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이해찬의 수상한 쫑파티, 어렴풋이 신주류 보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해찬의 ‘수상한’ 쫑파티 잠입 취재기

당선 62일 뒤 비공개 대형 해단식 #500명 대전에 모여 ‘이해찬’ 연호 #당원들 “해찬과 끝까지 간다” 다짐 #본인은 “대표가 마지막 공직” 강조 #당에선 “킹메이커 위력 과시” 평가 #이상민 “대권도 꿈꿀 수 있겠더라” #일부 의원 “청와대, 불편할 가능성”

지난 26일 대전에서 열린 전대 캠프 해단식에 500여 당원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이해찬 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설을 강력 부인하면서 ’2년 대표 임기를 채우고 당 고문으로 2022년 대선 승리에 힘을 쏟은 뒤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강찬호 위원]

지난 26일 대전에서 열린 전대 캠프 해단식에 500여 당원들의 환호 속에 등장한 이해찬 대표가 연설하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설을 강력 부인하면서 ’2년 대표 임기를 채우고 당 고문으로 2022년 대선 승리에 힘을 쏟은 뒤 물러날 것“이라고 밝혔다. [강찬호 위원]

“대선 안 나간다” 했지만 … “킹도 꿈꿀 만” 추측 낳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8·25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지 두 달이 넘은 지난 26일 비공개로 대전에서 전대 캠프 해단식을 가졌다. 500명 넘는 당원이 1박2일 일정으로 참석한 매머드급 행사였다. 시점도, 규모도 전례가 없다. 민주당 의원 상당수도 몰랐고 기자들의 취재도 봉쇄된 가운데 치러진 지각 쫑파티에 잠입, 지켜봤다.

지난 26일 대전시 괴정동에 위치한 KT 인재개발연수원 제2연수관 연회장. ‘이해찬의 든든캠프 해단식’이 열리는 장소였다. 40~70대로 보이는 중장년층 남녀 500여 명이 운집했다. 가슴에는 ‘전남 김○○’ ‘충북 이XX’ 등 출신 지역과 이름이 적힌 노란색 용지가 붙어있었다. 이들은 식이 열리기 2~3시간 전부터 모여들어 이해찬의 등장을 기다렸다. 필자도 그중 한명이었다.

“기자들? 오늘 해단식은 당 공식 행사가 아니라 이 대표가 사적으로 마련한 자리라 기자들은 출입이 안 돼.” 행사 관리자가 전화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긴장됐다. 하지만 이름표 없이 서성이는 필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4층에 마련된 식장에 가려면 3층에서 승강기를 내려 계단을 이용해야 했다. 계단까지 가는 복도에는 이 대표의 야당 시절 활약상과 전당대회 유세 장면을 담은 대형사진들이 전시돼 있었다. ‘든든해요 이해찬’ ‘사랑해요 이해찬’ 등의 구호 피켓을 든 지지자들이 감정에 북받쳐 오열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도 있었다. 4층에 이르자 ‘자랑스런 민주당, 든든한 이해찬’이라 적힌 대형 현수막이 나부끼는 가운데 행사 준비가 한창이었다.

마침내 오후 6시가 되자 식이 개시됐다. “먼저 호국 영령과 민주 열사, 그리고 고(故) 김대중·노무현 대통령님에 대한 묵념이 있겠습니다. 일동 묵념!” 이어 지역별로 호명이 이어졌다. “경기에서 오신 분들!”“네!” “전남에서 오신 분들” “여기요!”

해단식이 열린 KT연수원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안내판. [강찬호 위원]

해단식이 열린 KT연수원 행사장 입구에 마련된 안내판. [강찬호 위원]

호명된 지역마다 10여 명씩 일어나 인사했다. 박수가 쏟아졌다. 이해찬의 지지 조직이 전국 17개 특별·광역·도·시에 고루 퍼져있는 걸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왜 하필 대전에서 해단식을 열었나”는 질문에 대한 답도 여기서 나왔다. “중간지점인 대전에서 해야 전국의 당원들이 고루 부담 없이 올 수 있어서다.” (김현 민주당 제3사무부총장)

먼저 단상에 오른 캠프 선대위원장 이치범 전 환경부 장관은 “상황이 만만치 않다. 적폐세력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고, 보수 언론의 작태도 여전하다. 이해찬을 민 초심으로 계속 그의 힘이 돼줘야 한다”고 했다. 이은희 캠프 여성위원장도 열변을 토했다. “오늘은 이해찬 캠프 해단식이 아니라 다시 시작하는 자리다. 이 대표가 ‘30년 집권’ 하니까 ‘장기집권’이라 주장하는데, 아니다. 그래야(장기집권 해야) 나라가 바르게 선다. 그러려면 이 대표와 함께 해야 한다. 여러분! 이 대표와 끝까지 함께 할 수 있나?”

“예!” 화답과 함께 박수가 이어졌다.

마침내 이해찬이 등장해 마이크를 잡았다. 연회장이 떠나갈 듯 환호가 터졌다. “제가 전당대회에서 ‘20년 이상 집권’을 주장했다. ‘교만하다’는 반응이 나왔는데 지금은 만나는 이마다 20년, 아니 30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려면 우선 내후년 총선에서 압승해야 한다. 이를 위해 당 혁신을 과감하게 하겠다. 이제 우리 당엔 계보도, 파벌도 없다. 수십 년 정치하면서 이렇게 좋은 환경은 처음이다. 그래서 정권을 절대 뺏겨선 안 된다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오늘 내가 이 모임을 한다니까 대선에 나가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분도 많고 (언론도) 그런 시각으로 쓸까 봐 분명히 말씀드린다. 대표가 마지막 공직이다.그 뒤 대선(2022년)까지 2년은 상임고문으로 재집권에 혼신의 힘을 다하겠다. 오해나 억측 말라.”

이어 스시·갈비 등 20여 가지 뷔페로 만찬이 이어졌다. 350명분 식사가 금방 동났다. 테이블이 꽉 차 별실로 이동해 식사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김현 사무부총장은 “이 대표가 자신을 도운 당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는 자리일 뿐 정치적 의미는 전혀 없다”고 강조했다. 캠프 특보를 지낸 한태선 정책위 부의장도 “행사 비용은 참석 당원들이 각자 3만원씩 내 해결했다. 행사장에서 돌린 선물도 당원들이 지역마다 특산품을 마련해와 맞바꾼 것”이라 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주당 중진 관계자는 좀 더 ‘솔직한’ 설명을 했다. “이해찬은 본래 사조직이 두텁지 않다. 이사장으로 일한 재단법인 ‘광장’을 고리로 모인 동지 수십명 정도다. 그래서 지난 전당대회에선 전국 각지에서 모인 ‘외인부대’들이 이해찬 지지에 앞장섰다. 그런데 이해찬은 대표가 된 뒤 방북과 국감 등 일정이 바쁘다는 이유로 이들에게 ‘당선사례’를 하지 않았다. 자연히 불만이 쏟아졌다. 결국 이 대표가 손을 들고 국감이 거의 마무리된 26일에 지각 쫑파티를 연 것이다.”

민주당 의원 상당수는 “행사 규모를 보면 킹은 아니라도 킹메이커로서의 위력 과시는 확실히 된 자리”라고 평했다. 수도권 중진 의원은 “이해찬은 유시민을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 앉혀 잠룡으로 등극시킨 데 이어 대규모 캠프 해단식을 가졌다. 유시민을 ‘이해찬호’에 태우고 차기 대선 출정 선언을 한 형국”이라고 했다. 반면 비문계 한 의원은 “대표가 그런 행사를 여는 줄 까맣게 몰랐다. 당의 통합을 위해선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이해찬 해단식에 모습을 보인 현역 민주당 의원은 4명. 윤호중 사무총장·김태년 정책위의장 등 이해찬 측근으로 당직을 맡은 의원들은 불참했고 대표 비서실장인 김성환(노원병·초선) 의원만이 보였다. 이해찬의 ‘사적 행사’임을 의식한 불참으로 비쳤다. 대신 이해찬 체제 출범 전까지 비주류로 분류돼온 이종걸(안양 만안·5선)·이상민(유성을·4선)·김두관(김포갑·초선) 의원이 참석했다. 김두관은 노무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친노지만 문재인 대통령과는 2012년 대선 경선에서 맞붙은 탓에 친문 주류와는 거리가 있고, 이종걸·이상민은 비노다. 이종걸은 원내대표 시절 ‘친문 패권주의’를 비판하며 문재인과 각을 세운 바 있다. 그러나 이 3인은 지난 전당대회에서 이해찬을 확실히 지지한 공통점이 있다. 이종걸은 컷오프에서 탈락하자마자 이해찬 지지를 선언했고 측근 10여 명을 이해찬 캠프에 보내 돕게 했다. 이상민과 김두관도 마찬가지다. 비문 비주류로 겉돌던 이들이 이해찬의 개인 행사에 등장, 헤드테이블에 앉아 친분을 과시한 것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누가 ‘신주류’인지 확인된 것”이라 말하기도 했다. 이상민 의원에게 물었다.

이해찬이 취임 두 달 만에 대형 해단식을 했다. 당 대표가 이런 경우는 드물지 않나.
“나도 그렇게 본다. 보통 캠프 해단식은 서울에서 대충 하고 끝내는데 지방에서 뒤늦게 크게 열었다. 난 이 대표가 킹메이커를 넘어 대망(대통령)도 꿈꿀 수 있다고 본다.”
대선 출마는 절대 안 한다고 했지 않나.
“정치인 말을 믿나? 당 대표도 원래 안 하겠다고 하다가 남들이 하라니까 결국 한 것 아니냐. 기회가 생기면 바뀌는 게 정치인 마음이다. 게다가 이 대표는 원래 비호감 이미지가 강했지만 국회 출입 기자들에 따르면 요즘 많이 달라지고 있단다. 말단 기자들에게 농담도 던지는 등 호감형 이미지로 바뀌고 있다는 거다.”
어떻게 해단식에 참석하게 됐나.
“캠프 선대본부장인 이희범 전 장관이 ‘오라’고 문자 메시지를 보내줬다. 또 행사장이 내 지역구에 있다.(신주류가 된 거냐?) 이 대표 당선을 돕긴 했다. 그러나 최측근이라고 하긴 그렇다.”
해단식으로 이해찬의 존재감이 더 커진 느낌이다. 청와대와는 어떤 관계가 될까.
“문 대통령의 남북대화가 정국을 압도하고 있어 이 대표가 지금은 공간이 작다. 하지만 경제가 이슈가 되면 이 대표가 규제개혁과 혁신성장에 힘을 실으면서 입지를 늘릴 수 있다. 그때 청와대와 이견이 생길 수도 있다. 사실 이 대표는 노무현 정부 총리 시절 신자유주의적인 성향을 보였다. 골프장 100개를 늘리자는 주장도 했다. 겉으론 진보인데 속은 다르다. 김대중 전 대통령(DJ) 밑에서 장관 하면서 DJ의 ‘상인적 현실감각’에 영향을 받은 듯하다.”

이해찬은 차기 대선에서 핵심 후원자 역할을 할 수 있는 대권 잠룡을 다수 보유하고 있다. 여권 최대 조직인 노무현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유시민을 필두로 TK (대구·경북) 블루칩인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이해찬과 그는 운동권 선후배로 친분이 각별하다), 이해찬 최측근 이화영 전 의원을 정무부지사로 중용한 이재명 경기지사 등이다. 민주당 수도권 중진의원은 “이해찬이 거느린 잠룡군은 꽃놀이패다. 친노와 비노가 다 안배돼 현 정권 흥망에 따라 패를 바꿔가며 대선 후보를 꽂을 기반을 갖췄다. 특히 유시민은 태풍의 눈이다”고 했다.

주목되는 것은 이 대표 행보에 대한 청와대 반응이다. 수도권 중진의원은 “청와대는 임종석 비서실장과 이낙연 총리를 대권 잠룡으로 미는 기류가 있으나 이해찬 리스트엔 그들이 없다. 이런 마당에 이 대표가 존재감을 과시하는 행사를 열었으니 아무래도 불편할 것”이라고 했다. 다른 여권 소식통도 “이해찬이 지난 10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에게 ‘5·24 제재 해제 용의가 있느냐’고 물었는데 강 장관이 ‘관계부처가 검토 중’이라고 답해 야당의 맹공을 자초했고, 결국 발언을 번복해야 했다. 그때 청와대 일각에서 ‘이 대표 총기가 떨어졌다’는 탄식이 나왔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정책 디테일을 놓고 이해찬과 소통하기 어려운 현실이 드러나는 일화가 아닐 수 없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