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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려라 공부] 남북 어린이 언어 이질성 극복은 통일 후 유대감 형성 밑거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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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
남북한의 훈훈한 분위기가 지속되는 가운데 교육계에서는 단절됐던 남북의 언어를 통합·융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지난 70년간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만들어온 교육·출판 기업 미래엔이 지난달 남북한 어린이를 대상으로 ‘통일 초등 국어 교육 교과서’를 발간했다. 2015년부터 통일국어교육연구회와 함께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 양상을 연구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만든 교과서다.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의 집필 과정과 포함된 내용을 살펴봤다.

미래엔은 통일국어교육연구회와 함께 지난달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를 발간했다. 사진은 지난해 관련 학술대회 모습. [사진 미래엔]

미래엔은 통일국어교육연구회와 함께 지난달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를 발간했다. 사진은 지난해 관련 학술대회 모습. [사진 미래엔]

 지난해 8월 25일 미래엔은 서울교대에서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 개발 기초 연구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에 대한 그간의 연구 성과를 공유했다. 학계의 전문가를 비롯해 정책 관계자와 교과서 개발 실무진까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참석자들은 학술 발표를 경청하는 것은 물론 통일에 대비한 ‘국어과’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발 방향에 대해 구체적으로 논의했다. 통일 국어 교과의 필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자리였다.

남북 전문가 함께 연구·집필 #초등학교 저학년용 4종 펴내 #국내외 학교서 현장 실험 계획

기초 연구를 통한 교과서 개발

학술대회의 성과는 교과서 개발로 이어졌다. 지난달 미래엔은 학습책·활동책·읽기책·문법책과 교사용 학습 안내서 등 총 5가지 책으로 구성된 저학년용(초등학교 1·2학년) 통일 국어 교과서 개발을 마쳤다. 통일 국어 교과서는 문학·독서·문법·화법·작문 등 남북한 초등 국어 교육의 분야별 전문가와 중국 연변대 교수, 미래엔의 국어 교과서 개발 실무자가 모여 연구·집필했다. 무엇보다 통일 이후 남북의 어린이가 잘 융합할 수 있도록 교육하면서 국어 교과서로서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를 위해 남한·북한·연변의 국어 교육 내용을 계승하되 정치 이념이 달라 발생하는 지역별 차이점은 언어 교육 차원에서 합리적으로 분석해 융합시켰다.

 교과서의 콘텐트는 ‘구두 언어 중심’ ‘문자 언어 입문’ ‘서로 다른 경험을 경청하고 공감하는 등의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것을 중심으로 구성했다. 구체적으로는 ‘서로 다른 국어로 인한 삶의 차이를 확인하고 존중하는 스토리’ ‘학습자의 총체적인 국어 사용 환경 접근’ ‘구체적 문화유산으로서의 국어 자료 제재’ 등 남북의 문화를 모두 존중하면서 동시에 통일 국어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초등 국어의 교육과정에 따라 주 5시간, 학기당 15주를 기준으로 총 60차 분량으로 이뤄졌다.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 『우리말 틀』과 책에 수록된 남북한 단어 비교 낱말카드.

통일 초등 국어 교과서 『우리말 틀』과 책에 수록된 남북한 단어 비교 낱말카드.

학습책인 『우리말 길』은 초등학교 국어 교육과정에 따라 한글을 집중적으로 지도하고 동시에 남북 어휘의 이질화에 대해 학습하도록 구성했다. 특히 남북의 어린이가 국어를 사용할 때 서로 다른 표현을 이해하고 배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말 터』는 『우리말 길』에서 학습한 요소를 일상이나 학교생활에 적용해 남북 어린이의 화합을 유도하는 활동책이다. 달라진 환경에 정착하는 과정을 형상화라는 스토리, 화합을 유도하는 놀이 학습, 북한 속담과 북한어, 북한의 학교생활을 소개하는 북한 나들이 등의 콘텐트를 실었다. 읽기책인 『우리말 꽃』은 남북한 어린이의 정서적인 차이를 극복하고 화합할 수 있는 데 도움을 주는 문학 작품을 선정했다. 특히 달라진 세계관을 인식하고 발전시킬 수 있도록 남한과 북한, 연변의 문학 작품과 세계 각국의 다양한 작품을 수록했다. 문법책인 『우리말 틀』은 남북한의 다른 문법·단어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서로 달라진 두음법칙, 사이시옷 등의 특정 문법·낱말을 카드놀이나 쓰기 같은 학습 활동을 통해 익히도록 했다.

발간 기념 학술대회 예정

미래엔은 통일 국어 교과서 발간을 기념해 연내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국내 일부 초등학교와 연변의 한국국제학교 등 해외 초등학교를 선정해 현장 실험을 한다. 실험에서 얻은 결과를 바탕으로 2020년 12월까지 단계적으로 보완 및 추가 개발 작업을 거쳐 중학년용(3·4학년)과 고학년용(5·6학년) 교과서, 교사용 학습 안내서 등 학년별·유형별 교과서도 개발할 예정이다. 교과서는 연변 조선족, 해외 동포, 새터민을 위한 언어 적응 교육에 활용하는 등 활용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한편 미래엔은 2000년부터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에 기여하는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유네스코에 교과서 인쇄기 및 인쇄용지를 요청했던 북한에 2004년 윤전기를 기증한 일이 대표적인 활동이다. 기증에 그치지 않고 기계를 가동하고 생산하는 과정이 원활하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세종공장 기술진을 북한으로 직접 파견해 윤전기 조립과 시험 가동을 지원하기도 했다.

 남북 통합 국어 교육은 언어 공동체 회복 위한 첫걸음

기고 신헌재 통일국어교육연구회장

신헌재 통일국어교육연규회장

신헌재 통일국어교육연규회장

 남북 분단 체제가 길어지면서 남북한 간 언어 이질화의 심각성은 우려를 더하고 있다. 스포츠 경기를 중계하는 남북한 캐스터의 말투 비교가 코미디의 소재로도 등장할 지경이다. 실제로 같은 오징어를 놓고도 북한은 ‘낙지’라고 하고, 남한의 낙지를 북한에서는 ‘서해 낙지’라 한단다. 북한은 갑오징어만 ‘오징어’로 부른다니, 어지간한 내공이 있는 사람도 헷갈릴 정도다.

 언어는 민족의 얼이라고도 한다. 언어는 단순한 말(소통 수단)을 넘어 사람의 생각과 정신을 담는 그릇이기도 하다. 언어가 다르면 생각의 방향과 생활방식도 달라지기 쉽다. 남북한이 사용하는 언어의 차이가 커진다는 말은 한민족의 이질화가 심화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따라서 남북 언어 공통체의 경우 이미 커져 가는 격차를 줄이거나 최소화시킬 대안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언어 공동체가 이뤄져야 민족 공동체도 가능하다. 통일을 바라는 열망만큼 통일 이후 진정한 사회 통합의 기초를 닦아야 할 것이다. 남북한 간 통합 국어 교육을 중시해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언어는 어릴 때부터 배울수록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언어교육의 출발점에 서 있는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통합 국어 교과서의 개발은 소중한 작업이다.

 남한과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든 통일을 실현하여 공동의 교과서를 사용할 수 있는 시대가 되면, 우선 남북의 통합적 교육이 과제가 될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시대를 이해하고 적응하며, 상호 교류 및 통합된 시민사회의 발전을 모색할 만한 능력과 태도를 지닌 시민을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일시대의 국어 교육을 위해서는 네 가지의 구체적 과제가 예상된다.

 첫째, 남북 간에 상호 이질화되고 있는 언어적 차이를 극복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70년이 넘는 분단 기간 동안 남북한의 언어 문화가 크게 달라진 만큼 음성언어를 중심으로 한 격차 해소가 무엇보다 시급하다. 둘째, 남북의 언어를 통합하는 방안이 모색돼야 한다. 남북의 초등학생이 공유할 전통 언어를 회복하고 내국인과 재외 동포 간의 언어 이질성을 극복하는 노력도 담겨야 할 것이다. 셋째, 세계화·디지털화 등 시대적 변화도 반영해야 한다. 한민족의 생활 범위가 국제화·세계화되고 있다. 이 추세에 따른 미디어 환경의 변화와 디지털화 바람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국어 교육이 미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창의적 인재를 육성하는 데 있어 큰 역할을 맡아야 한다. 우리 사회가 점점 다문화 사회로 바뀌어 가는 현실을 직시하고 향후 전망과 대응책을 찾는 과제도 남아 있다. 마지막으로 지속 성장 가능한 한국어와 한글의 미래를 모색하는 일이다. 남북한 간의 공통 문자인 한글을 중심으로 한국어의 독자성을 추구하는 것은 물론 한글 서체 개발 등까지 다양한 교육적 추구가 가능할 것이다.

 이번 남북한 초등국어 교육용 통일 교과서 개발은 향후 관련 연구와 유사 교과서 개발의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2015년 통일국어교육연구회가 발족된 이래 초등학교·대학교 및 관련 기업의 전문가가 모여 기초연구와 학술대회를 거치며 통일 교과서 개발에 매진, 3년 만에 결과물을 내놓았다. 연구진은 북한 교과서와 언론 매체 검토는 물론 새터민의 언어 사용 실태 등 다방면의 기초 조사를 바탕으로 새 교과서의 이론적 토대와 교육적 지향점, 교육과정 및 교과서 체제 구성 방안 등을 구축했다.

 이번 통일 국어 교과서는 순수한 민간 차원에서 진행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높다. 한국 교과서 70년사의 산증인이자, 특히 국어 교과서 영역을 꾸준히 개척해온 민간 기업인 미래엔이 참여해 대표적인 교과서 발행사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한 노력의 결산을 이뤘다.

 한국어는 남북한, 나아가 전 세계로 뻗어 나간 한민족이 하나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중요한 연결 고리다. 한민족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세계 사회와 미래가 요구하는 통일 시민의 역량을 기르기 위해서는 한국어와 한글 교육이 필수적이다. 이번에 개발된 통일 국어 교과서야말로 장차 튼실한 통일시민을 육성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해 마지 않는다.

신윤애 기자 shin.yun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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