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CCS(바이오에너지와 탄소 포집·저장)
지난 1~8일 인천 송도에서 열렸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Intergovernmental Panel on Climate Change)의 제48차 총회에서 ‘1.5도 보고서’가 채택됐다.
이 보고서에서 IPCC는 산업혁명 이전보다 지구 평균 기온이 1.5도 이상 상승하면 커다란 재앙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기온 상승을 1.5도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서는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0년 대비 45% 줄여야 하고, 2050년까지는 배출량을 제로까지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IPCC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는 물론 원자력 발전의 확대도 필요하다고 봤다. 이번 보고서는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한 ‘비상대책’ 혹은 ‘극약 처방’인 셈이다.
IPCC 보고서는 특히 온실가스를 전혀 배출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리고 2050년 이후 순 배출량을 제로로 낮추기 위해서는 이미 배출돼 공기 중에 떠다니는 온실가스를 다시 흡수·제거하는 기술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바로 마이너스 배출(negative emission)이다.
IPCC는 ‘BECCS’를 통해 이 마이너스 배출이 가능하다고 봤다. BECCS는 바이오에너지와 탄소 포집·저장(Bioenergy and Carbon Capture-Storage)이다.
그렇다면 과연 BECCS로 하늘의 온실가스를 빨아들여 온난화를 막을 수 있을까.
바이오에너지와 탄소 저장의 결합
1990년대부터 논의되기 시작한 BECCS는 말 그대로 바이오에너지와 CCS를 결합한 온난화 방지 기술, 온실가스 감축 기술이다.
우선 탄소 포집·저장(CCS, Carbon Capture and Storage)부터 살펴보면, 석탄·석유 등 화석에너지를 태우면 온실가스인 이산화탄소가 나오는데, 굴뚝 등에서 이산화탄소만 모아서, 바다 밑이나 땅속에 저장하는 기술을 CCS라고 한다.
기름을 퍼올린 후 남는 땅속 유전(油田)의 빈 곳 등에 파이프로 보내거나 배로 싣고 가서 주입하는 방식이다.
이런 전통적인 CCS에 바이오에너지 개념을 접목한 것이 BECCS다. 농작물이나 나무이 자라면서 광합성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식물은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농작물로 에탄올을 만들거나 나무로 바이오 연료를 만들어 사용할 수 있는데, 이런 바이오에너지를 태울 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포집·자장한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작물이 흡수하고, 작물을 바이오 연료로 만들어 태우고, 그때 나오는 이산화탄소는 모아서 땅속에 묻는 것이다. 결국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모아서 땅속에 묻는 결과가 된다.
이산화탄소 포집에는 보통 흡착제를 사용한다. 이산화탄소와 흡착제가 결합하면 에너지를 투입해 흡착제와 이산화탄소를 분리하는데, 이산화탄소는 따로 포집하고, 흡착제는 다시 사용한다.
모아들인 이산화탄소는 메탄올이나 폴리머 등 화학물질을 합성하는 원료로 사용할 수도 있다.
미국에는 실제 적용 사례도 있어
현재 BECCS가 실제로 적용되는 사례는 미국 일리노이주 디케이터(Decatur)에 있는 ADM사의 옥수수 에탄올 정제공장이다.
발효 공정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를 연간 100만t씩 포집해서 지하 사암층에 주입하는 방식이다.
미국 정부, 즉 에너지부에서 1억4100만 달러(약 1600억원)이 투입된 실증사업이다.
작은 규모로는 브라질과 사우디아라비아,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에서도 BECCS가 진행되고 있다.
브라질이나 스웨덴의 경우 BECCS를 과감하게 적용할 경우 2030년에는 이산화탄소 순 배출을 제로로 만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스웨덴의 경우 현재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20%를 산림에서 흡수하고 있다.
북미 지역에서는 최소한 4곳에서 에탄올 공장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원유 회수증진(Enhanced Oil Recovery)에 사용한다.
원유를 채굴할수록 압력이 낮아지고 채굴하기가 어려워지는데, 원유가 저장된 지층에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그 압력 덕분에 더 많은 원유를 캘 수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서는 EOR 방식으로 2400억t의 이산화탄소를 땅속에 저장할 수 있다고 본다. 전 세계 온실가스 7~8년 치에 해당한다.
하지만 EOR은 석유의 채굴·사용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BECCS처럼 마이너스 배출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한편, 노르웨이 슬라이프너(Sleipner)에서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되는 CCS 사업의 경우 바이오에너지와 결합한 것은 아니지만, 바다 밑 지층에 매년 100만t 규모로 이산화탄소를 묻고 있다.
미국·캐나다·호주 등지에서도 원유 증산 목적이 아닌 순수 저장을 목적으로 한 대규모 CCS가 5~6개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들을 바이오연료와 연결하면 곧바로 BECCS가 될 수 있다.
연간 30억t 이상 처리 가능 전망도
IPCC 보고서에서는 BECCS 방식으로 2100년까지 누적해서 최대 4140억t의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특히, 화석연료 소비가 줄지 않는다면 2100년까지 1조1191억t을 BECCS로 처리해야 기온 상승을 1.5도로 막을 수 있을 것이란 시나리오도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 전문가들은 BECCS를 적용할 경우 이산화탄소 마이너스 배출을 전 세계에서 연간 35억~200억t을 달성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현재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간 300억t 정도인데, 재생에너지와 원전으로 배출량을 줄이고, 여기에 BECCS까지 적용하면 현재 400ppm이 넘는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농도를 50~150ppm가량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150ppm 줄이면 거의 산업혁명 당시 수준(265ppm)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얘기다.
현재 BECCS를 통한 이산화탄소 제거 비용은 t당 60~250달러(6만8000~28만3000원) 수준인데, 앞으로 t당 100유로(13만원) 이하로 떨어지면 연간 39억t까지도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IEA는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오는 2050년에는 연간 20억t의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에서 제거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부에서는 바이오에너지와 기존 화석연료를 섞어서 사용하고, 탄소 포집 효율을 높인다면 탄소 배출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생태계 파괴 우려도 커
BECCS 보급에 대한 반대 의견도 적지 않다.
기존의 화석연료 사용을 부추기거나 재생에너지 보급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고, 땅속에 저장해 놓은 이산화탄소가 지진 등으로 분출될 경우 자칫 생태 재앙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또, 바이오 연료를 재배하기 위한 토지 확보 문제, 산림 훼손과 생물 다양성 상실 문제, 식량 생산 차질, 수자원 고갈 등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매년 10억t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하려면 2억~10억 ㏊의 토지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는 현재 미국 내 옥수수 경작지의 면적의 14~65배에 해당한다.
일부에서는 BECCS를 위해 지구 전체 경작지의 25~80%를 차지하게 된다고 말한다.
식량 가격이 치솟고, 가난한 나라 주민들은 기아에 시달리게 될 수도 있다.
더욱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산림을 훼손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고, 덩달아 숲에 사는 다양한 생물이 사라질 수도 있다.
지구 기온을 1.5도로 묶기 위해 BECCS를 확대했을 때 그로 인해 사라질 생물 종은 지구 기온이 2.8도 상승할 때 사라질 생물 종과 맞먹을 수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바이오 연료를 재배하느라 비료 사용이 늘어나고, 이로 인해 담수의 부영양화와 녹조 발생, 해양의 무산소층 발생 같은 환경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바이오에너지를 위해 옥수수 등 단일 종 만을 재배할 경우 감염에 취약해지고, 농작물 질병이 창궐할 수도 있다.
최근 '네이처 기후 변화'에 게재된 한 논문에서는 “BECCS 없어도 지구 기온 상승을 1.5도로 묶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신 재생에너지 보급과 에너지 효율 제고를 지금보다 훨씬 과감하고 신속하게 진행하고, 농업 생산성을 향상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특히, 개인 승용차 운행이나 항공 여행을 자제하고, 고기 섭취를 줄이는 등 생활습관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BECCS는 늘 좋은 것도 아니고 늘 나쁜 것도 아니다. ‘마법의 탄환’은 더더욱 아니다
하지만 지구온난화가 가파르게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안으로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는 있다.
국내에서는 실증사업도 중단
국내에서는 탄소 포집 단계뿐만 아니라 저장이나 자원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나 아직은 초보 수준에 머물고 있다.
국내에서는 2012년부터 각 대학과 국책연구소 연구팀으로 구성된 ‘한국 이산화탄소 포집 및 처리 연구개발센터(KCRC)’가 중심이 돼 이산화탄소 포집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 2010년 국가 CCS 계획을 마련했고, 해양수산부는 이산화탄소를 선박으로 수송해 바다 밑에 저장하는 기술 개발을 맡았다.
연간 100만t씩 저장하는 실증사업도 추진했다.
하지만 2016년 11월 기획재정부의 예비타당성 조사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저장기술에 앞서 포집기술을 먼저 집중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더욱이 국내에는 포집한 온실가스를 저장할 장소도 마땅치 않다는 반론도 많았다.
2030년까지 배출전망치(BAU, Business as Usual) 대비 37%를 줄여야 하는 국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고려한다면, 그리고 감축 목표를 강화하라는 국제적인 요구가 예상된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CCS 혹은 BECCS에 대한 연구 개발을 포기할 수는 없다.
현재 국무총리실 산하 녹색성장사업단에서 환경부나 해양수산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의 의견을 모아 국가 CCS 계획을 다시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CCS 전문가는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수송하는 부분에서 한국은 화력발전소와 해양플랜트 건설 경험이 많아 국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미래 먹거리 차원에서도 BECCS에 대한 연구개발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형 화물선이 자체 배출하는 온실가스를 배 위에서 곧바로 포집하는 기술도 채택될 전망인데 국내 조선 산업이 이런 기술을 개발하는 것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산화탄소 빨아들이는 또 다른 기술들
BECCS 외에도 이미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모아들이는 기술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화학적인 방법으로 직접 빨아들이는 DAC(Direct Air Capture)를 들 수 있다. 공기 중에서 0.04%에 불과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것이어서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연간 36억~120억t의 이산화탄소를 제거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방식이지만 조림 사업(A/R, Afforestation/Reforestation)도 연간 40억~120억t을 제거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조림사업의 경우 기온변화에 민감하고, 지구온난화 자체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불확실성이 큰 편이다.
토양에 유기물을 저장하는 방법(SOCS, Soil Organic Carbon Sequestration)도 있다.
나무 등 식물 사체를 땅속에 묻는 방법인데, 연간 이산화탄소 25억~45억t 정도를 해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으나, 이 역시 기온변화에 민감하다.
화학적인 방법으로 미네랄과 이산화탄소를 결합하는 방법(EW/MC, Enhanced Weathering/Mineral Carbonation)인데, 암석 가루를 뿌려 이산화탄소를 중탄산염 형태로 흡수하게 하는 방법이다. 이 경우 7억~36억t가량 해결이 가능하다.
이 밖에도 바이오 숯(Biochar) 형태로 저장하기도 하고, 해양에 철분을 뿌려 식물플랑크톤의 성장을 촉진하는 방법도 있으나 잠재력은 크지 않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