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법원장 "검찰 압수수색, 홍수처럼 많다" 정면 비판

중앙일보

입력

김영민 기자

현직 지방법원장이 검찰을 상대로 직설 발언을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기소된 이후 검찰과 법원의 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이다. 차관급인 고법부장 두 명에 이어 현직 지법원장까지 검찰을 향한 비판에 나선 모양새다.

최인석 울산지법원장, 법원 내부통신망에 #"20년 전에 비해 압수수색 10배 늘었다"고 비판

최인석(61ㆍ사법연수원 16기ㆍ사진) 울산지법원장은 29일 법원 내부통신망 ‘코트넷’에 “법원과 판사는 검사에게 영장을 발부해주기 위해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다”고 적었다. 그는 이날 ‘압수수색의 홍수와 국민의 자유와 권리’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검찰의 수사 방식을 정면 비판했다.

최인석 울산지방법원장

특히 최 원장은 최근 검찰의 양승태 사법부 수사와 관련, 검찰과 법원의 압수수색영장 ‘핑퐁 싸움’을 놓고 법원이 비판받는 상황을 놓고 “제 식구 감싸기가 아니라 죄송하지만 이제야 (판사들이) 제대로 깨달은 것 아니겠냐”며 “이제는 그걸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검찰을 무소불위의 빅 브러더로 만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우리 법원”이라며 “검사의 업무에 협조하는 데만 몰두하였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데는 소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998년 압수수색영장 청구건수(1만5463건)과 비교해 20년 사이 압수수색영장 청구 건수가 10배 이상 늘었다”고 적시했다.

"20년 전에 비해 압수수색 10배 늘었다" 비판

최 법원장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는 속담을 인용하며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 관행'을 비판했다. 검찰의 압수수색 영장 청구 남발 관행을 꼬집었다. 그는 “검찰은 수사에 착수하면 일단 주거 등 개인적인 공간들을 먼저 들여다보고 시작한다”며 “문제는 ‘증거를 찾기 위하여’ 들여다보는 것이 아니라 ‘혐의를 찾기 위해’ 들여다보려고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범죄수사’라는 한 마디로 다 들여다 볼 수 있는 나라는 제대로 된 민주국가라고 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법관으로서 행정부에 속해있는 검찰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보인다.

최 법원장은 자신의 코트넷 글에 이례적으로 느낌표를 써가며 글을 마쳤다. 그는 “압수수색영장 발부에 인색하다고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이여! 메멘토 모리! 당신의 주거와 PC, 스마트폰, 그리고 계좌도 압수수색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라고 말했다.

그가 인용한 라틴어 숙어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를 뜻한다. 누구든지 검찰 수사 앞에서 압수수색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넌지시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