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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에 바다를 담았다, 윤슬 일렁이는 은빛 거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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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지난 15일 그랜드 오픈한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의 바다 전망. 오후 햇빛을 받은 바다에 은빛 물결이 잔잔히 일어났다. 윤슬이 나타난 것이다. 윤슬이 객실 통유리 안으로도 들어왔다. 거제의 은빛 바다가 품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손민호 기자

지난 15일 그랜드 오픈한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의 바다 전망. 오후 햇빛을 받은 바다에 은빛 물결이 잔잔히 일어났다. 윤슬이 나타난 것이다. 윤슬이 객실 통유리 안으로도 들어왔다. 거제의 은빛 바다가 품안에 들어온 것 같았다. 손민호 기자

우리는 거제도를 얼마나 알까. 제주도 다음으로 큰 섬? 그럼, 해안선이 거제도(466㎞)가 제주도(415㎞)보다 51㎞ 더 길다는 사실은 아시는가. 거제도에 가보시면 의문이 풀린다. 볼록하고 오목한 해안이 부지런히 이어지는 풍경과 맞닥뜨리면, 거제 바다가 제주 바다보다 흥미진진한 바다란 걸 알 수 있다.

거제도 신흥 명소 3곳 #15일 오픈한 명품 리조트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 #1년 전에 확정된 남파랑길 #옥빛 바다 바라보며 산책 #개장 3개월째 식물원 카페 #외도널서리에 숨은 사연

거제도는 이야기의 섬이기도 하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 최초의 승전지 옥포도, 조선 수군 유일의 패전지 칠전량도 거제에 딸린 지명이다. 한국전쟁의 마지막 현장이랄 수 있는 포로수용소도 섬 안에 있다. 대통령 2명을 낳은 대목에 이르면 길지(吉地) 거제의 내력마저 궁금해진다.

그럼에도 경남 거제도는 남해안의 먼 섬이었다. 통영 바다가 거제 바다인데도, 영남 바다하면 통영 바다가 늘 먼저 호명되었다. 조선업이 가져다주는 밥이 그만큼 컸다. 이제는 아니다. 조선업이 휘청거리자 거제시도 관광산업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방 거제의 비경과 사연이 새삼 조명되는 까닭이다. 마침 거제에 새 명물 3곳이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나같이 가을 햇살 내려앉는 남쪽 바다에 기대고 있었다.

 바다를 품안에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에서 바라본 거가대교. 리조트에서는 해맞이도 가능하고 해넘이도 가능하다. 손민호 기자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에서 바라본 거가대교. 리조트에서는 해맞이도 가능하고 해넘이도 가능하다. 손민호 기자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 지난 15일 한화호텔&리조트가 거제도에 연 리조트 이름이다. 레저업계에서는 큰 뉴스였다. 대명과 더불어 국내 리조트 업계의 대표 그룹인 한화가 15년 만에 새 리조트를 열었기 때문이다.

리조트는 거제도에서도 변두리에 박혀 있다. 부산과 거제를 잇는 거가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거제 사람도 잘 안 들어갔다는 섬 북동쪽 모서리 장목면의 옴폭 팬 해안에 어슷하게 걸쳐 있다. 너무 외진 구석이 아닌가 싶지만, 통영대전고속도로 통영IC와 남해고속도로 부산IC 모두 1시간 거리다. 이지성 총지배인은 “5년 안에 장목면 일대가 확 변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앞서 ‘어슷하다’는 단어는 리조트의 입지와 특장을 가장 잘 설명하는 형용사다. 바다를 정면으로 바라보는 터가 아니어서, 리조트 안에서 해넘이와 해맞이가 다 가능하다. 벨버디어(Belvedere)란 낯선 이름도 리조트가 들어선 자리에서 비롯됐다. 벨버디어는 이탈리아어로 ‘아름다운 전망’이란 뜻이다.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의 야경. 몽돌 해변을 발치에 두고 있다. 손민호 기자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의 야경. 몽돌 해변을 발치에 두고 있다. 손민호 기자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거제 벨버디어는 우리가 익숙한 한화리조트와 거리가 있다. 고급화 전략이 확연히 드러나서다. 470개 객실 중에서 98개는 프리미엄급으로 꾸몄다. 전용 풀을 갖춘 객실도 있고, 지상 100m 위에 설치한 인피니티 풀도 있다. 물론 모두 바다를 바라본다. 일반 객실 대부분도 침대가 바다를 향해 놓여 있다.

리조트를 돌아보니 의도가 읽힌다. 고객이 리조트 안에서 먹고 자고 놀고 쉬는 모든 활동을 다 하게끔 유도한다. 말하자면 올인클루시브(All-inclusive) 전략인데, 해외 유명 올인클루시브 리조트과 달리 추가 요금이 발생한다.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는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허은실 웰니스 코스가 해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요가 자세를 선보였다. 손민호 기자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는 웰니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허은실 웰니스 코스가 해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요가 자세를 선보였다. 손민호 기자

웰니스 프로그램의 대표 시설 ‘힐링 쇼파’다. 음악과 음파와 조명으로 숙면을 도와준다고 한다. 1대에 1200만원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웰니스 프로그램의 대표 시설 ‘힐링 쇼파’다. 음악과 음파와 조명으로 숙면을 도와준다고 한다. 1대에 1200만원이라고 한다. 손민호 기자

키즈 엔터테인먼즈 존 '바운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손민호 기자

키즈 엔터테인먼즈 존 '바운스'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 손민호 기자

리조트가 고객을 붙들기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 가운데 눈에 들어온 건 2가지다. 1120㎥ 규모의 키즈 엔터테인먼즈 존 ‘바운스’와, 요가·피트니스·스파를 결합한 웰니스 프로그램이다. 바운스는 벌써 거제시민의 나들이 명소가 됐고, 웰니스 프로그램은 30개가 넘어 고르는 재미가 있다. 허은실 웰니스 코치는 이 중에서 1박2일 프로그램을 추천했다.

 바다 곁에서 

남파랑길 거제 21코스에 있는 돌고래 전망대. 바다 멀리 외도와 내도가 보인다. 손민호 기자

남파랑길 거제 21코스에 있는 돌고래 전망대. 바다 멀리 외도와 내도가 보인다. 손민호 기자

한화리조트 거제 벨버디어가 바다를 품는 곳이라면 ‘남파랑길’은 바다를 곁에 두는 길이다. 남파랑길은 남한 해안을 잇는 코리아둘레길의 남해안 구간을 이른다(동해안 구간 이름이 ‘해파랑길’이다).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전남 순천까지 남해안을 잇는 남파랑길 노선이 확정됐다. 전체 길이는 약 960㎞이고, 코스는 모두 62개다.

남파랑길이 거제도에도 들어왔다가 나간다. 거제 구간은 180.6㎞ 길이로, 12개 코스로 구성된다. 거제시청 관광과 이용철 주무관이 가족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코스를 추천했다. 거제 21코스 14.4㎞ 중에서 예구마을부터 벧엘수양관삼거리까지 3.4㎞ 구간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거제 남동쪽 바다를 내다보며 걷는 길이다.

남파랑길은 아직 이정표가 없다. 그래도 걷는 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남파랑길 대부분이 기존의 지역 트레일을 잇고 있어서다. 거제 21코스도 거제시가 조성한 ‘섬&섬길’의 7코스 천주교 순례길과 구간 대부분을 공유한다. 거제시가 추천한 코스가 천주교 순례길의 1구간과 2구간이었다. 길 중간에 수도원이 있다.

공곶이 가는 길의 동백 터널. 2월이면 이 길에 빨간 동백잎이 양탄자처럼 깔린다. 손민호 기자

공곶이 가는 길의 동백 터널. 2월이면 이 길에 빨간 동백잎이 양탄자처럼 깔린다. 손민호 기자

예구마을에서 언덕을 넘으니 공곶이로 내려가는 동백 터널이 나타났다. 공곶이. 땅이 엉덩이처럼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엉덩이 고(尻) 자를 쓰는 곶(串). 강명식(87)·지상악(83) 부부가 50년째 일군 터전이다. 해마다 4월이면 공곶이는 전국에서 몰려드는 인파로 홍역을 치른다. 부부가 심은 수선화가 해안 언덕을 노랗게 덮어버리기 때문이다. 10월의 공곶이는 노랗지 않았지만, 여전히 푸르렀다.

공곶이를 들렀다 나온 길은 해안 숲길을 따라 돌고래 전망대까지 이어졌다. 돌고래는 나타나지 않았어도 전망은 압권이었다. 오른쪽에는 내도와 외도가 나란히 떠 있었고, 왼쪽에는 해안 절벽 위로 서이말등대가 서 있었다. ‘윤슬’이라는 우리말이 있다. 햇빛이 비쳐 반짝이는 물결을 이른다. 윤슬이라는 단어를 거제 바다에서 배웠다.

 바다에서 꾸는 꿈 

식물원 카페 외도널서리의 내부. 외도보타니아에서 갖고 온 식물로 내부를 장식했다. 손민호 기자

식물원 카페 외도널서리의 내부. 외도보타니아에서 갖고 온 식물로 내부를 장식했다. 손민호 기자

거제 남쪽 바다에는 오래된 명물이 떠 있다. 외도보타니아. 국내 최초이자 국내 최대 해상 식물정원이다. 1995년 개방한 외도는 지난여름 누적 입장객 2000만 명을 돌파했다. 요즘에도 해마다 100만 명씩은 들어온다.

외도가 긴 세월 전국 명소로 인기를 끄는 이유는 외도가 아름다워서만이 아니다. 고(故) 이창호(1934∼2003), 최호숙(82) 내외가 1969년부터 손수 일군 꿈의 현장이어서다. 아내 손 이끌고 섬에 들어온 남편은 15년 전에 먼저 갔고, 지금은 아내 혼자 섬을 지키고 있다.

외도보타니아 전경. 고 이창호, 최호숙 부부가 1969년부터 손수 일군 꿈의 현장이다. 손민호 기자

외도보타니아 전경. 고 이창호, 최호숙 부부가 1969년부터 손수 일군 꿈의 현장이다. 손민호 기자

아내 혼자 섬을 지키고 있다는 건 정확한 사실이 아니겠다. 몸이 불편해진 최호숙 회장은 요즘 1달에 1주일 정도만 섬에 머문다. 어머니를 걱정해 내려온 아들과 딸 내외가 대신 섬 살림을 꾸린다. “이제 나 같이 사람은 물러나고 젊은 사람들이 나서야지.” 최호숙 회장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식물원 카페 외도널서리의 외부. 왼쪽의 음료는 외도널서리의 대표 메뉴 구조라 에이드. 손민호 기자

식물원 카페 외도널서리의 외부. 왼쪽의 음료는 외도널서리의 대표 메뉴 구조라 에이드. 손민호 기자

외도 경영에서 한 발짝 물러선 최 회장이 1년 전부터 공들인 것이 ‘외도널서리’다. 외도 배 뜨는 구조라 항구 뒷편, 구조라해수욕장 어귀에 지은 식물원 카페다. 30년쯤 전 마련했던 약 3300㎡ 면적의 땅에 외도를 닮은 카페를 들였다. ‘널서리’라는 이름이 낯설다.

“정원 문화가 발달한 영국에는 씨앗·화분과 함께 책과 음식을 파는 가게가 많아요. 그 널서리(Nursery)를 빌려 왔어요. 이 작은 포구마을에도 유럽의 선진 문화를 뿌리내리고 싶어요. 그 중심에 외도널서리가 있으면 합니다.”

식물원 카페 외도널서리의 외부. 개장한 지 100일이 안 됐는데 SNS에서 인증샷 명소로 인기가 높다. 손민호 기자

식물원 카페 외도널서리의 외부. 개장한 지 100일이 안 됐는데 SNS에서 인증샷 명소로 인기가 높다. 손민호 기자

카페는 식물원처럼 생겼다. 사방 벽은 물론이고 지붕도 유리로 덮여 있다. 최시형 건축가의 작품이다. 카페 내부는 외도에서 자란 꽃과 풀과 나무로 장식했다. 직접 수입한 생두로 커피를 내고, 프랑스 폴보큐즈 요리학교 출신 파티셰가 디저트를 만든다. 조만간 씨앗과 화분도 팔 생각이다. 7월 25일 문을 열었으니 개장 100일이 채 안 되는데 SNS에선 이미 인증샷 명소 대접을 받는다.

외도보타니아의 최호숙 대표와 여지혜 이사. 고부간이다. 손민호 기자

외도보타니아의 최호숙 대표와 여지혜 이사. 고부간이다. 손민호 기자

최 회장이 카페 주인이라며 여지혜(43) 이사를 소개했다. 며느리다. 하나씩 내려놓으려는가 싶었지만, 꿈도 되물림된다고 믿기로 했다.

 거제=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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