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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년 맺힌 한 풀이 이춘식씨 "이겼지만 혼자 남아 마음 아파"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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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94)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울먹이고 있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이자 재상고심이 시작된 지 5년 2개월 만의 판결이다. 김상선 기자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중 유일한 생존자 이춘식(94)씨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며 울먹이고 있다. 이번 판결은 피해자들이 소송을 제기한 지 13년 8개월 만이자 재상고심이 시작된 지 5년 2개월 만의 판결이다. 김상선 기자

"내가 마음이 슬프며 눈물이 많이 나고, 혼자 나와서 서운하다고….”

17세 때 일제 강제징용 끌려가 #소송제기 이후 13년8개월 만 #재상고심 5년2개월 만에 승소 #피해자 4명 중 3명은 이미 사망

30일 오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대법원 법정 밖으로 나온 이춘식(94)씨의 얼굴엔 기쁨과 슬픔이 교차했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인 이씨는 이날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했다. 17세에 일본제철소로 끌려가 임금 한 푼 받지 못하고 고된 노동을 했던 소년이 10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돼서야 노동의 대가를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씨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이씨와 함께 승소의 기쁨을 나눴어야 할 이들이 영정사진으로 법정을 찾았다. 이번 선고는 2013년 8월 대법원에 다시 사건이 접수된 이후 5년2개월 만에 내려졌다. 2005년 2월 소송 제기 이후로는 13년8개월 만이다.

이 기간에 이씨와 함께 소송을 제기했던 김규수·신천수·여운택씨 등 3명은 고인이 됐다. 이씨는 3명이 고인이 된 사실을 이날 처음 알았다고 한다. 사건의 대리인인 법무법인 해마루 김세은 변호사는 “이씨가 다른 원고가 다 돌아가신 사실을 오늘 이 자리에서 알게 됐다. 지난 6월 김규수씨가 돌아가셨을 때도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날 이씨의 아들 이창환(65)씨는 대법정 옆 2호 법정에서 TV를 통해 선고를 지켜봤다. 선고가 나오자 그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 TV 화면을 하염없이 쳐다보며 한동안 자리를 뜨지 못했다. 젖은 눈가를 닦으며 감정을 추스른 그는 “아버지는 75년 동안 일본이 사죄하길 기다린 게 아니라 일본을 용서하기 위해 가해자가 나타나길 기다렸다”면서 “아버님 생전에 보시게 됐으니 만감이 교차한다. 역사의 준엄한 심판”이라고 말했다.

이날 선고에는 이씨와 함께 김규수씨의 부인 최정호(85)씨도 함께했다. 두 사람은 선고 직후 법정을 나와 말없이 서로의 손을 꼭 쥐었다. 최씨는 “기왕에 선고할 거면 일찍 좀 서둘러 주셨더라면 좋았을 텐데…”라며 “(김규수 할아버지) 본인이 그게 한이 됐어. 조금만 일찍 가시기 전에 이런 판결이 났으면 좋았을 텐데 마음이 아프다”고 말했다. 최씨는 “승소 소식을 전하러 내일이라도 남편이 있는 동작구 국립묘지에 가겠다”고 말했다.

재상고심 판단이 5년 넘게 걸린 것과 관련해선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일부러 재판을 늦췄다는 의혹이 이미 제기됐다. 지난 5월 활동한 법원 특별조사단에 따르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법원행정처가 작성한 문건에는 “해외 파견 자리를 얻어낼 의도를 가지고 외교적 마찰 소지가 있는 강제징용 재판 결론을 미루는 방안을 검토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검찰에 따르면 2013년 작성된 문건은 지난 27일 구속수감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지시로 만들어졌다. 차한성·박병대 당시 법원행정처장이 김기춘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의 공관에 찾아가 강제징용 소송을 논의한 정황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조한대·홍지유 기자 cho.hand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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