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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정의의 위기” 가세 … 한국당 “특별재판부는 위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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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8일 구속 후 처음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실무자로 지목된 임 전 차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역임했다. 임 전 차장은 지난 27일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처음으로 구속됐다. [뉴시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8일 구속 후 처음으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검으로 소환되고 있다.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실무자로 지목된 임 전 차장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장과 차장을 역임했다. 임 전 차장은 지난 27일 사법행정권 남용 수사 이후 처음으로 구속됐다. [뉴시스]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지는 ‘사법남용 특별재판부’ 설치 문제에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까지 가세하면서 이번 사안이 정국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조 수석은 28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국민의 사법 불신이 확산되고 있다. 이는 정의의 위기이자 국가의 위기”라고 쓴 박찬운 한양대 로스쿨 교수의 글을 올렸다. 정치권에서는 조 수석이 박 교수의 글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피력하는 ‘페이스북 정치’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글에는 “특별재판부 설치는 사법농단 관련자에 대한 공정한 재판을 담보하기 위한 주권자 대표기관의 헌법수호적 입법조치”라는 대목도 있다. 조 수석은 오후엔 특별재판부 도입을 비판적으로 분석한 보도에 대한 유감을 표하기도 했다.

‘사법남용 의혹’ 재판부 논란 확산 #조국 "당사자 상당수 현직 재판장” #여당 “법원, 제 식구 감싸기 막아야” #한국당, 재판부에 여권 입김 우려 #“외부인사 개입은 3권 분립 침해” #"조 수석, 가이드라인 주나” 비판도

전날(27일)엔 “특별재판부는 공정한 재판이 어렵다는 합리적인 의심에 기초한 것”이라는 취지의 글을 썼다. 사법남용 의혹의 당사자 상당수가 현재 서울중앙지법 형사재판부 재판장을 맡고 있어 별도 재판부를 꾸리는 것이 공정한 심리를 보장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조 수석은 최근 페이스북에 특별재판부 관련 기사와 사설 등을 계속 올리며 특별재판부 도입을 적극적으로 엄호하는 모습이다. 민정수석은 검찰은 물론 법원 인사 등도 관장하는 자리여서 그의 글과 발언에는 법조계와 정치권의 관심이 높을 수밖에 없다.

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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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도 주말 사이 조 수석과 보조를 맞추는 듯한 논평을 냈다. 조승현 민주당 부대변인은 지난 27일 “3권 분립도 결국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제도”라며 “법의 이념인 법적 안정성도 중요하지만 정의가 우선”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은 ‘팩트 브리핑’ 형식으로 관련 논란을 설명하면서 “특별재판부도 법관으로 구성하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다. 법원의 제 식구 감싸기와 셀프 재판을 막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강하게 반발했다. 조 수석이 페이스북을 통해 ‘하명 정치’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성태 원내대표는 통화에서 “조 수석이 사법부의 재판 문제까지 개입하면서 헌법을 파괴하고 있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면 조 수석의 이런 행태에 강한 유감을 표명하겠다”고 말했다. 11월 5일로 추진 중인 여야정 협의체 첫 회의에는 문 대통령도 참석할 예정인데 이 자리에서 조 수석에 대한 언급을 하겠다는 것이다.

같은 당 김진태 의원도 “청와대 민정수석이 왜 국회의 법안에 대해 ‘이래야 한다’는 식으로 하명하는지 모르겠다”며 “상당히 건방진 행동”이라고 불쾌해했다.

특별재판부 논쟁에 조 수석이 관여하는 것을 우려하는 학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민정수석은 사정라인을 관장하는 자리”라며 “관련 수사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특별재판부를 자꾸 언급하면 ‘가이드라인을 주는 것 아니냐’ ‘대통령의 의중이냐’는 오해를 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도 “조 수석은 ‘내 의견은 사회를 위해 바람직하니 괜찮다’는 식인데, 그런 태도는 청와대 참모로서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반면 박찬운 교수는 “우리 법원은 사법 농단과 관련 없는 재판부를 구성하려는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고 국민의 사법 불신은 확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야당은 3권 분립의 원칙을 내세워 반발한다. 검사 출신 주광덕 의원은 “재판부를 구성하는 권한은 헌법이 규정한 법원의 고유권한인데 외부인사가 이에 개입하는 것은 명백한 3권 분립 침해이며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또 “김명수 대법원장, 청와대 및 정부·여당의 입김이 작용해 특별재판부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그렇게 되면 정권의 입맛에 맞는 판결이 나올 우려가 크다”고 비판했다. 변호사인 이언주 바른미래당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특별재판부는 3권 분립과 사법부 독립의 헌법 정신에 반하는 발상으로 명백히 위헌”이라고 특별재판부 도입에 합의한 당의 입장과 다른 소견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도입 논쟁이 ‘정의의 위기(청와대+민주당 등) vs 3권 분립의 위기(한국당)’라는 거대 담론으로 충돌하는 양상이다. 앞서 박주민 민주당 의원 등 여야 의원 50여 명은 지난 8월 특별재판부 설치를 골자로 한 법률안(특별법)을 발의했다. 법안은 대한변협 3명, 법원 판사회의 3명, 시민사회 3명 등 9명으로 구성된 특별재판부 후보추천위가 추천하는 특별법관 3명이 1·2심 재판을 맡도록 했다. 최종 3심은 대법원이 맡는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토대로 법안 제정을 위한 협상에 나설 예정이어서 야당과의 갈등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캐스팅보트가 될 수 있는 바른미래당은 내부 의견이 분분하다. 지상욱 의원 등 보수 성향 인사들이 반발하고 있어서다. 지 의원은 “과거 반민특위 이후 처음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이런 야만적인 일이 발생할지 몰랐다”고 당 지휘부에 날을 세웠다. 한국당을 뺀 여야 4당은 지난 25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을 엄정하게 규명하기 위한 특별재판부 설치를 11월 정기국회 안에 추진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와 관련해 특별재판부 도입 문제는 결국 재판부 구성 방식에 달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장영수 고려대 로스쿨 교수는 “핵심은 특별재판부를 누가 맡느냐에 있다”며 “정치적 편향성이 있는 인사가 재판을 맡게 되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침해되기 때문에 논란은 더욱 증폭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역사 속 특별재판부 … 1948년 반민특위, 5·16 때 혁명재판소

과거 특별재판부는 정국이 급변하는 시기에 만들어졌다. 해방 직후에 일제강점기에 반민족적 행위를 한 사람을 조사하고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는 1948년 특별재판소를 국회에 설치했고 49년 3월 첫 재판을 시작해 같은 해 8월 종료했다. 초대 대법원장인 김병로가 재판을 총괄했다.

반민특위는 “악질적인 반민족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제헌헌법 제101조를 근거로 특별재판부를 설립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4·19 이후 4차 개정 헌법에 따라 3·15 부정선거 관련자 등을 처벌하기 위한 특별법에 근거해 특별검찰부와 함께 설치됐다. 5·16 때는 국가재건최고회의가 만든 혁명재판소가 61년 7월 출범했다.

정변 전후의 반국가·반민족·반혁명 행위 등을 처벌하기 위한 기구였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현일훈·한영익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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