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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인 비하 vs 진정한 풍자…'군무새' 풍자에 발끈한 남성, 왜?

중앙일보

입력

XtvN 예능 '최신유행 프로그램'

XtvN 예능 '최신유행 프로그램'

XtvN 예능 '최신유행프로그램'의 시청자게시판이 성(性) 대결의 장이 되고 있다. 지난 20일 3회가 방송된 이후다. 그전 2회까지는 7개밖에 없던 게시글이 3회 방송 이후 24일 오전 현재 460여개가 달리며 프로그램 비판 글과 옹호 글로 대립을 이루고 있다.

'최신유행 프로그램'은 최신 유행 코드를 담은 짤막한 이야기들로 구성된 예능 프로그램이다. 일부 남성들의 분노를 촉발시킨 건 지난 20일 3회 방송에 담긴 '군무새' 편이다. 군대를 다녀온 뒤 복학한 대학생 중 군대 이야기에 집착하는 이들을 '군무새'로 지칭해 이들의 행동을 우스꽝스럽게 풀어냈다. 예를 들어 군무새 역할을 한 권혁수는 학생식당에서 반찬 투정을 하는 여자 후배들에게 "이게 다 군대를 안 가봐서 배부른 소리 하는 것"이라며 "군대에선 이런 호화로운 밥은 상상도 못 한다"고 혼낸다. 그러면서 "이래서 여자들이 군대에 가야 한다"고 일갈한다.

"군무새 열폭은 연애에 대한 욕구 불만" 풍자

XtvN 예능 '최신유행 프로그램'. 군대 얘기에 집착하는 복학생을 풍자했다. [사진 XtvN]

XtvN 예능 '최신유행 프로그램'. 군대 얘기에 집착하는 복학생을 풍자했다. [사진 XtvN]

이때 화면이 멈추며 내레이션이 깔린다. "이 학생은 군무새입니다. 군무새란 군대와 앵무새의 합성어로 같은 얘기만 반복하는 앵무새처럼 군대 얘기만 반복하는 족속을 뜻합니다" 방송은 '군무새'들의 민폐 행위를 종류별로 나눠 설명한다. 예를 들어 말끝마다 "오빠가"를 붙이는 복학생을 '오빠가무새', 자기가 군대에 갔던 시절을 얘기하는 복학생을 '나때는말이야무새'로 지칭한다. 특히 여자도 군대에 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을 '왜안가무새'로 지칭하며 "군무새 중에서도 제일 악명 높은 종"이라고 묘사한다.

방송에서는 군무새 퇴치 방법이라며 "폭주 상태인 '왜안가무새'와는 대화가 통하지 않는다"며 "차라리 얄밉게 약 올리는 편이 타격이 더 크다"고 말한다. 그리고 조류 전문가 윤무부 박사를 패러디한 윤유부 새박사가 나와 말한다. "(군무새의) 열폭에는 큰 이유가 없어요. 그냥 연애에 대한 욕구 불만이 쌓여서 그런 거죠."

일부 남성 "나라 위해 2년 고생…부심 부리면 안 되냐"

XtvN 예능 '최신유행 프로그램'

XtvN 예능 '최신유행 프로그램'

해당 방송은 논란을 우려했는지 수시로 "일반적이 아닌 몇몇 소수의 모습임을 미리 알려드린다"고 자막을 깔았다. 그럼에도 방송 직후 남성을 중심으로 시청자들의 비난이 이어졌다. 한 시청자(이**)는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제작진 사과 및 프로그램 폐지를 요구한다"며 "남성 조롱은 개그 소재가 아니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시청자(최**)는 "군무새 군무새 거리는데 기분 나쁘다"며 "나라 위해서 2년간 고생했으면 부심 좀 부리면 안 되느냐. 사과문 올리라"고 주장했다. 지난 21일에는 "XtvN 최신유행 프로그램 군인 비하 관련 군인 존중 문화 정착 정책을 시행해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올라왔다.

이에 반해 여성으로 추정되는 시청자들은 "통쾌하다"는 반응이다. 한 시청자(GoF***)는 "옛날 (여성을 안 좋게 일반화한) 롤러코스터 여남 탐구생활은 재밌다고 봐 놓고 남자를 안 좋게 일반화 시키니 반발한다"며 "솔직히 좀 우습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시청자(박**)는 "요즘 연예인들 불러 놓고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낄낄거리는 게 많아 예능을 끊었는데 오랜만에 웃었다"며 "사회의 절반이 가는 군대가 개그 소재가 안 쓰였다는 게 말이 안 된다. 방송에 나온 군무새들 못해도 10번은 넘게 봤다"고 말했다.

여성들은 "그동안은 여성이 풍자 대상…간만에 참 예능" 

XtvN '최신유행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

XtvN '최신유행프로그램' 시청자 게시판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 자체보다는 현상에 담긴 함의를 읽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신간 『한국, 남자(귀남이부터 군무새까지 그 곤란함의 사회사)』(출판사 은행나무)의 저자 최태섭 문화평론가는 "군무새는 일부 제한적 남성을 풍자의 대상으로 삼지만 된장녀·김치녀 등은 '여성'이라는 존재 자체를 조롱거리로 삼는 문화에 가까웠다"며 "그럼에도 이번 '군무새' 풍자에 남성들이 발끈하는 건 군대 문제와 관련해 남성이 가지는 복합적 감정이 작용함과 동시에 '메갈리아' 이전에는 남성이 조롱의 대상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인식에 균열이 일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최태섭 평론가는 또 "일부에서 이러한 풍자와 이로 인해 촉발된 성 대결적 구도가 양성평등에 기여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을 던지는데 이는 지금 평가하기도 힘들고 평가하기에 적절한 사안인지도 모르겠다"며 "그간 여성에 대한 조롱이 이어질 때는 이 질문이 제기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왜 이 질문이 제기되는지 그 차이를 이해하는 게 먼저다"고 말했다.

"여성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 됐다는 긍정적 방증"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SNS에서는 흔한 현상"이라며 "일종의 미러링"이라고 말했다. 이나영 교수는 "이처럼 남성에 대한 풍자가 일어나고 여성이 거기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자체로 어느 정도 여성이 말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됐다는 긍정적 방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풍자와 여성의 미러링이 성 대결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 게 아니라 그간 남성 집단이 여성에게 쏟은 말들이 어땠는가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며 "미러링은 결국 원본에 대한 반사이기 때문에 원본이 사라지면 소멸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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