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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백·성인용품 … 7억 쓴 유치원장, 대법 판례 보니 횡령 무죄 가능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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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경기도 소재 비리 의혹이 제기된 유치원. 원장 A씨가 교비를 부당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1]

경기도 소재 비리 의혹이 제기된 유치원. 원장 A씨가 교비를 부당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뉴스1]

명품백과 성인용품 구입 등 사적 용도로 7억원 가까운 유치원 운영자금을 쓴 유치원 원장은 교육청 감사를 받고 파면조치됐다. 하지만 형사처벌은 받지 않았다. 그 이유는 횡령죄로 처벌이 어렵다는 대법원 판례가 있기 때문이다.

대법 “학부모가 낼 돈 국가가 지급 #결제된 뒤에는 원장 사적 재산” #법조계선 “법 사각지대 드러나”

지난 7월 대법원 3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업무상 횡령 등 혐의로 기소된 어린이집 원장 김모(42)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50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창원지법에 사건을 돌려보냈다.

김씨는 지방자치단체에서 학부모에게 지급한 ‘아이사랑카드’(현 아이행복카드)로 납부된 보육료를 사적 용도로 사용해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 수사 결과 김씨는 남편을 운전기사로 등록해 1500만원을 지급하고 아들의 휴대전화 요금 100만원을 어린이집 돈에서 쓴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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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을 맡았던 창원지법 통영지원은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담당 판사는 “아이사랑카드로 결제했다고 해도 이는 어린이집 원장의 수익에 해당되며 용도가 정해진 것은 아니다”고 봤다.

아울러 “개인 용도로 돈을 쓴 것은 보육서비스의 질을 저하시키는 행위로 도덕적 비난을 하거나 행정제재를 할 수는 있겠지만 횡령죄로 형사처벌을 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항소심을 맡은 창원지법은 김씨에 대해 횡령 혐의를 인정해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보육료는 어린이집 설치·운영에 필요한 범위로 목적과 용도를 한정해 위탁받은 돈”이라고 판단했다. 현행 유아보육법에 따르면 정부 보조금을 부정 수급하거나 유용한 사람은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다.

1심과 2심이 엇갈린 상황에서 대법원은 2심 판단을 다시 뒤집었다. 학부모가 내야 할 돈을 국가가 대신 납부한 지원금은 결제가 이뤄지면 어린이집 원장의 사적 재산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재판부는 “학부형이 어린이집에 보육비를 냈을 경우 그 돈은 목적과 용도가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일단 사회복지법인이나 경영자의 소유가 된다”고 밝혔다. 해당 어린이집은 지원금(보육료)이 아닌 보조금도 받았다. 보조금은 교사 인건비나 급식비 등 용도와 목적이 정해진 자금으로, 다른 곳에 쓰면 횡령죄로 처벌할 수 있다. 하지만 어린이집 명의의 계좌에 소득과 지원금·보조금 등 다양한 자금이 섞여 있었던 점이 감안됐다. 재판부는 “보조금이 일반 자금과 섞여 있어 목적과 용도를 한정해 위탁한 금액을 다른 용도로 사용한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법무법인 이로의 박병규 변호사는 “돈을 어린이집에 직접 지급하느냐 부모를 통해 지급하느냐는 방법의 차이지 김씨가 쓴 돈은 실질적으론 국가보조금과 그 목적이 같다”며 “처벌하지 않는 건 부당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런 한계 때문에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누리과정 지원금을 형사처벌이 가능한 보조금으로 바꾸는 내용의 유아교육법 개정안 등을 발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대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횡령죄 처벌이 어려울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법무법인 민주의 서정욱 변호사는 “보육료 계좌에 돈이 끊임없이 들어왔다 나가는데 그중 어느 금액이 보조금인지 검사가 특정지어 입증하기 어렵다”며 “계정을 구분짓지 않으면 법을 바꿔도 또 다른 편법이 생겨날 것”이라고 말했다.

박사라 기자 park.sa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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