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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아버지도 징용, 소송 걸면 되나” 정부에 문의 빗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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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강제징용 판결] 피해자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한 양금덕(앞줄 오른쪽)·김재림씨가 31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2차 소송의 첫 항소심 공판에 휠체어를 타고 출석하고 있다. 이날 피해자들은 ’이 재판을 시작한 지 4년, 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넘었다. 우리 모두 구순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한 양금덕(앞줄 오른쪽)·김재림씨가 31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2차 소송의 첫 항소심 공판에 휠체어를 타고 출석하고 있다. 이날 피해자들은 ’이 재판을 시작한 지 4년, 사건이 발생한 지 70년이 넘었다. 우리 모두 구순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강제징용 피해자 4명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가운데 31일 광주광역시에선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유족 등 4명이 일본 미쓰비시중공업을 상대로 한 항소심 첫 재판이 열렸다. 재판에 참석한 근로정신대 피해자 김재림(88) 할머니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며 “살아 있는 동안 소원을 풀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단체는 공판 후 기자회견을 열고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조속한 재판 진행과 일본 전범 기업의 판결 이행을 촉구했다. 원고 측 변호인인 이상갑 변호사는 “대법원이 판결한 강제징용 사건과 이 사건은 쟁점이 동일하다”며 “원고들이 90세 안팎이다. 선고가 더 늦춰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할머니들은 1944년 5~6월 나고야 항공기제작소에 끌려가 고된 노동을 강요당했다.

지연이자 합치면 배상금 2억원 #신일철주금, 포스코 지분 3.32% #뉴욕 증시서 산 거라 압류 미지수 #광주선 근로정신대 배상 재판 #“살아있는 동안 소원 풀어달라”

이날 서울 종로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매주 수요일 열리는 집회엔 평소보다 많은 400여 명이 모였다. 집회를 주최한 정의기억연대 윤미향 이사장은 “위안부 피해자도 2015년 한·일 합의 후 소송을 내 재판이 진행 중인데, 일본 정부에 소장이 전달됐는지조차 확인하지 못하고 있다”며 “한·일 위안부 협의를 폐기하라”고 촉구했다.

이날 강제징용 피해자를 지원하는 행정안전부 과거사관련업무지원단엔 문의전화가 그치지 않았다. "우리 할아버지도 피해자인데, 지금 소송을 걸면 이길 수 있느냐”와 같은 문의가 많았다. 법원 판결과 별도로 정부도 강제징용자를 파악해 위로금으로 유족 2000만원, 부상자는 300만~2000만원을 지급했다. 현재까지 정부 위로금 지급이 결정된 사례는 7만2000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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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대법원은 신일철주금에 대해 "원고에게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판결했지만, 실제 배상금액은 더 많다. 피해자들이 청구한 1억원 외에 ‘항소심 변론 종결일인 2013년 6월 19일부터 계산해 연 20% 이율에 해당하는 돈을 추가 지급하라’는 부속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피해자들은 신일철주금에 대해 2억원 정도의 배상금 채권(債權)을 갖게 됐다. 신일철주금이 배상하지 않으면 이자는 더 불어난다. 이 재판에서 1억원의 청구금액이 적정한지는 쟁점이 되지 않았다. 신일철주금이 배상 책임 자체를 인정하지 않은 이유가 크다.

그렇지만 청구 금액이 재판에서 쟁점이 되지 않는다 해도 ‘승소=청구액 전액 인정’이란 공식은 성립되지 않는다. 실제 2015년 광주고법은 대법원 판례(2012년)에 따라 징용 피해자 5명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는데, 재판부가 인정한 배상금(2000만~1억5000만원)은 청구금액의 4~75%였다. 재판부는 "일본 기업의 불법행위 가담 정도, 피해자에 대한 억압 수준, 우리나라 물가와 국민소득 상승분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해 위자료의 액수를 정했다”고 설명했다.

판결이 났다고 해도 일본 기업이 배상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강제집행을 해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패소한 신일철주금은 지난해 기준 3.32%의 포스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시가로는 7000억원 정도다. 그러나 이를 국내 보유 자산으로 보고 강제집행할 수 있을지가 미지수다. 신일철주금이 가진 지분이 국내 증권시장이 아닌,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사들인 주식예탁증서(DR)이기 때문이다. 대형 로펌 소속의 한 변호사는 "해외 증시에서 거래한 DR을 국내 재산으로 볼 수 있을지가 문제고, 이를 압류하기 위해 미국 법원에 강제집행을 요청해야 할 수도 있는데, 거기서 받아들여줄 것인지 역시 불확실하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김민상·윤정민 기자 kim.min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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