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로맨틱 코미디에 한국 드라마가 어른거리네

중앙일보

입력 2018.10.24 00:02

업데이트 2018.10.24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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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친구 역할을 맡은 한국계 배우 아콰피나(왼쪽)와 주연 배우 콘스탄스 우.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친구 역할을 맡은 한국계 배우 아콰피나(왼쪽)와 주연 배우 콘스탄스 우. [사진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1년 동안 사귀어온 알뜰한 성품의 남자친구가 알고 보니 엄청난 부잣집 아들, 거대한 사업을 이어받을 후계자란다. 한국 드라마라면 이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하다. 남자친구의 가족, 특히 어머니는 가진 것 없는 집안 출신인 아들 여자친구를 못마땅하게 여길 것이며, 심할 경우 아들과 헤어지라며 김치 싸대기를 날리거나 돈 봉투를 던지는 막장급 전개도 가능하다.

25일 개봉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싱가포르 부잣집 예비 시댁 방문한
중국계 미국 여성의 로맨스 소동극

한데 이건 한국 드라마가 아니라 미국에서 큰 흥행 성공을 거둔 할리우드 영화다. 25일 개봉하는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은 그래서 더 흥미롭다. 핵심적인 갈등구조가 우리네 드라마와 닮은 데다, 화려한 묘사와 잘 빠진 스토리를 결합해 로맨틱 코미디에 기대하는 충분한 재미를 안겨준다.

주인공은 미국 뉴욕에서 연애를 해온 닉(헨리 골딩 분)과 레이첼(콘스탄스 우 분). 중국계로 미국에서 나고 자란 여성 레이첼은 닉의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함께 그의 고향 싱가포르로 향하면서 비로소 남자친구의 집안 배경을 알게 된다. 닉 가족의 어정쩡한 환대 속에서 자신에 대한 거부를 단박에 눈치챈 레이첼은 다른 여성들에게서 싱가포르 1등 신랑감을 가로챘다는 공격을 받기도 한다. 그렇다고 쉽게 기가 죽을 인물이 아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 최연소로 뉴욕대 경제학과 교수가 된 똑똑하고 다부진 여성답게 나름의 방식으로 상황을 돌파해 간다.

한국 드라마에서 충분히 보아온 대로, 이런 얘기에서 진짜 중요한 캐릭터는 남자친구 어머니. 이 영화도 시작부터 닉의 어머니 엘레노어(양자경 분)가 과거 유럽의 유서 깊은 호텔에서 푸대접을 받고 곧바로 호텔을 통째로 인수해 버리는 에피소드를 통해 그 캐릭터를 각인시킨다. 엘레노어는 우아한 기품과 냉정한 강단을 고루 갖춘 데다, 레이첼을 거부하는 이유 역시 꽤 그럼직하게 들려주는 매력적인 캐릭터다. 이런 엘레노어가 영화 후반에 날리는 결정적 한 방은 비록 김치 싸대기나 돈 봉투는 아니지만, 레이첼을 영혼이 탈탈 털리는 충격에 빠뜨린다.

그럼에도 결말은 물론 해피엔딩. 그에 앞서 닉의 집안이 최고 부자라는 설정과 싱가포르의 여러 명소를 통해 펼쳐지는 화려한 볼거리와 매끈한 스토리는 로맨스 오락물로 수준급 완성도를 보여준다. 할리우드 영화에 그려져온 아시아계 캐릭터에 대한 통념과 달리 주·조연 두루 개성과 매력이 돋보이는 것도 강점이다.

이처럼 출연진 모두 아시아계인 영화가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나온 것은 ‘조이 럭 클럽’ 이후 25년만. 미국에서 3주 연속 흥행 1위에 오른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전 세계에서 제작비의 7배가 넘는 흥행수입을 거뒀다. 레이첼의 싱가포르 친구로 등장하는 아콰피나, 그 아버지 역할의 켄 정은 널리 알려진 한국계 배우. 두 사람 모두 약방의 감초 같은 웃음을 안겨주며 톡톡히 활약한다. 싱가포르 출신 작가 케빈 콴이 미국에서 펴내 베스트셀러가 된 소설이 원작이다. 감독 존 추.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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