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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3저’의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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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동호 기자 중앙일보
김동호 논설위원

김동호 논설위원

퍼펙트 스톰은 최악의 기상 상황이 겹쳐져 거대한 태풍을 일으키는 현상이다. 이것이 휩쓸고 지나가면 풀 한 포기 살아남기 어렵다. 도저히 일어나기 어렵다는 뜻에서 경제적 측면에서는 악재가 한꺼번에 발생하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런 퍼펙트 스톰이 우리에게 몰려오고 있다. 한국에선 유가·환율·금리가 한꺼번에 높아질 때 퍼펙트 스톰이 형성된다. 이른바 ‘신3고(高)’ 현상이다.

우리에겐 이보다 한국 경제가 순풍을 탔던 ‘3저(低)’가 익숙하다. 1986년부터 88년까지 3년간의 호시절이다. 그때는 우리 기업의 체력이 급신장했던 시절로 전두환 대통령이 “경제만큼은 잘했다”고 큰소리쳤던 원동력이었다. 이들 세 요소는 한국 경제의 생명줄이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 한국은 국제유가가 오르면 원가 상승으로 경제 전체가 휘청거린다. 환율 역시 변동성이 높아지면 수출 경쟁력에 상처를 입힌다. 고금리는 기업은 물론 가계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한국 경제는 3저를 통해 급성장할 수 있었다. 1996년 ‘선진국 클럽’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3저를 통해 한국 경제가 덩치를 키운 결과였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는 철강·조선·자동차·전기전자·석유화학 산업이 급성장한 것도 이때였다.

그로부터 30년 세월이 흘렀다. 이번에는 이들 세 요소가 ‘3고’로 돌변하면서 한국 경제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유가는 미국의 이란 제재 영향으로 배럴당 100달러 돌파설도 나오고 있다. 셰일가스 혁명이 유가 상승을 막을 것이란 에너지 전문가들의 예측이 빗나가고 있는 것이다.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겉보기에는 최근 1년간 1100원 안팎에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수출 품목의 절반이 우리와 겹치는 일본과의 경합 관계로 보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엔저’ 정책 여파로 실질실효환율로는 원화 가치가 상대적으로 상승세를 타고 있어서다.

금리를 들여다보면 앞이 더 캄캄해진다. 한국 경제가 2%대 저성장에 빠지면서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11개월째 1.5%에서 동결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경기 조절을 위해 금리를 계속 올려 한·미 간 금리 격차가 0.75%포인트로 벌어졌다. 결국 한국도 금리 인상이 시간문제라는 얘기다. 이런 암울한 얘기를 하다 보면 30년 전 3저의 추억이 그리워질 뿐이다. 퍼펙트 스톰을 피하는 길은 혁신을 통한 생산성 향상밖에 없다. 경제 체력을 강화하는 것 외엔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김동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