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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또 잠수 … 점점 희미해지는 국보 ‘반구대 암각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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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26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울산시 국정감사에서 송철호 시장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26일 울산시청에서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울산시 국정감사에서 송철호 시장이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4년 전, 전 시장에게 반구대 암각화 어쩔 거냐고 물었는데 4년 지나 다시 한 번 묻는다. 어떻게 할 건가.”지난 26일 울산광역시 국정감사에서 김민기(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송철호 울산시장에게 이렇게 추궁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은 국감 단골 소재가 될 정도로 울산시의 숙원사업이다.

태풍 콩레이에 한 달 가까이 물 잠겨 #사연댐 건설로 50여 년 침수 반복 #“그림 선명도, 절반 이하로 떨어져” #울산시장 “대구가 식수 주면 해결” #보존 대책, 댐 수위 낮추기 등 난항

세계 최초 고래잡이 유적인 이 국보(제285호)는 폭우 때마다 물에 잠긴다. 태풍 콩레이가 영남권을 덮친 지난 6일도 예외가 아니었다. 울산 울주군 두서면에 154.5mm의 폭우가 쏟아졌다. 반구대 암각화가 있는 언양읍 대곡리의 상류 지역이다. 오후 6시 강에 물이 차오르자 암각화는 자취를 감췄다. 2년 전 태풍 차바가 왔을 때 역시 한 달 동안 수장(水葬)돼야 했다.

지난 6일 태풍 콩레이가 오자 반구대 암각화는 또 물에 잠겼다. [사진 반구대포럼]

지난 6일 태풍 콩레이가 오자 반구대 암각화는 또 물에 잠겼다. [사진 반구대포럼]

2010년 주변의 천전리 각석, 공룡 발자국까지 합쳐 ‘대곡천 암각화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올랐지만 보존 문제로 정식 등재 신청을 못 하고 있다. 세계적 수준의 암각화가 왜 54년째 물에 잠겨 나오지 못할까.

Ⅰ. 배경-54년째 물에 잠기는 반구대 암각화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그림이 있다. 최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에 있는 국보 285호 반구대 암각화. 화살표가 가리키는 곳에 그림이 있다. 최은경 기자

울산 울주군 언양읍에 흐르는 대곡천을 따라가다 보면 거북이가 엎드린 형상을 한 바위 반구대(盤龜臺)가 나온다. 이 바위에서 1㎞ 정도 떨어진 또 다른 바위 절벽에 선사시대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암각화가 있다. 가로 10m, 세로 4m의 평평한 면에 새겨진 300여 점 그림은 고래·거북 같은 바다 동물, 사슴·멧돼지·호랑이 같은 육지 동물, 사람·배·작살·그물과 고래 잡는 모습, 사냥하는 모습 등으로 다양하다.

반구대 암각화 실측 도면. 3D 스캔해 합성한 이미지다. 중앙포토

반구대 암각화 실측 도면. 3D 스캔해 합성한 이미지다. 중앙포토

약 7000년 전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에 걸쳐 선이나 면을 파내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고래의 세부 종을 구분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다. 1971년 12월 25일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문명대 동국대 명예교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래잡이 유적으로 북태평양 선사시대 해양문화를 잘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고래 무리. 바위에 새겨진 그림 300여 점 중 58점이 고래다. [사진 암각화박물관·반구대포럼]

고래 무리. 바위에 새겨진 그림 300여 점 중 58점이 고래다. [사진 암각화박물관·반구대포럼]

하지만 암각화가 그려진 암석은 점토가 굳어서 된 셰일이라 물에 취약하다. 물에 잠길 때마다 셰일을 구성하는 광물 중 일부가 녹아 구멍이 나거나 그림이 그려진 일부 암석이 떨어져 나갔다. 2003·2010·2014년 반구대 암각화를 조사·연구한 이수곤 서울시립대 토목공학과 교수는 “오랫동안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암각화의 선명도가 처음 발견 때의 절반 이하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암각화 상단에 수평 암반이 처마처럼 나와 있어 비가 와도 수천 년 동안 그림이 훼손되지 않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아래에서 차오르는 물”이라고 말했다.

Ⅱ. 수위 53m를 지켜라-사연댐 건설로 시작된 불행  

위 사진은 1982년 반구대 암각화의 사진으로 새끼를 등에 업은 고래, 거북이, 양, 호랑이 등 갖가지 그림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아래 사진은 2008년 촬영된 사진으로 바위 표면과 그림이 훼손돼 그림을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연합뉴스=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제공]

위 사진은 1982년 반구대 암각화의 사진으로 새끼를 등에 업은 고래, 거북이, 양, 호랑이 등 갖가지 그림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다. 아래 사진은 2008년 촬영된 사진으로 바위 표면과 그림이 훼손돼 그림을 눈으로 식별하기 어렵다. [연합뉴스=김호석 한국전통문화학교 교수 제공]

1965년 대곡천 하류에 사연댐이 건설되면서 반구대 암각화의 불행이 시작됐다. 사연댐에 물이 가득 차면 60m. 암각화가 그려진 곳의 높이는 해발 53m다. 댐 수위가 53m를 넘으면 침수가 시작돼 56.7m가 되면 그림이 완전히 잠긴다. 댐 건설 이후 1년에 3개월 이상, 길게는 8개월 동안도 물에 잠겨 있었다.

임시 물막이 투명댐인 카이네틱댐. [연합뉴스TV 캡처]

임시 물막이 투명댐인 카이네틱댐. [연합뉴스TV 캡처]

2014년 국무조정실·문화재청·울산시가 반구대 암각화 앞에 가변형 임시 물막이(카이네틱댐)를 설치하기로 협의하면서 사연댐 수위를 48m로 낮췄다. 그 뒤로 침수 기간이 줄기는 했지만 2014년 60여일, 2016년 30여일 등 침수는 계속됐다. 가변형 임시 물막이(카이네틱 댐) 사업은 보다 완전한 보존 대책을 찾을 때까지 암각화 앞에 다시 해체할 수 있는 길이 55m, 너비 16~18m의 투명 벽을 세우는 것이다. 하지만 모형실험에서 물이 스며들어 실패로 끝났다.

반구대 암각화 생태제방 축조안 예상도. [연합뉴스=문화재청 제공]

반구대 암각화 생태제방 축조안 예상도. [연합뉴스=문화재청 제공]

울산시는 기존에 제시한 보존대책 중 하나인 생태 제방 조성안을 다시 내밀었다. 암각화에서 63m 떨어진 곳에 길이 357m, 높이 65m의 둑을 쌓아 침수를 막겠다는 방안이다. 하지만 문화재청은 생태 제방이 반구대 주변 환경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이를 수차례 부결했다.

Ⅲ. 문제는 물이야!-보존 대책 제자리 

멀리서 바라본 반구대 암각화. 중앙포토

멀리서 바라본 반구대 암각화. 중앙포토

문화재청은 반구대 암각화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하루빨리 사연댐에 수문을 설치해 수위를 낮추거나 만수위를 60m에서 52m로 낮춰야 한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7월 송 시장이 취임하면서 생태 제방 안을 폐기하고 문화재 원형 그대로 보존해야 한다는 문화재청과 의견을 같이하는 듯했지만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수위 조절이 물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수십 년 동안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훼손됐다. [사진 울산시청]

물에 잠긴 반구대 암각화. 수십 년 동안 침수와 노출을 반복하면서 훼손됐다. [사진 울산시청]

사연댐 물은 울산시민의 주 식수원으로 사용된다. 울산시는 댐이 깔때기 모양이라 수위를 8m 낮추면 유효 저수량의 3분의 1밖에 못 쓴다며(34%) 물 공급 대책 없이 이를 따를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시는 경북권의 운문댐 등에서 물을 끌어온다는 계획을 내놨지만 지자체 간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쉽지 않다. 국무조정실·환경부 역시 울산권 물 확보를 위한 뚜렷한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2007년 중앙포토에 등록된 반구대 암각화 표면 사진. [사진 울산시청]

2007년 중앙포토에 등록된 반구대 암각화 표면 사진. [사진 울산시청]

송 시장은 국감 질의에서 “최근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울산시·경북도·대구시·구미시·문화재청·환경부 등이 합동회의를 했다”며 “대구에서 댐 물을 줄 용의가 있다고 했다”고 답했다. 이는 지난 18일 국무총리가 주최한 반구대 암각화 관계자들과의 오찬에서 대구시 측이 “대구·경북 지역 물 문제가 해결된다면 운문댐 물을 줄 수도 있다”는 취지로 한 발언을 근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았고 달라진 것은 없다.

전망대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바라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전망대에서 반구대 암각화를 바라볼 수 있다. 최은경 기자

반구대 암각화 보존 활동을 하는 민간단체 반구대포럼의 이달희 대표는 “태풍 콩레이가 오기 전날부터 이틀 동안 암각화가 잠기는 모습을 바라봤지만 울산시와 문화재청 누구도 현장을 찾지 않았다”며 안타까워했다.

반구대 암각화는 오늘도 물에 잠겨 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 추진 일지

2003~13년: 차수벽 설치(2003), 물길 변경(2008, 2011), 생태제방 설치(2011) 등 다양한 검토
10년 1월 11일: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 등재
13년 6월 16일: 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 협약 체결
16년 7월 21일: 가변형 임시 물막이 설치 중단 결정
16년 10월~2017년 2월: 보존 방안 기본계획수립 용역
17년 7월 20일: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생태제방안 부결
17년 11월~18년 6월: 반구대 암각화 조사연구, 공룡발자국 추가 발견
18년 8월~현재: 관계기관 협의중
18년 10월 18일: 국무총리 주재 관계기관 오찬 간담회

자료: 울산시

울산=최은경 기자 chin1ch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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