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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남중 논설위원이 간다

치매약 안쓴 환자, 8년만에 90%는 중증···투약하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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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이웃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치매안심마을’

찾아가는 치매예방프로그램 ‘기억여행’에 참여한 할머니들이 열쇠고리에 색칠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찾아가는 치매예방프로그램 ‘기억여행’에 참여한 할머니들이 열쇠고리에 색칠을 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한국은 고령사회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이 14%를 넘었다. 장수는 한편으론 축복이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그늘이 따른다. 노화에 따른 질병, 그중에서도 치매가 심각하다. 국내 치매 환자는 70만 명에 이른다. 노인 열 명 중 한 명꼴이다. 2030년엔 약 127만 명, 2050년엔 약 271만 명으로 20년마다 두 배씩 늘어날 전망이다. 치매는 환자와 가족 모두에게 고통이다. 그래서 가족을 붕괴시키는 재앙이 되기도 한다. 치매가 가족을 넘어 이웃과 지역사회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란 인식 확산이 필요한 이유다. 일부 지자체 중심으로 번지는 ‘치매안심마을’ 만들기는 그 실천이다. 서울 성북구와 용산구의 ‘기억여행’ ‘기억지킴이’ ‘치매가족 자조모임’ 활동이 대표적 사례다. 그 현장을 따라가 봤다.

경로당 돌며 치매예방 봉사하고 #치매 독거노인 매주 방문해 돌봐 #환자 가족모임 만들어 자조 활동 #정보 공유하고 위로와 치유 받아 #고령화로 치매환자 급증 불가피 #조기 진단과 치료로 진행 늦춰야

“오늘이 몇 년, 몇 월, 며칠, 무슨 요일이지요?” “이천십팔년~, 시월~, 십오일~, 월요일이던가….”(할머니들)

“건망증과 치매의 차이가 뭐라고 했지요?” “힌트 주면 다시 기억해 내는 게 건망증, 힌트를 줘도 하나도 기억 못하면 치매지.”(김영숙 경로당 회장·82)

15일 오후 1시 서울 성북구 장위1동 동방경로당. 찾아가는 치매예방프로그램 ‘기억여행’(기억을 여는 행복한 인지활동 줄임말)에 참여한 12명의 할머니들 표정이 사뭇 진지하다. 자원봉사자 이가원(50) 강사의 질문에 꼬박꼬박 대답하며 집중하는 모습이 학생들 같다.

이씨의 ‘치매바로알기’ 교육은 친정 엄마와 수다를 떨듯이 자연스럽다. “엄마들~, 치매 안 걸리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몸과 마음이 튼튼해야죠. 하루 30분은 활보하듯 걸으세요. 여기 나와 늘 즐겁게 생활하시고요. 이제 추워지는데 주머니에 손 넣고 걷다 넘어지면 큰일 나요.” 할머니들이 “응응” “아하” 하며 맞장구를 친다.

치매 예방을 위한 ‘몸으로 하는 활동’이 이어졌다. 자원봉사자 원용언(70)씨가 이끄는 ‘실버체조’와 ‘열쇠고리 색칠하기’다. 할머니들이 율동을 따라 하고, 나무 열쇠고리 빈칸에 색연필로 칠을 하면서 장난치고 자랑을 하느라 경로당 안이 떠들썩하다. 원씨는 “뇌를 자극해 치매를 예방하는 인지증진 활동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치매예방을 위한 ‘실버체조’ 모습. 강정현 기자

치매예방을 위한 ‘실버체조’ 모습. 강정현 기자

‘기억여행’은 경로당별로 매주 1회씩 4회기로 진행된다. 치매를 이해하고 치매 환자와 가족을 돌보는 방법에 대해 교육을 받은 ‘기억친구리더’가 자원봉사자로 활동한다. 성북구가 추진하는 ‘치매안심마을’ 만들기 사업의 일환이다. 성북구 치매안심센터 이선미 팀장은 “치매를 올바로 이해하고 예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치매 환자와 가족이 삶터에서 이웃과 계속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게 치매안심마을의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성북구의 기억친구리더는 현재 102명이다. 이 가운데 50여 명은 치매전문자원봉사단 ‘기억지킴이’로도 활동한다. 치매 진단을 받은 취약계층 독거노인이나 노인 부부 집을 매주 방문해 안부를 확인한다. 치매약을 제대로 복용하는지 챙기고 인지증진 활동을 하며 말벗이 되어 주는 게 주된 역할이다.

이날 오후 3시 ‘기억지킴이’ 정정희(62)씨와 김이은(63)씨가 치매환자 김모(86) 할머니를 방문한다기에 따라나섰다. 5년 전 경증 치매 진단을 받은 김 할머니는 장위2동 주택가 반지하 방에 혼자 살고 있다. 방문이 열리자 김 할머니가 반색을 하며 두 사람 손을 잡는다. “어르신, 식사는 하셨어요? 뇌 영양제(치매약)는 잘 들고 계시죠?” 정씨가 할머니의 식사와 치매약 복용 상태부터 살핀다. “그럼, 할아버지가 나 데려가려면 아직 멀었어.” 김 할머니 말에 웃음이 터졌다. 할머니 종아리를 주물러주고 ‘콩 집어 옮기기’ ‘퍼즐 맞추기’ 같은 놀이를 하며 얘기를 나누는 동안 한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10년째 치매환자 돌봄 봉사활동을 해온 정씨는 “할머니가 작년에는 외출했다가 길을 잃기도 하고 우울감이 심해져 극단적 행동을 하기도 했다”며 “치매약을 꾸준히 드시고 지금은 훨씬 나아져 마음이 놓인다”고 말했다. 주말이면 딸과 손자·손녀와 함께 다른 치매 노인을 돌보는 김이은씨는 “치매에 걸렸다고 바로 시설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삶터에서 관리될 수 있도록 이웃과 지역사회의 돌봄이 확산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치매가족 자조모임 ‘독서클럽’의 활동 모습. 강정현 기자

치매가족 자조모임 ‘독서클럽’의 활동 모습. 강정현 기자

치매안심마을 만들기는 치매환자 가족으로까지 확장된다. 치매 정보를 공유하는 한편 고통을 나누고 치유하는 ‘치매가족 자조모임’이 대표적이다. 용산구의 경우 20여 개의 자조모임이 꾸려져 있다. 환자 가족 700명이 참여해 서로 격려하고 위로받는다. 치매를 다룬 책이나 영화를 함께 보는 모임이 있는가 하면 한국화 그리기, 가족 나들이, 가족난타 같은 모임도 있다.

16일 오전 용산구 치매안심센터 모임방에서 ‘독서클럽’ 자조모임이 열렸다. 환자 가족 6명이 참여해 『치매(인지증) 이야기』란 책을 놓고 이야기를 나눴다. 모임 진행자인 치매안심센터 김자은 팀장이 책에 언급된 치매에 얽힌 스토리들을 들려주며 대화를 유도했다. 치매 시어머니를 10년째 돌보는 노모(56)씨는 “노화라고 가볍게 보고 시어머니 증세에 늦게 대처한 게 가장 후회된다”며 “지금은 주위에 내 경험을 얘기해 주면서 치매를 인정하고 치매약 먹는 것도 감출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고 했다. 남편이 혈관성 치매인 박모(69)씨는 “치매 남편을 10년 넘게 돌보다 보니 내게도 문제가 생길까 봐 우울해지곤 한다” 며 “이 모임에 나와 위로도 받고 재미도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고 말했다.

치매안심마을 만들기를 비롯한 서울지역 치매통합관리를 책임지는 곳이 서울광역치매센터다. 2007년 설립 이후 12년째 센터장을 맡고 있는 서울대병원 이동영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를 만났다.

치매환자 증가 속도가 어느 정도인가.
“10년 전 8%였던 치매 유병률이 지금은 10%다. 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환자란 얘기다. 노인 나이가 매 5세 증가할 때마다 유병률이 두 배로 늘어난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절대 노인 수가 느는 데다 초고령자 비율도 높아져 치매환자 급증은 불가피하다.”
치매에 대한 인식개선을 강조해 왔는데.
“치매에 대한 두려움엔 치료되지 않는 병이란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2006년 기준으로 치매환자의 30%만 진단을 받았고, 5%만 치료를 받을 정도였다. 무료 조기검진사업이 시작되면서 그나마 지난 10년 새 인식이 바뀌는 중이다. 치매도 예방과 치료·관리가 불가능하지 않다. 조기 발견해 치료하는 게 중요하다. 치매약을 안 쓰면 8년 후 환자 90%가 중증으로 진행돼 시설에 들어가야 하지만 투약을 하면 그 비율이 20%로 낮아진다.”
치매 예방법을 조언하면.
“치매는 건강할 때부터 관리해야 한다.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그래서 평소 ‘지피지기’를 강조한다. ‘지’는 고혈압·당뇨병·고지혈증·비만을 잘 관리해 혈관을 지키자는 얘기다. ‘피’는 과음·과식·편식 피하기다. 두 번째 ‘지’는 활동적인 생활, 특히 운동을 지속하자는 거다. 하루에 총 1시간 걷기를 평생 하라. ‘기’는 취미·사회활동을 하면서 기쁘게 생활하라는 것이다.”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