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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불에 건너다 식물인간된 보행자…운전자는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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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이 사진은 기사와 관련이 없음. [중앙포토]

무단횡단 보행자를 쳐 식물인간 상태에 빠지게 한 30대 남성 운전자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 받았다. 서울북부지법 형사10단독 김재근 판사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 위반(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모(38)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27일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월 29일 오전 11시 13분쯤 서울 동대문구에서 주행하던 중 횡단보도에서 피해자 A씨(58)를 들이받았다. 당시 횡단보도는 보행자 정지 신호인 ‘빨간불’이 켜져 있었고 이씨는 A씨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A씨는 뇌 손상과 내장 출혈, 골절 등 부상을 입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

이씨가 주행 중이던 도로는 왕복 6차로의 도로였다. 사고 당시 이씨의 시야를 가린 것은 차량 좌측 10m 앞쯤에서 달리던 버스였던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자 A씨는 이씨의 좌측에서 우측 방향으로 무단횡단을 하면서 사고를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은 사고 당시 신호가 차량 직진신호이기는 했지만 사람의 통행이 빈번한 횡단보도를 지날 때는 서행을 하면서 전방좌우를 잘 살필 의무가 운전자에게 있고, 이씨가 이 의무를 게을리해 A씨를 사망하게 했다며 그를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사고에 보행자의 책임도 있다고 봤다. 김 판사는 판결문에 “보행자들도 횡단보도의 신호에 따라 보행해야 하는데, 보행자 적색신호임에도 보행자가 왕복 6차로의 도로를 무단횡단하는 것은 이례적”이라며 “당시 신호에 따라 정상적으로 운행하던 피고인으로서는 이를 예상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고 적시했다.

또 이씨의 좌측에 버스가 주행하고 있어 시야 확보가 어려웠던 점도 참작했다. 재판부는 “이씨가 사고를 막으려면 최소 45.05m 거리에서 보행자를 발견해야 하지만 당시에는 20m밖에 확보돼 있지 않았던 점을 참작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밝혔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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