전자 가위로 개량한 식물을 GMO 규제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미국 정부도 이와 비슷한 방향으로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

반면 유럽은 정반대다. 유럽 사법재판소는 지난 7월 유전자 가위로 교정한 작물에도 기존 GMO 규제를 동일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이향기 한국소비자연맹 부회장은 “GMO 식품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여전한 만큼 유전자 가위로 교정한 작물에 대해서도 충분한 안전성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기헌 기자 emck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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