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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공립 다 믿을 수 없다”…확산하는 유치원 포비아

중앙일보

입력

2살, 5살 남매를 둔 정모(36‧경기 광명시)씨는 26일 경기도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라온 유치원 감사 결과를 확인하다 깜짝 놀랐다. 첫째가 다니고 있는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이 떡하니 명단에 포함돼 있어서다. 해당 유치원은 비정규직 직원을 채용하면서 성범죄경력조회를 하지 않았다가 2013년 교육청 감사에서 적발됐다. 정씨는 “사립유치원만큼 비리 정도가 심각한 것은 아니지만, 공립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라고 믿은 만큼 실망감이 컸다”며 “둘째도 같은 곳에 보내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다”고 말했다.

유치원 비리문제가 사립뿐 아니라 공립으로 확대되면서 학부모 사이에서 유치원 공포증이 확산하고 있다. 한 어린이가 유치원에서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유치원 비리문제가 사립뿐 아니라 공립으로 확대되면서 학부모 사이에서 유치원 공포증이 확산하고 있다. 한 어린이가 유치원에서 퍼즐 맞추기를 하고 있다. [사진 픽사베이]

17개 시도교육청이 2013~2018년 유치원 감사 결과를 최근 공개하면서 후폭풍이 거세다. 자녀가 다니는 유치원이 명단에 포함된 학부모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어서다. 일부 지역은 각종 부당행위 등이 적발된 유치원 명단에 공립도 포함돼 있다. 서울은 감사에서 적발된 76곳 중 공립유치원이 31곳이었고, 경기는 122곳 중에 43곳이 공립유치원이었다. 현재 서울‧경기‧부산‧인천 등 17개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는 감사 결과 지적을 받은 유치원 실명과 지적사항‧처분내용 등이 올라온 상태다.

교육청 감사결과에 공립도 포함 #학부모 “공립 부당행위 적발 실망” #원아모집 한 달 안 남아 ‘우왕좌왕’ #국공립 대책 마련 주장도 나와

사립유치원처럼 공립유치원 중에도 회계 관리를 제대로 안 해 지적받은 곳도 적지 않았다. 호암유치원(경기도 의정부)은 교직원 학생의 대회 출전 등에 사용해야 하는 업무추진비를 교직원의 자녀 출산 격려금으로 집행했고, 일동유치원(경기 포천)은 규정에 없는 각종 수당을 과다하게 지급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립유치원마저 감사에서 적발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학부모 사이에서 “공립‧사립 다 믿을 수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더구나 유치원 원서접수가 한 달도 남지 않아 학부모들은 자녀를 어디에 맡겨야 할지 고민이 큰 상황이다. 4살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현재 아이가 비리 명단에 이름을 올린 유치원을 다니고 있어 다음 달에 공립유치원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이번에 공개된 감사 결과를 보니 그 유치원도 명단에 포함돼 있더라”며 “명단을 공개해도 학부모들은 선택권이 별로 없는데 뭘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학부모는 “이번 유치원 감사 결과를 보면서 유치원에 대한 공포증이 생겼다”며 “이참에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집에서 교육해야 하나 고민 중이다”고 털어놨다.

교육청의 감사 결과 공개가 학부모들의 불안감을 조장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경미한 사안이 적발된 유치원까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어서다. 7살 자녀를 둔 김모(37‧서울 가락동)씨는 “이번에 비리유치원 명단 공개를 보면서 ‘TMI’(Too Much Information, 너무 많은 정보라는 뜻)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경기도 동탄의 환희유치원처럼 문제가 심각한 곳은 공개하는 게 맞지만, 주의‧경고 등 경미한 사안이 적발된 곳까지 다 공개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권지영 교육부 유아교육정책과장은 “이번에 교육청에서 감사결과를 공개한 것은 사실을 확인해 안심하라는 의미가 컸다. 이번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고 전부 다 ‘비리유치원’으로 몰고 가선 안 된다”고 말했다.

공립유치원의 비리 적발 사례가 알려지면서 정부 정책에 의문을 갖는 학부모들도 생겨나고 있다. 앞서 25일 여당과 정부가 ‘유치원 공공성 강화 방안'을 확정해 발표했는데, 국공립유치원 취원율 40%를 조기에 달성하는 게 포함돼 있어서다. 자녀를 내년에 유치원에 입학시킬 예정인 임민정(34‧서울 봉천동)씨는 “사립이 훨씬 더 심각한 것은 맞지만, 국공립유치원은 100% 국민의 세금으로 개설‧운영되는 것 아니냐”며 “국공립유치원에  대한 관리‧감독 강화 등의 대책도 이번에 포함됐어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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