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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7000명 캐러밴, 미국에 대한 공격” 보수표 자극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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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도널드 트럼프

도널드 트럼프

미 중간선거를 보름 남겨두고 중남미 이민자 행렬(캐러밴)이 선거판세를 좌우할 ‘뇌관’으로 떠올랐다. 온두라스에서 시작된 행렬이 북쪽의 미국 국경을 향하면서 7000명이 넘는 규모로 늘어나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얼굴)이 캐러밴을 빌미로 지지세력을 결집하고 있다.

중간선거 보름 앞두고 변수 등장 #목적지 미국 국경까지 1800㎞ 남아 #트럼프 “나쁜 사람 포함” 공포 조장 #지지율 44%서 47%로 올라가

트럼프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열린 테드 크루즈 공화당 상원의원에 대한 지지유세에 참석해 “이민자 한 명이 들어오면 가족을 모두 데려오는 연쇄이민이 문제”라며 “캐러밴은 미국에 대한 공격이고, 아주 나쁜 사람들이 포함돼 있다”고 성토했다.

캐러밴은 세계에서 가장 살인율이 높은 온두라스를 비롯해 과테말라·엘살바도르 등 중미 국가에서 폭력과 마약범죄, 가난을 피해 고국을 떠나 도보나 차량으로 미국을 향해 이동하는 이민자 행렬을 뜻한다. 미국이나 멕시코에서 난민 지위를 획득해 일자리를 얻는 게 목표다.

지난 12일 160명 규모로 온두라스 북부 산페드로술라 시를 출발한 지 10일 만에 7000여 명으로 늘었다. 현재 멕시코 남부 치아파스 주의 타파출라에서 북쪽인 우익스틀라로 이동 중이다. 목적지는 미국 남쪽 국경으로, 1800㎞를 남겨두고 있다.

캐러밴 초기에 합류한 호세 아니발 리베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뭐라고 하건 우리는 온두라스로 돌아갈 계획이 없다”며 “온두라스로 돌아가 봤자 지금 길을 걷는 것보다 좋을 게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캐러밴이 점차 큰 규모로 미 국경에 근접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트위터를 통해 ‘국가적 비상사태’라면서 중미 국가들을 향해 원조를 중단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는 “범죄자들과 신분이 확실치 않은 중동 사람들이 섞여 있다. 나는 국경 순찰대와 군에 이는 국가적 비상사태라고 알렸다. 법을 바꿔야 한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이에 대해 단순 이민자 문제를 테러리스트 이슈로 몰아가면서 국가적 비상사태와 연결시키려는 의도라는 비판이 나온다. 온두라스 출신으로 캐러밴 지원 단체 ‘국경 없는 사람들’을 이끄는 데니스 오마르 콘트레라스는 “캐러밴에는 단 한 명의 테러리스트도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행렬 참가자들은 모두 온두라스·엘살바도르·과테말라·니카라과에서 온 사람들”이라며 “내가 아는 한 4개국에는 부패한 정부를 능가하는 테러리스트는 없다”고 말했다.

캐러밴이 미국 국경에 점점 가까워지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으름장은 강도가 높아졌고, 캐러밴 행렬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 최근 수년간 캐러밴에 참여했다가 중도에 이탈, 멕시코와 과테말라 국경 지역에 살고 있던 이주자들이 이번 캐러밴에 대거 합류한 것으로 보인다.

유엔 국제이주기구(IOM)는 보고서를 통해 “캐러밴 참여자가 7233명으로 추산된다”면서 “이들은 멕시코에 장시간 체류하며 미국 남부 국경을 향해 계속 이동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캐러밴을 중간선거에 십분 활용하는 모양새다. 자신의 반이민 정책이 지지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22일 휴스턴 유세에서 트럼프는 “수백만 불법 외국인들이 우리 국경을 침범하도록 민주당이 부추기고 있다”고 일갈했다. 지난 18일 몬태나주 미줄라에서 열린 유세에서도 민주당과 그 지지세력들이 캐러밴을 후원하고 있다면서 ‘민주당 배후론’을 꺼내들었다. 이민자들이 민주당 측의 돈을 받고 국경으로 몰린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미 언론은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이 보수 지지층을 결집시켜 트럼프에 대한 지지율을 높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월스트리트저널(WSJ)과 NBC는 지난 14~17일 실시한 공동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를 47%로 집계했다. 지난달 44%에서 3%포인트 상승했다. 하지만 당 지지도 면에서는 여전히 민주당이 공화당을 약간 앞섰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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