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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빌아이 콕 집은 인텔 … 왜 글로벌 R&D기지로 만들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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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국 언론 최초 완전자율주행차 테스트 

오전 10시 반, 예루살렘 도심을 가로지르는 편도 3차선의 50번 도로에 포드의 중형세단 퓨전이 들어선다. 3차선 도로 앞뒤 양옆으로 달리는 차가 빽빽하지만 운전석에 앉은 사람은 페달에 발을 딛지도, 운전대에 손을 올리지도 않는다. 운전대는 마치 유령이 잡고 있는 듯 스스로 돌아간다. 오르막에 들어설 때 오른쪽 3차로가 비어있자, 갑자기 엔진 회전수를 높이며 차선을 바꿔 오른쪽 차로를 따라 힘차게 올라간다. 잠시 뒤 갓길에 고장 난 트럭이 나타나자 급하게 속도를 줄인다. 능숙한 파워 드라이버가 운전석에 앉은 듯한 느낌이다.

'창업 국가'이스라엘을 가다 #개발 중인 자율차 도심 달리고 #R&D 기지 된 스타트업 300곳 #'기술혁신 뒤 사업화' 구조 탄탄 #와이즈만연구소만 32조원 벌어 #정부는 법·예산 등 창업 뒷받침

중앙일보가 지난 14일 이스라엘 현지에서 한국 언론으론 처음으로 모빌아이가 개발 중인 완전자율주행차량 주행 테스트를 체험했다. 차량에는 앞ㆍ옆ㆍ뒤 모두 12개의 카메라가 달려 있었다. 차량 운전석과 조수석 가운데 설치된 15.6인치 모니터는 반으로 나눠져, 위에는 카메라가 비추는 도로 모습을, 아래엔 지도와 그 위에 인식된 차량ㆍ신호등ㆍ보행자 등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날 주행 테스트는 예루살렘 모빌아이 본사를 중심으로 복잡한 도심도로 12㎞를 20분간 달려보는 것이었다. 사람의 역할은 디지털 지도에 출발지와 목적지를 입력하는 것으로 끝이었다.

. 이스라엘 시내 도심에서.모빌아이의 완전자율주행차 시스템을 체험했다. 교통법 때문에 운전석에 사람이 앉았지만, 손과 발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12개의 카메라에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모니터의 화면에 자세히 나타난다. [사진 모빌아이]

. 이스라엘 시내 도심에서.모빌아이의 완전자율주행차 시스템을 체험했다. 교통법 때문에 운전석에 사람이 앉았지만, 손과 발을 일체 사용하지 않았다. 12개의 카메라에서 들어오는 시각 정보가 모니터의 화면에 자세히 나타난다. [사진 모빌아이]

급성장하고 있는 스타트업 국가 이스라엘 

1999년 설립된 ‘신참’기업이지만 세계 시장 점유율 60~70%를 기록하고 있는 세계 최고의 자율주행차량 솔루션 회사로 우뚝 솟았다. 지난해 3월에는 153억 달러(약 17조원)에 세계 최대 반도체 회사인 인텔에 인수되면서 인텔 자회사 겸 글로벌 연구개발(R&D) 기지로 변신하면서 성장 속도가 더 가팔라졌다.

‘스타트업 내이션’(Start-up Nation:창업국가) 이스라엘의 기업들이 급성장하고 있다. 수도 예루살렘을 비롯한 주요 도시에는 모빌아이처럼 스타트업으로 시작했다가 글로벌 기업에 인수된 뒤 R&D센터로 변신한 곳이 300개가 넘는다. 지난 16일 찾아간 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의 남쪽 마탐 하이테크 지구에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ㆍ구글ㆍ인텔ㆍ퀄컴ㆍ델ㆍGE헬스케어 등 글로벌 기업들의 로고를 단 건물들이 즐비했다. 이들 기업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MIT로 불리는 이 지역 테크니온공대를 졸업한 학생이나 교수가 창업한 스타트업 출신이다.

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 곳곳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로고를 단 빌딩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미국 실리콘밸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진=정수경

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 곳곳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로고를 단 빌딩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미국 실리콘밸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진=정수경

글로벌 기업이 인수 후 R&D센터로 활용 

이원재 요즈마그룹 아시아총괄 대표는 “글로벌 기업이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을 인수하면, 국내 기업을 해외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현지에서 R&D 센터로 전환하게 된다” 며 “글로벌 기업 입장에서 보면 혁신기술 인력이 뛰어난 이스라엘에 인수기업을 그대로 두고 그곳에서 세계를 제패할 수 잇는 기술을 만들고 키워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모빌아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인텔에 인수되기 전 600명에 불과한 직원이 현재는 1400명까지 불어났다. 모빌아이측은“이스라엘이 인텔의 자율주행 부문 총괄 글로벌 R&D기지가 되면서 연구인력이 대폭 충원된 것”이라고 말했다.

. 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 곳곳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로고를 단 빌딩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미국 실리콘밸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진=정수경

. 이스라엘 제3의 도시 하이파 곳곳에서 글로벌 정보기술(IT) 기업의 로고를 단 빌딩들을 만날 수 있었다. 마치 미국 실리콘밸리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이다 사진=정수경

인구 850만에 벤처창업 세계 1위, 나스닥 상장 3위 

이스라엘은 2017년 말 현재 1인당 벤처 창업률 세계 1위, 나스닥 상장기업은 미국ㆍ중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하고 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를 넘어서고 있다. 인구 850만명에 불과하고, 1980년대초까지만 하더라도 한때 물가상승률이 100%에 달할 정도로 경제사정도 불안했던 나라였다.

무엇이 이스라엘의 변신을 가능하게 했을까. 현지에서 만난 이스라엘인들은 그 비결을 기술혁신과 사업화, 창업 생태계에서 찾았다.
텔아비브 남쪽 소도시 르호봇에는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한 곳이라는 와이즈만연구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와 석ㆍ박사 양성을 위한 교육을 함께하는 이곳은 지금까지 3명의 노벨상 수상자와 2명의 이스라엘 대통령을 배출한 명문이다.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한 곳이라는 와이즈만연구소. 텔아비브 남쪽 르호봇 시내에 있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곳이지만, 세계 어느 연구소보다 기술사업화에 뛰어난 실적을 낳고 있다. 최준호 기자

세계 5대 기초과학연구소 중 한 곳이라는 와이즈만연구소. 텔아비브 남쪽 르호봇 시내에 있다.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곳이지만, 세계 어느 연구소보다 기술사업화에 뛰어난 실적을 낳고 있다. 최준호 기자

이 연구소가 창업국가 이스라엘에 중요한 것은 기초과학을 연구하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한 해 평균 100여건의 특허를 통해 지식재산을 사업화하는 것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연구기능과 별도로 독립 운영되는 기술이전회사 예다(YEDA)를 통해 세계 74개국에 기술을 수출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 연구소 기술이 제품화돼 발생하는 매출만 280억 달러(약 32조원)에 달하고, 로열티 수입만 연간 1000억원이 넘는다.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도 ‘스타트업 내이션’이스라엘의 비결이다. 이스라엘에서는 최근 들어 연간 700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생겨난다. 이들은 위한 인큐베이터, 액셀러레이터도 넘쳐난다. 이들은 창업지원 뿐 아니라 투자까지 하면서 나스닥 상장까지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어내는 주인공들이다. 덕분에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은 100% 투자금으로 운영된다. 사업에 실패하더라도 법적 의무만 성실히 수행했다면 개인이 부담을 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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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소도시 르호봇에서 만난 바이오전문 인큐베이터 퓨처X. 바이오 전문 답게 대학이나 연구소 실험실 수준을 넘어서는 랩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이스라엘 소도시 르호봇에서 만난 바이오전문 인큐베이터 퓨처X. 바이오 전문 답게 대학이나 연구소 실험실 수준을 넘어서는 랩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최준호 기자

모든 기술, 산업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해야

와이즈만연구소 인근에 있는 생명공학 전문 인큐베이터 퓨처X를 찾았다. 이곳에는 스타트업을 위한 사무공간 외에도 대학 또는 연구소에서나 볼수 있을 법한 첨단 실험실을 갖추고 있었다. 킨너렛 사비츠키 대표는“생명공학 관련 스타트업 12개를 수용할 수 있는 실험시설이 있지만, 현재론 엄격한 심사를 거친 5개사만이 입주해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도 처음부터 창업 생태계가 갖춰진 것은 아니다. 9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창업열기는 별로 없었다. 하지만 이후 총리실 산하 수석과학관실에서 요즈마펀드 등 스타트업 투자를 위한 민ㆍ관 합동 펀드 조성과 연구개발을 위한 R&D 예산 확대, 기술 산업화를 위한 법 정비 등에 주력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창업국가』의 역자인 윤종록 전 미래창조과학부 차관은“한국은 이스라엘과 더불어 GDP 대비 R&D 투자비율 1,2위를 다투고 있고 특허 등록 수도 세계적 수준이지만 이스라엘과 달리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며 “기초연구를 위한 토대구축과 별도로 모든 기술은 산업으로 연계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더불어 창업 생태계가 선순환을 할 수 있도록 이스라엘처럼 민간 투자 중심의 창업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창업국가 이스라엘

인구 : 850만명
스타트업 : 7600개
인구 1인당 창업비율 : 세계 1위
1인당 GDP : 4만2115달러
노벨상 수상자 : 12명
고용인력 1만 명당 과학기술자 : 140명
국가별 나스닥 상장 기업 순위 : 3위(1위 미국, 2위 중국)
[자료: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 2017년 기준]

이스라엘에서 개발, 발명한 세계 최초 상품

● 방울토마토
● USB 플래시 메모리
● IBM PC에 사용된 인텔 8088 마이크로프로세서
● 레이저 키보드
● 바이러스와 암 억제 효과가 있는 인터페론 단백질
● 인터넷 전화 바이버
● 전자사전 및 통역도구 바빌론

이스라엘=최준호 기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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