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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갈이 외치다 보수통합론…미궁서 헤매는 김병준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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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김병준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스1]

자유한국당 ‘김병준 비대위’가 갈팡질팡하고 있다. 최근 보수통합과 인적쇄신이란 상반된 두 이슈를 오가면서다. 24일로 출범 100일을 맞이했음에도 보수진영의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미궁 속에 빠져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갈팡질팡 항로 못 찾는 한국당 #“인적쇄신” 칼 빼며 잘나가다전 #전원책 특위 “재야보수까지 품자” #통합 문제 동시에 건드려 혼선 #황교안·오세훈 등 슬슬 움직여

당초 7월 중순 한국당 구원투수로 투입되면서 김병준 위원장이 내세운 건 ‘무너진 보수 가치의 복원’이었다. “먹방까지 규제하냐”며 국가주의 논쟁을 일으킨 것도 보수철학 정립의 일환이었고, “국가주의에 찬성하냐 마느냐를 두고 사람도 가를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던 김병준호가 ‘물갈이’ 쪽으로 급선회한 건 9월 하순경이었다. 253명 당협위원장을 일괄적으로 사퇴시켰고, 새 당협위원장을 뽑기 위한 조강특위도 발족했다. 인적쇄신을 위해 때를 기다리던 김 위원장이 마침내 칼을 빼 들었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그 이후 갈지자 행보가 본격화했다. 특히 전원책 변호사가 조강특위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메시지 혼선을 가중시켰다. 전 변호사는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보수가 분열돼선 희망이 없다. 바른미래당 및 재야인사까지 아우르는 단일대오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른바 ‘보수통합론’의 촉발이다. 뒤이어 김용태 당 사무총장이 “보수 대통합 전당대회가 비대위 활동의 마지막 목표”라며 힘을 실어줬다. 비대위가 황교안·오세훈 등을 접촉하며 차기 전당대회 밑그림을 크게 그린다는 얘기가 이어졌다.

동시에 홍준표·김무성 전 대표를 배척하려는 움직임도 불거졌다. “본인들이 큰 그릇이면 빠지고, 고집하면 스스로 무덤 파는 일”(전원책) “이분 저분 나와 혼란한 상황이 오면 비대위원장으로서 그냥 보고 있지 않겠다”(김병준) 등의 발언이다. 결국 당내에선 “다 합치자면서 누군 빼고 누군 들어가나. 기준이 뭐냐”란 볼멘소리가 나왔다.

여기에 “태극기 부대도 품어야 한다” “박근혜 탄핵에 대한 끝장토론이 필요하다” “경제민주화도 검토하자” 등 과거로 회귀하려는 듯한 발언이 쏟아지자 “이게 과연 보수 혁신인가”라는 당 안팎의 비판에 쏟아졌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전원책 변호사는 한국당을 ‘도로 친박당’으로 만들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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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김병준호’는 우왕좌왕할까. 전문가들은 “대담하게 과거와 결별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외부자들의 근본적 한계”라고 지적한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뼈저린 반성→예리한 단절→통 큰 화합의 수순을 밟아야 하는데, 쇄신과 통합을 한데 버무리면서 스텝이 꼬였다”고 전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김병준이라는 ‘노무현의 책사’를 왜 데려왔겠나. 기존 보수로는 안 된다고 생각한 거 아닌가. 그런데 과연 한국당이 달라졌는가. 딱히 변화의 모습을 체감하지 못하자 구심력만 약해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지지율 정체도 ‘김병준호’를 조급하게 만든 요소라는 분석이다. 한국 갤럽에 따르면 최근 3개월간 한국당 지지율은 10~13% 박스권에 갇혀 있었다. 같은 기간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세를 보인 점과 대조적이다.

황교안, 오세훈, 원희룡, 유승민, 홍준표(왼쪽부터).

황교안, 오세훈, 원희룡, 유승민, 홍준표(왼쪽부터).

비대위가 흔들리면서 오히려 장외 인사의 주가만 높이고 있다는 진단도 나온다. 대표적인 이가 홍준표 전 대표다. 6·13 지방선거 참패와 함께 사실상 “정치 생명이 끝났다”라는 평가가 적지 않았지만, 비대위의 ‘홍준표 불가론’이 오히려 재기의 기회를 제공했다는 분석이다. 지난 16일 “최근 나를 두고 시비를 거는 것을 보고 여태 침묵하였으나 더는 침묵하는 것은 나 자신의 명예를 위해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포문을 연 이후 홍 전 대표는 ‘페북 정치’의 가속을 붙이고 있다. 홍 전 대표는 급기야 이문열 작가, 노재봉 전 총리 등을 접촉하면서 여의도 밖 보수 인사를 모은 싱크탱크 ‘프리덤 코리아’를 조만간 발족시킬 예정이다. “보수 궤멸의 원인 제공자면서 4개월 만에 정계 복귀냐”라는 비난이 있지만 홍 전 대표는 특유의 완력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반면 친박계의 지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진 황교안 전 총리는 여의도와 ‘밀당’ 중이다. 다음 달엔 한국당 초선 의원과 토론회를 가진다. 황 전 총리는 24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만나자는 데 피할 필요는 없다. 오늘도 청년 단체와 만난다”면서도 “(한국당 입당 여부는) 조금 더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보수대통합’의 마지막 퍼즐로 꼽히는 유승민 의원과 원희룡 제주지사 등 옛 바른정당 출신 인사들은 한국당과 여전히 일정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김병준 위원장으로부터 직접 입당 제안을 받은 오세훈 전 서울시장 정도가 전당대회 출마를 고민하고 있다.

한국당 전당대회는 내년 2월로 예정돼 있다. 반환점을 돈 ‘김병준호’는 과연 반등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까. 오락가락 행보에 대해 비대위 관계자는 “일부 인정한다”면서도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은 대립점들을 서로 충돌시켜 가면서 하나로 만들어가는 게 정치의 묘미 아닌가”라고 전했다.

최민우·성지원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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