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강찬호의 직격 인터뷰

빅터 차 "김정은, 교황 만나면 힘들고 거북해질 가능성 높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6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부시 행정부에서 북핵 협상 총지휘했던 빅터 차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행정부시절 북핵 협상을 지휘했던 차 교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은 핵 신고를 두려워해 피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 에 응하지 않으면 제재 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 행정부시절 북핵 협상을 지휘했던 차 교수는 ’그때나 지금이나 북한은 핵 신고를 두려워해 피하고 있다. 그러나 신고 에 응하지 않으면 제재 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김상선 기자]

“미국은 노무현 정부 때 학습 효과가 있어 요즘 한·미 간 엇박자에 놀라거나 분노하진 않는다. 그러나 한국이 아무리 가속페달을 밟아도 북한이 실질적인 비핵화에 나서지 않는 한 대북제재 해제 등 원하는 걸 얻기는 힘들 것이다.”

정보 일부만 준 뒤 북과 전격 합의 #미 관료들 큰 우려 … 트럼프도 동감 #교황 방북, 김정은에 힘든 일 될 것 #트럼프, 김정은 좋아해 대화 유지 #내년 2월 키리졸브훈련이 분수령 #문·트럼프, 북핵 외에 공유점 없어

지난 22일 ‘평화를 향한 분투’를 주제로 열린 중앙일보-CSIS(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포럼 참석차 서울에 온 빅터 차 CSIS 석좌교수 겸 조지타운대 교수를 만났다. 올 초 주한 미국대사에 내정됐던 그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행정부의 ‘코피 작전(Bloody Nose)’을 반대한 것이 문제가 돼 인준 직전 낙마,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질문은 지난주 7박 9일 일정으로 끝난 문재인 대통령의 유럽순방 평가로 시작됐다.

문 대통령이 유럽 정상들에 대북 제재 완화를 요청했다. 워싱턴은 화가 나지 않았을까.
“아니, 워싱턴은 문 대통령이 그렇게 나올 줄 다 예상하였기에 분노하지 않았다. 10년 전 노무현 정부 때 다 겪어본 일들이라 흥분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유럽 정상들은 북핵에 미국 이상으로 강경하다. 내가 지난달 2차 남북정상회담 직후 유럽을 찾았는데 그곳 전문가들은 대북제재를 절대 풀면 안 된다면서 워싱턴보다 한술 더 뜨더라. 북핵은 글로벌 이슈다. 문 대통령에 대한 유럽의 반응은 놀랍지 않다.”
문 대통령이 교황을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평양 초청 의사를 전했는데.
“흥미롭다. 김정은이 아니라 문 대통령이 뜻을 전한 것이 눈에 띈다. 문 대통령이 북한을 밖으로 끌어내려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는 것 같다. 그러나 교황이 방북하면 인권 문제가 언급될 거다. 교황이 북한 땅에서 그걸 거론 않고 넘어가긴 힘들 거다. 그래서 김정은에겐 오히려 거칠고 힘든(tough) 만남이 될 수 있다.”
북핵에 한·미의 입장차가 크다고 했다.
“양국 간에 중요한 균열이 있다. 남한은 평화협정을 비핵화를 끌어내는 호재로 보지만 미국은 비핵화 없이는 한반도에 평화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 격차가 어떻게 좁혀질지 명확하지 않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사이에도 입장차가 컸다. 그때와 비교하면.
“노무현은 남북관계를, 부시는 비핵화를 우선했다. 이건 지금과 같다. 다른 점은 부시 때는 미국의 권력이 하나였는데 지금은 두 개의 권력이 공존한다는 거다. 하나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같이 북한에 강경한 관료집단 권력이고, 다른 하나는 이들과 생각이 전혀 다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권력이다. 부시 때는 대통령과 관료들이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지만 지금은 대통령이 워낙 예측 불가다.”
트럼프가 “김정은과 사랑에 빠졌다”면서도 제재는 유지하는 것은.
“좋은 시그널이다. 제재만이 북한을 움직일 수 있다는 걸 트럼프가 안다는 얘기다. 그러나 동시에 트럼프는 김정은의 관심을 끌고 싶어 한다. 김정은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둘 다 서로에 대해선 험담을 하지 않는다. 만일 둘이 서로를 비판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그런 상황이 올 것인가.
“그다지 그럴 것 같지 않다. 트럼프는 실패를 원치 않는 데다 북·미 협상에 너무 많은 걸 쏟아부었다. 적어도 중간 선거 이전에 실패를 인정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다만 연례 한·미연합훈련인 키리졸브(KR) 기간이 돌아오는 내년 2월 말까지 북한 비핵화에 진전이 없으면 뭔가 결정을 내리지 않을까 싶다. 미국은 북핵 말고도 현안이 많다. 이란 핵 협상 파기에다 러시아·중국과는 사실상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다 네거티브 이슈들이다. 유일한 포지티브 이슈가 북핵 협상이다. 그래서 앞으로도 한동안은 북핵에 대해선 현재 방향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좋은 기회다.”
내년 키리졸브 훈련도 취소될 것인가.
“트럼프와 김정은이 2차 북·미정상회담에서 성과를 내면 취소 가능성이 있다.”
2차 북·미정상회담이 내년 초로 미뤄졌다.
“좋은 징후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실무진 사전 조율도 별로 없이 만났던 6.12 북·미정상회담과는 반대로 북핵 협상이 정상 궤도를 찾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2차 북·미정상회담은 지연되는 게 좋다고 본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만나 성과를 내려면 양측이 미리 실무적 과제들을 완료할 시간이 필요해서다.”
북한이 2차 북·미정상회담 전에 할 일은.
“북한이 그동안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 등 몇 가지 조치를 하긴 했다. 그렇지만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는 아니고 신뢰 구축을 위한 행동일 뿐이었다. 북한이 해야 할 비핵화 조치는 따로 있다. 포괄적 핵신고와 검증, 시간표 제시의 3단계다.”
북한이 3단계를 다 해야만 제재가 풀리나.
“아니다. 북한이 일단 3단계 조치를 개시하면 어느 시점에서 제재가 풀리기 시작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시작해야 한다는 거다”
북한은 1단계인 신고부터 기피하고 있다.
“10년 전 상황(2007년 빅터 차가 미국 대표로 나왔던 북·미협상)과 똑같다. 그때나 지금이나 미국은 ‘완전하고 정확한 핵 신고서’를 원한다. 하지만 북한은 그런 신고서를 주면 전 세계가 북한의 핵 현황을 알게 되고, ‘당장 그것들을 폐기하라’고 요구할까 봐 두려워한다. 이 또한 10년 전과 같다. 양측이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다.”
북한이 전혀 바뀌지 않았다는 얘기니, 비핵화 의지도 여전히 없는 것 아닌가.
“3단계 조치가 시금석이다. 북한이 이걸 하지 않는 한 누구도 그들을 믿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북한이 신고부터 거부하는데도 “평양의 비핵화 진정성을 확인했다”고 한다. 미국은 어떻게 보나.
“미국은 문 대통령이 거짓말하고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3번이나 만나 많은 시간을 보냈다. 어떤 나라 정상도 그만큼 김정은을 만나본 이가 없다. 그러니 문 대통령의 판단은 우리 모두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만  중요한 것은 북한의 행동이다. 그들이 3단계 조치에 응하지 않으면 (미국) 사람들은 북한을 믿을 수 없을 것이다. 북한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만난 뒤 국제원자력기구(IAEA) 요원들이 방북해 신고 프로세스에 시동을 걸 것인지 여부에 답이 있다.”
워싱턴 소식통들에게서 ‘트럼프는 개인적으로 문 대통령을 믿지 않는다’는 얘기가 나온다. 문 대통령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실제보다 부풀려 전달하기 때문이라는데.
“내 생각엔 문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진지하게 설명한다면 트럼프는 그 말을 정말이라고 믿을 것 같다. 트럼프는 김정은을 좋아하고, 만나고 싶어한다. 때문에 워싱턴 관료들은 문 대통령에 회의적일지 몰라도 트럼프는 아닐 것이다.”
한국에선 문 대통령과 트럼프의 ‘케미(관계)’가 약하다고 우려하는 이가 많다.
“둘의 케미는 중요하다. 하나 트럼프는 문 대통령 아닌 김정은에 꽂혀있고 김정은도 문 대통령 아닌 트럼프에 꽂혀있다. 둘 다 문 대통령은 조력자로만 본다. 메인게임 선수는 결국 트럼프와 김정은이다.”
한국 정부가 종전선언·평화협정에 집착하다가 최근엔 대북제재 완화에 올인하는데 워싱턴 입장은.
“북한은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지 못해 제재를 당하는 게 아니라 핵 개발과 인권탄압 때문에 제재를 당하고 있다. 이 점에선 한국이 미국과 입장을 같이 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요즘 평화협정과 제재해제를 동일시하는 입장 같다. 거듭 강조하지만 제재해제는 평화협정과 무관하다. 북한이 비핵화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으면 제재가 해제되는 게 아니라 통상적인 협상 단계로만 들어서게 될 것이다.”
한·미연합전력을 약화시켰다는 지적을 받는 남북 간 군사협정은 어떻게 보나. 폼페이오가 강경화 외교장관에게 “미국과 사전협의가 부족했다”며 항의했다는 뉴스가 나왔는데.
“한국은 남북 협상 내용을 미국에 70만 전해준 다음, 북한과 최종 협상에서 100을 합의한 뒤 미국에다 ‘이미 다 얘기해주지 않았느냐’고 해선 안 된다. (”한국이 그런 식으로 미국과 정보를 공유해왔냐“고 물으니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좋은 동맹 모델이 아니다. 미국 관료들이 매우 걱정하고 있다. 트럼프도 다르지 않다.”
서울에선 폼페이오는 비둘기파, 볼턴은 매파로 보고 갈등 가능성을 걱정해왔다.
“폼페이오는 비둘기파가 전혀 아니다. 대통령이 원하는 걸 실현하기 위해 북한과 절충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는 북한에 환상도, 낙관주의도 없다. 전직이 중앙정보국(CIA)의 수장 아닌가. 또 볼턴은 이란과 러시아에 더 집중하고 폼페이오는 북한에 집중하고 있어 갈등을 빚을 일이 별로 없다. 미국에서 북한 이슈는 그 자체로만 다뤄지지 않는 상대적인 문제다. 요즘 워싱턴의 우선순위는 이란 핵, 러시아와의 갈등, 사우디아라비아의 언론인 살해 스캔들이고 북핵은 그다음이다.”
트럼프가 중간선거 뒤 북한에 강경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나.
“김정은이 핵실험을 재개하거나 비밀리에 핵실험장을 만든다면 그럴 수 있다. 그렇지 않으면 전쟁설까지 돈 지난해 같은 위기는 재연되지 않을 거다. 북한이 핵·미사일 도발을 그친 지 1년이 다 돼간다. 트럼프는 그걸 승리로 여긴다. 그 점도 강경노선 회귀 가능성을 낮춘다.”
내년 초 2차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북한은 평양을 원하는데.
“트럼프도 자신에게 엄청난 이목이 쏠릴 것을 기대해 평양에 언젠가는 꼭 가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그러나 내년 초에 그러긴 어려울 것이고, 싱가포르처럼 제3국이 후보가 될 것 같다.”
올 초 주한 미 대사에 내정됐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코피 작전(제한적 북폭)’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낙마했는데.
“렉스 틸러슨 당시 국무장관이 내게 대사직을 맡아달라고 처음 연락했고, 이후 인사 프로세스가 순조롭게 진행됐다. 한데 한국 정부가 내게 아그레망까지 준 시점에서 돌연 지명이 철회됐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내가 코피 작전 외에 무역 등 다른 이슈에서도 트럼프와 반대 입장을 취한 것 때문일 수도 있다. 또 코피 작전에 반대한 사람은 무수히 많았다.”
당시 미국이 정말 북한을 공격하려 했나.
“아주 심각한(serious) 상황이었던 것은 맞다. 그러니 ‘코피 작전’ 같은 험한 말이 나돈 것 아니겠나.”
당신은 부시 행정부에서 일하며 노무현과 부시의 갈등을 직접 체험했다. 그때와 지금의 한·미관계를 평가한다면.
“큰 차이가 있다. 노무현과 부시도 북한을 놓고선 갈등했지만 이라크 파병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 다른 영역에선 한·미관계를 증진하는 성과를 많이 냈다. 그래서 동맹이 위협을 받지는 않았다. 그런데 문 대통령과 트럼프는 북한 이슈 빼면 같이 추진하는 프로젝트가 전무하다. 그런 점에서 걱정이 크다.” 

빅터 차는 …

재미교포 부모 사이에서 1959년 출생한 한국계 2세 미국인. 컬럼비아대에서 정치학 박사를 받고 조지타운대학에서 교편을 잡다가 2004~07년 조지 W 부시 대통령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아시아 담당 보좌관 및 6자회담의 미국 측 차석대표로 일 했다.

강찬호 논설위원
정리=변은샘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