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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명규 "쟤 더 아파야 돼"···심석희 폭행 입막음 정황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전 대한빙상경기연맹 부회장)가 조재범 전 국가대표 쇼트트랙 코치로부터 폭행당한 선수들의 입을 막으려고 한 정황이 공개됐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 교수의 목소리가 담긴 녹취 파일과 조 전 코치의 옥중 편지를 공개하며 이같이 밝혔다.

조 전 코치는 지난 1월 훈련 중 심석희 선수를 때려 전치 3주의 상해를 가한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졌다. 조사 결과 2011년부터 올해 1월까지 4명의 선수를 폭행한 혐의가 추가로 확인됐다. 조 전 코치는 지난 9월 징역 10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현재 법정구속 상태다.

이날 손 의원이 공개한 녹취 파일에는 이 사건과 관련해 전 교수가 조 전 코치에게 지시한 내용이 담겼다. 그는 폭행당한 선수들이 심석희 선수에게 '조 전 코치와 합의하자'는 말을 할 정도로 힘들게 압박하라고 했다.

녹취 파일에서 전 교수는 "쟤(폭행당한 선수) 머리 더 아파야 해. 얘는 지금 정신병원에 갈 정도로 힘들어져야 '나 못하겠어. 석희야'라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압박은 가야 한다는 거야"라고 말했다.

손 의원은 "이들 선수가 심석희 선수에게 조 전 코치와 합의하자고 종용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 의원이 공개한 또 다른 녹취 파일에서는 "그 전에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었어. 맞아 맞아. 그 다음 날 기자회견을 하려고 했었어"라며 "내가 그거 막은 거야. 새벽 1시까지 얘기를 하면서"라고 말하는 전 교수의 육성도 담겼다. 손 의원은 "조 전 코치로부터 폭행당한 심석희 선수가 기자회견을 하려고 하자 전명규 교수가 이를 가로막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참석한 전 교수는 녹취 파일 공개 뒤 "본인 목소리가 맞느냐"는 손 의원의 질문에 "그런 것 같다"고 답했다. 다만 심석희 선수의 기자회견을 막았다는 내용에는 "석희한테 그런 이야기 한 적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게 한 이야기"라며 "올림픽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훈련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설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명규 교수(왼쪽의 육성이 담긴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전 교수는 자신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변선구 기자 [연합뉴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오른쪽)이 23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전명규 교수(왼쪽의 육성이 담긴 녹취파일을 공개했다. 전 교수는 자신의 목소리가 맞는 것 같다고 답했다. 변선구 기자 [연합뉴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빙상연맹에 질의하던 중 조재범 전 코치의 옥중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손혜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대한체육회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빙상연맹에 질의하던 중 조재범 전 코치의 옥중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편 이날 손 의원은 구속 중인 조 전 코치의 옥중 편지도 공개했다.

이 편지는 조 전 코치가 손 의원실로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조 전 코치는 편지에서 "한국체대에 입학하지 않고 연세대로 간 최민정 선수가 실력과 성적이 좋다 보니, 전명규 교수님이 한국체대가 무조건 더 잘나가야 한다면서 시합 때마다 저를 매우 압박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윗사람의 압박에 직업도 잃고, 설 자리가 없어질까 봐 무섭고 두려운 마음에 올바르지 못한 행동을 했다"며 "저의 잘못이고 반성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조 전 코치는 자신도 전 교수에게 수차례 폭행을 당했다고도 밝혔다. 그는 "교수 연구실에서 두 세시간씩 하염없이 세워 놓고 욕하고 소리 지르셨다"며 "머리를 주먹으로 3대 정도 맞고 뺨도 맞았다"고 밝혔다.

이날 손 의원은 녹취 파일과 조 전 코치의 편지를 공개하며 "한국 빙상계 적폐의 핵심으로 지목되어 온 전명규 교수는 조재범 코치 뒤에 숨어서 온갖 악행을 저질렀다"고 지적하며 "그의 음성이 담긴 녹취와 조재범 코치의 증언으로 그를 둘러싼 각종 의혹과 논란이 사실임이 명확하게 드러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빙상연맹이 문체부 감사를 받고 관리단체로 지정되는 와중에도 전명규 교수는 한국체대에서 감봉 3개월의 처분만 받았다"며 "이런 조치로는 체육계와 빙상계의 적폐청산이 요원하다. 재판장에 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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