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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하경 칼럼

배짱 없으면 프란치스코 교황 평양 초대하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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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하경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
이하경 주필

이하경 주필

프란치스코 교황의 평양행은 성사될 것인가. 그래서 한반도 냉전의 장벽을 허물고 운명을 바꿔놓을 것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바티칸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초청 의사를 전달하고 교황이 “나는 갈 수 있다”고 응답했지만 낙관은 금물이다. 1991년 김일성, 2000년 김정일의 초청 시도도 무산됐다. 이번에는 13억 가톨릭의 상징인 교황이 한 세기 전 ‘동방의 예루살렘’ 평양을 세계사의 무대로 걸어나오게 할 수 있을까.

김일성·김정일 시도했지만 수포 #체제 위협 우려해 막판에 접어 #진짜 신자·사제 없는데 올 순 없어 #김정은, 참모 논리 넘어선 결단을

 아르헨티나 태생인 교황은 가톨릭의 변방인 비유럽권, 교계 내부의 ‘야당’인 예수회 출신이다. 율법보다는 현실을, 사변보다는 행동을 중시해 왔다. 쿠바의 라울 카스트로와 미국의 버락 오바마를 중재해 54년간 단절된 두 나라 관계를 회복시켰다. 콜롬비아 정부와 반군의 내전 종식에도 큰 역할을 해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유대교 랍비 스코르카와 함께 방문했다. 그는 올해 초 “내 가슴과 머리에 항상 한반도가 있다”고 했다. 문 대통령에게는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의 심장은 이미 한반도 평화를 향해 뛰고 있다.

 평양은 2000년 전 인류를 위해 고난을 받아들인 예수의 그림자가 대동강에 어른거리는 영성(靈性)의 도시였다. 영국인 목사 로버트 토머스는1866년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의 통역사가 돼 그해 8월27일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 평양에 도착했다. 평안 감사 박규수의 조선군은 9월5일 통상을 요구하는 상선을 불태우고 선원들을 살해했다. 토머스는 박춘권의 손에 죽기 전 품고 온 한문 성경을 강변 곳곳에 뿌렸다. 그는 한국 최초의 개신교 순교자가 됐다. 박춘권은 성경책을 주워 탐독한 뒤 회개했고 여생을 전도에 바치는 반전의 삶을 살았다.

이하경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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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역도시 특유의 개방성과 조정의 서북 차별에 대한 반감이 혼재된 북방 도시는 서양의 복음인 기독교에 열광했다. 스스로의 죄를 고백하는 1907년 평양 부흥집회를 계기로 조선의 신도 수가 급증해 1938년에는 60만 명에 달했다. 평양 출신인 김일성도 어린 시절 주일학교를 다니면서 오르간을 연주했다. 평양에는 중국에도 없는 외국인 학교가 있어 선교사 자녀들이 다녔다.

 평양과 가톨릭의 인연은 16세기 말 임진왜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1592년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신임을 받았던 선봉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이끄는 1만8000명의 부대원들은 대부분 가톨릭 신자였다. 상인 출신 고니시의 세례명은 아우구스티노였다. 고니시 부대는 십자가가 그려진 군기(軍旗)를 들고 부산포에 상륙해 부산진성, 동래성을 유린하고 파죽의 기세로 20일 만에 한양에 입성해 쑥대밭으로 만든 뒤 마침내 평양성을 초토화시켰다.가는 곳마다 백성들의 피로 산하가 물들었다. 의주로 쫓긴 선조는 명나라 망명을 고민했다.

 조선이 잠들었던 1569년 포르투갈 예수회 선교사의 포교를 허용하고 조총을 전수받은 오다 노부나가의 판단이 가져온 결과였다. 이렇게 평양과 가톨릭의 첫 인연은 악연이었다. 공교롭게도 프란치스코 교황은 고니시와 뿌리가 같은 예수회 출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양행에 의욕을 보이는 것은 정상국가로 국제사회에 나오려는 김정은 위원장에게는 분명 좋은 일이다. 정의와 평화를 강조하는 교황이 한반도에 뛰어들면 사사건건 비핵화의 엄격한 조건을 내세우는 참모들에게 둘러싸인 트럼프에게도 활로가 될 것이다.

 교황은 조국 아르헨티나의 독재와 빈곤·매춘과 맞선 강인한 인물이지만 관용과 유연성을 보여준다. 그는 미혼모가 낳은 아이에게 세례를 주지 않는 신부들을 위선자라고 비난했다. 교황은 “눈물은 우리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보는 눈을 열어준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기독교를 세계화시킨 사도 바울을 도왔던 디모테오를 세례명으로 갖고 있다. 그는 개혁적 교황의 북한 정상화 노력을 돕는 21세기의 디모테오가 될 수 있을까.

 교황의 평양행은 김정은 위원장이 꺼낸 카드다. 그가 진짜 의지가 있다면 북한의 비핵화와 인권·종교의 자유에 대해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 김일성(1991년)과 김정일(2000년)은 교황을 초청해 놓고도 체제 위협을 의식하다가 기회를 날려버렸다. 만일 진짜 신자도, 사제도 없는데 아무런 준비도 없이 오라고 한다면 “북한이 바티칸을 이용해 평화 공세를 한다”는 비판에 직면할 것이다.

 70년간의 적대관계를 끝내는 일은 참모들의 치밀한 논리로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논리를 초월하는 지도자의 결단이 있어야 비핵화의 구체적인 액션이 가능할 것이다. 교황의 평양행이 실현되고, 한반도 평화라는 세계사적 과제가 해결되려면 김 위원장의 결자해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