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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 논설위원이 간다

너도나도 꽂는다, 강남 다이어트 주사 '삭센다'가 뭐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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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집에서 매일 맞는 다이어트 자가주사 불법 거래 기승 

처음 들었을 땐 기괴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이 괴상한 걸 한다는 사람이 주위에 한둘이 아닌 거다. '강남에서 안 하는 사람이 없다'는 과장된 수식어가 붙는 다이어트 자가주사 삭센다(Saxenda) 얘기다. 실제로 지난 3월 국내에 첫 출시된 이후 반년도 채 안 돼 품절사태까지 빚었다. 온라인 중고장터에선 쓰다만 주사제가 불법거래되기도 했다. 의학 전문지가 아닌 대중매체엔 광고는 물론 보도자료조차 함부로 뿌릴 수 없는 전문의약품이 어떻게 이런 비정상적인 유통경로를 통해 인기를 누리는 것인지, 또 부작용과 문제점은 없는지 확인해 봤다.

지난 3월 국내 상륙한 덴마크 약 #FDA 승인 비만약 중 유일한 주사 #병원서 직접 팔아 수익 올리니 #의사들이 불법 광고·판매 앞장서 #비만 치료 외 미용용 오남용 심각 #정상체중 사용시 부작용 우려 커

삭센다 펜 하나에 비만치료제 18mg이 들어있는데 펜 끝의 레버를 돌려 필요한 용량만큼 쓴다. 주사제라 거부감이 클 법도 한데 의사들의 강력한 홍보로 일반인들 사이에 이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삭센다 펜 하나에 비만치료제 18mg이 들어있는데 펜 끝의 레버를 돌려 필요한 용량만큼 쓴다. 주사제라 거부감이 클 법도 한데 의사들의 강력한 홍보로 일반인들 사이에 이상 인기를 누리고 있다. 임현동 기자

지방분해 주사 얘기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본인이 직접 피하지방이 많은 자기 배(또는 허벅지나 팔)에, 게다가 한두 번도 아니고 대략 3개월 이상 길게는 1년까지 하루에 한 번씩 지속적으로 맞는 자가주사제였다. 당뇨 치료를 위해 어쩔 수 없이 맞는 인슐린 주사도 환자 입장에선 거부감이 크다. 이런 이유로 제약업계에선 비싼 가격은 차치하고 살 좀 빼겠다고 매일 직접 주삿바늘을 꽂아야 하는 비만치료제가 과연 한국시장에서 얼마나 통할지 의구심을 갖고 바라봤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입소문만 놓고 보자면 저항감은커녕 1999년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가 국내에 소개됐을 때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리고 있다. 처음엔 의사, 그 다음엔 트렌드에 민감한 뷰티 업계와 강남을 거쳐 이젠 전국적으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삭센다를 판매하는 한국노보노디스크제약 홍보 담당자는 "구체적인 판매량은 밝힐 수 없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폭발적으로 수요가 넘쳐 지난 8월엔 신규 환자에게 2~3주가량 약을 공급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삭센다는 덴마크 노보 노디스크가 당뇨 치료제(빅토자) 개발 중에 체중감소 부작용이 있는 걸 발견하고는 아예 비만 치료제로 이름을 바꿔 내놓은 신약이다. 협심증 치료제 개발 중 발견한 부작용으로 만든 비아그라처럼 말이다. 미국에선 2014년 12월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을 거쳐 2015년 출시했다. 한국은 2017년 7월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허가를 받아 올 3월부터 시중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제니칼 등 기존의 먹는 비만치료제는 지방흡수를 막지만 이건 식욕 자체를 억제해준다. 쉽게 말해 안 먹어도 포만감을 느끼게 해 식탐의 고통 없이 체중을 빼는 방식이다. 여러 국가에서 3000여 명의 비만과 당뇨병 관련 환자를 대상으로 56주 임상실험을 한 후 승인을 받았다니 글로벌 제약사의 제법 믿을만한 신약인 셈이다.

사용량에 따라 이 펜 하나로 6~30일을 쓸 수 있다. 매일 사용할 때마다 1회용 주사바늘을 교체하지만 감염위험으로 여러 명이 돌려쓸 수는 없다. 그런데도 쓰던 중고가 온라인장터에서 팔리기도 한다. 임현동 기자

사용량에 따라 이 펜 하나로 6~30일을 쓸 수 있다. 매일 사용할 때마다 1회용 주사바늘을 교체하지만 감염위험으로 여러 명이 돌려쓸 수는 없다. 그런데도 쓰던 중고가 온라인장터에서 팔리기도 한다. 임현동 기자

문제는 극단적인 오남용이다. 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의사의 엄격한 진료 하에 사용돼야 하는데 마치 화장품 사듯이 과체중도 아닌 20~30대의 날씬한 젊은 여성들이 친구끼리 공동구매하거나 중고거래까지 한다. 주부 최모(47)씨는 아예 병원에 가지도 않았다. 그는 "친구가 구해줘서 3주째 매일 맞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부 송모씨는 남편이 대학병원 비만클리닉에서 처방받은 삭센다 주사제 중 하나를 본인이 사용하고 있다. 30대 직장인 김모씨는 병원에 직접 가기는 했다. 하지만 사실상 진료는 받지 못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찾아낸 삭센다 판매 병원(피부과)에 가서 "사고 싶다"고 했더니 의사가 체질량지수(BMI)나 병력은 묻지도 않고 내줬다. 세 사람 모두 비만은커녕 과체중으로 보기도 어렵다.

정말 이렇게 쉽게 살 수 있을까 싶어 SNS에서 검색한 후 한 병원을 직접 찾아가 봤다. 정확한 BMI는 잘 모르지만 나 역시 딱 보기에 정상체중인데도 구매를 만류하기는커녕 오히려 "다른 주사제와 같이 하면 할인받을 수 있다"고 했다.

의사 처방 없이 약을 구하는 건 물론 불법이고 이처럼 의사가 제대로 된 진단 없이 약을 파는 것도 식약처와 제약사의 가이드라인에 어긋나는 행위다. 삭센다는 FDA나 식약처 모두 BMI 30 이상의 고도비만 환자나 혈압·당뇨·고지혈증 등 다른 위험인자가 있는 BMI 27 이상 비만 환자에 한해 처방하도록 허가했다. 하지만 이처럼 비만이 아닌데도 미용용으로 판매하는 병원이 수두룩하다. 불법 광고를 단속하는 식약처 사이버조사단이 있다지만 지금도 인스타그램에 '삭센다'를 검색하면 수천 건 이상이 뜬다.

인스타그램에 #삭센다를 치면 수천개의 포스팅이 뜬다.

인스타그램에 #삭센다를 치면 수천개의 포스팅이 뜬다.

그렇다 보니 환자에게 부작용이 제대로 고지될 리가 없다. 적잖은 병원에선 "메스꺼움과 구토가 있을 수 있는데 이것도 일주일이면 사라진다"고만 얘기한다. 하지만 유튜브엔 "구토 등으로 중도에 포기했다"는 후기가 제법 많다. 밥을 전혀 먹지 않아도 더부룩한 느낌에 끼니를 아예 걸르게돼 위를 버렸다는 사람도 적지 않다. 미국 법무부는 지난해 9월 "노보노디스크가 삭센다 주성분인 리라글루타이드의 갑상선암 유발 내용을 제대로 경고하지 않았다"며 662억원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갑상선 가족력이 있다면 전문의의 면밀한 검토가 있어야 하지만 무분별하게 판매되는 게 현실이다. 또 18세 미만의 미성년이나 임신부·수유부도 원칙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데 한국에선 소아과와 산부인과에서도 판매한다. 심지어 한 산부인과 의사는 인터뷰 형식의 광고기사에서 "삭센다는 산부인과에서도 용이하게 쓰이는 보조 치료제"라며 "생리불순까지 해결 가능하다"고 말했다. 한 성형외과의 유튜브 홍보 동영상에선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는 소아비만에 획기적일 것"이라고 했다. 모두 근거 없는 주장이다.

FDA 승인 비만치료제

FDA 승인 비만치료제

BMI 기준을 벗어나는 사람에겐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는 물론 비만 환자와 동일한 효과가 나타나는지도 전혀 확인된 바가 없다. 삭센다가 방대한 임상 후 승인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비만 환자만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했기 때문이다. 노보노디스크측은 "임상실험은 BMI 27 이상인 18세 이상 성인만 대상으로 했기에 정상체중이나 소아와 관련한 임상 데이터가 없다"고 밝혔다. 2016년 미국의 권위 있는 의학저널 JAMA(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실린 아이오와 의대 교수팀 연구도 평균 BMI 36.1인 고도비만 환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FDA 승인 비만치료제 6개 중 1959년에 나온 펜타민을 제외한 5개를 비교한 이 연구에서 한국 출시 전인 큐시미아가 가장 큰 체중감소 효과를 보였고, 삭센다·콘트라브·벨빅·제니칼이 차례로 뒤를 이었다. 이중 삭센다만 주사제다.

효과가 엇비슷한 데다 값은 훨씬 싸고 편하게 먹으면 되는 비만 약이 많은데도 왜 유독 삭센다가 국내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일까.

역설적으로 값비싼 주사제라 그렇다. 국내 약사법상 처방 약품은 약국을 통해서 판매해야 한다. 하지만 주사는 원래 병원에서 맞는다는 이유로 자가주사인 삭센다도 병원이 직접 판매하고 있다. 환자 입장에선 거부감이 크지만 의사 입장에선 돈이 되기에 적극적으로 홍보할 이유가 있다는 얘기다. 병원마다 판매가격은 다르나, 짧게는 6일에서 길어도 30일 사용하는 18mg짜리 펜 모양 주사제 하나가 대략 10만~15만 원 선에 팔리고 있다. 복용 비만치료제는 4주에서 길어야 3달까지 짧게 복용하고 복제약도 많아 저렴하다. 이에 비해 삭센다는 수입약 자체의 가격도 비싼 데다 최장 1년까지 사용할 수 있어 한마디로 병원 입장에선 돈이 된다. 한국노보노디스크는 "공급가격은 대외비"라며 공개를 거부했지만 일선 병원 의사들은 "개당 7만 원 선에서 공급받는다"고 얘기한다.

광고가 불법이라지만 SNS와 유튜브에 오른 숱한 후기 동영상 중엔 의사가 직접 체험했다며 올린 게 상당수다. '두 달 넘게 맞고 있는 삭센다 첫 달에 5㎏ 감량! 현재까지 9㎏ 감량'이라며 원장이 직접 주사 맞는 동영상을 붙인 청담동의 한 클리닉처럼 대놓고 광고를 하는 병원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광고 내용만 보면 전문의약품이 아니라 화장품이나 건강보조식품으로 착각할 지경이다.

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의사들의 광고성 포스팅. [인스타그램 캡쳐]

SNS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의사들의 광고성 포스팅. [인스타그램 캡쳐]

'피하지방부터 내장지방까지 한 번에 해결, 지방간까지 감소 부가세 처방비 포함 9만9000원'이라는 표현은 차라리 점잖다. '장안의 화제'나 '품절 대란''솔드아웃''전국 최저가 진행 중' 같은 홈쇼핑 광고문구 같은 선정적 단어를 붙인 곳도 흔하다. '삭센다 예약판매 예약 명단 등록 시 삭센다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미그보스정 무료 처방'이라거나 미장원 가격표처럼 '삭센다 1펜+바디  디자인 주사 1회 30만원' '런칭기념 인기 절정 아이템 모음 삭센다 1개월 15만원 삭센다+슬림주사 1개월 25만원'을 내세워 손님을 끄는 곳도 있다.

주무부처인 복지부는 광고가 불법일 뿐만 아니라 병원 판매 자체도 불법이라는 입장이다. 약물정책과 김정연 서기관은 "약사법상 의사가 직접 주사할 때만 의사가 취급할 수 있는 것"이라며 "자가주사라면 병원 판매는 원칙적으로 불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이 제품이 나온 지 얼마 안 되다 보니 현장에서 혼선이 빚어지는 모양인데 현장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단속은 식약처 소관"이라고 말했다. 반면 식약처 담당자는 "허가 이후의 판매와 관리는 복지부 소관"이라고 말했다.

중고거래는 오남용을 넘어 훨씬 더 위험하다. 삭센다는 18mg의 주사액이 펜 모양의 주사제 안에 담겨 있어 사용용량에 따라 펜 하나를 6일~30일까지 사용한다. 매번 1회용  주삿바늘을 교체하고 주사 부위를 알코올 솜으로  소독하지만, 감염위험 탓에 여러 명이 돌려쓸 수는 없다. 그런데도 한두 번 사용한 주사제가 버젓이 중고장터에 나오는 실정이다.

제약사가 의사를 상대로 한 편법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규제당국이 사실상 손을 놓은 사이 국민 건강은 이렇게 위험으로 치닫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