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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공공기관 … 사립유치원의 두 얼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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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원배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김원배 사회팀장

김원배 사회팀장

사립유치원을 보내는 학부모 입장에선 내 돈을 강탈당한 느낌이 들 것이다. 유치원 교비에서 루이뷔통 가방과 성인용품을 사는 등 다양한 사적 지출 행태가 드러났다. 하지만 공개된 ‘유치원 비리’ 중엔 진짜 비리와 부실 회계가 뒤섞여 있다.

교육기관이면서 영리추구하는 개인사업자가 대부분 #공공성 강화하면서 잘 하는 곳은 보상을 받도록 해야

경남에서 유치원을 운영하던 A씨는 교비 회계에서 4억원을 빼내 개인 보험료를 납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선 벌금 1000만원이 선고됐지만 항소심과 대법원에선 무죄가 났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가 개인 계좌에서 교사 인건비를 주거나 유치원 계좌로 보낸 자금도 적지 않다고 인정했다. 사립학교법엔 교비 회계 수입을 다른 데 전출할 수 없다는 규정이 있다. 단 ‘차입금 상환’은 가능하다. 겉으로 보면 학부모의 수업료를 빼돌려 개인 보험료를 납부한 것 같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설립자가 유치원에 빌려준 돈을 찾아간 것으로 판단했다. A씨가 개인·유치원 계좌를 섞어서 관리한 잘못은 있지만 무죄가 난 이상 ‘비리’를 저질렀다고 말할 수는 없다.

다른 대법원 판례를 보면 학부모가 부담하는 원비나 정부가 대신 내는 누리과정 지원금은 납부되는 순간, 시설 운영자의 소유로 본다. 그래서 타인의 돈을 쓸 때 처벌하는 횡령죄 적용이 어렵다. 학원으로 분류되는 영어유치원에 수강료를 내면 원장이 돈을 어디 썼는지 따지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유치원 학부모의 분노와 법원 판결에 괴리가 생기는 이유는 국내 사립유치원의 87%가 개인 소유이고, 개인 회계와 유치원 회계가 뒤섞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개인형 사립유치원은 영리추구를 하는 개인사업자와 교육기관(사립학교)이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영리추구는 국가가 하지 못한 유치원 시설 투자에 대한 대가로 볼 수 있다. 교육부도 25일 발표한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에 “개인 유치원은 상업적 목적 진입이 용이하고 목적 외 사용 시 처벌이 약하다(횡령·배임죄 성립 어려움)”고 밝혔다.

하지만 들끓는 여론 속에 사립유치원은 어쩌다 공공기관이 될 운명을 맞았다. 정부와 여당은 법 개정을 통해 누리과정 지원금을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는 보조금으로 바꾸고, 사립학교법에서 교비 회계에 속하는 수입이나 재산을 교육 목적 외로 부정하게 사용하면 처벌하는 조항을 넣기로 했다. 대책이 시행되면 사립유치원을 설립한 개인사업자는 유치원에서 이익이 나도 이를 가져갈 길이 거의 막힌다.

일반 개인사업자가 20억원짜리 건물을 샀다면 연간 1억원(5%) 정도의 임대료 수입을 기대한다. 현재 유치원 설립자는 소유 건물의 임대료를 유치원 회계에서 받아갈 수 없다. 그렇다 보니 이런저런 명목을 붙여서 돈을 회수하려는 욕구가 생긴다. 이를 하지 못하면 영리를 목적으로 했던 개인형 유치원은 원아 모집 중단 등을 통해 사업을 접으려 할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가 추진한다는 사립유치원의 법인화도 쉽지 않은 일이다. 법인화를 하려면 유치원 설립자가 자신이 소유한 유치원 토지와 건물을 출연(기부)해야 한다. 순수하게 유아교육에 헌신하려는 경우가 아니면 이를 내놓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교육부는 2022년까지 목표로 했던 국공립 유치원 취원율 40%를 조기에 달성하기로 했다. 목표를 이뤄도 60%는 사립이다. 여전히 사립유치원 역할이 중요하다.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도 평가에 따라 성과급을 받는다. 회계 투명화와 공공성 강화를 추진하면서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학부모 만족도가 높은 사립유치원엔 그에 맞는 보상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물론 걸핏하면 집단행동 움직임을 보이는 일부 사립유치원도 문제다. 하지만 개인 유치원 시설을 “원래 교육을 하기 위해 내놓은 것이 아니냐”고 다그치기만 해선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다. 헌법 제23조3항은 ‘공공필요에 의한 재산권의 수용·사용 또는 제한 및 그에 대한 보상은 법률로써 하되, 정당한 보상을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한다. 유치원 시설의 성격과 보상 문제에 대한 논의도 필요한 시점이다.

김원배 사회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