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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축구시장서 쫓겨난 벤투, 명예회복 강한 열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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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6호 22면

[스포츠 오디세이] 벤투 감독 영입 주도한 김판곤 위원장

서울 성북동 음식점 국화정원에서 만난 김판곤 위원장은 홍콩 영화에 나오는 배우 분위기였다. 그는 ’눈이 처져 약해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홍콩 대표팀 감독을 맡은 뒤 퍼머를 했는데 이게 내 스타일이 됐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서울 성북동 음식점 국화정원에서 만난 김판곤 위원장은 홍콩 영화에 나오는 배우 분위기였다. 그는 ’눈이 처져 약해 보인다는 얘기를 듣고 홍콩 대표팀 감독을 맡은 뒤 퍼머를 했는데 이게 내 스타일이 됐다“고 말했다. [신인섭 기자]

한국 축구에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린다. A매치(국가대표팀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은 아이돌 콘서트장 같다. 9,10월 A매치 4경기 연속 매진 속에 암표상이 등장했다.

이승우? 장현수? 필요해야 쓴다 #벤투 감독은 소신 강한 ‘차도남’ #분명한 목표 설정해 선수들과 공유 #우루과이 등 강호 상대 2승2무 순항 #대표팀 철학에 맞는 지도자 물색 #김학범 감독 고생 끝 AG 금에 안도

다 죽어가던 한국 축구에 회생의 우황청심환 역할을 한 건 러시아 월드컵 독일전 승리였다. 8월 아시안게임에서 김학범 감독이 이끄는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금메달을 딴 것도 반전의 포인트였다. 여기에 파울루 벤투(49·포르투갈)가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으면서 우루과이(세계 5위)를 꺾고, 칠레(15위)와 비기며 4경기 무패(2승2무)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김학범 감독을 영입하고, 벤투 감독을 모셔온 사람이 김판곤(49)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겸 국가대표감독선임위원장이다. 홍콩 축구대표팀을 이끌며 ‘홍콩의 히딩크’라 불렸던 김 위원장은 지난해까지 홍콩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올해 초 대한축구협회의 부름을 받은 김 위원장은 잇따라 ‘히트 상품’을 내놓으며 한국 축구 부활의 기반을 닦았다. 가을 볕이 좋았던 지난 17일 서울 성북동에서 김 위원장을 만났다.

팀 뼈대 만들기 위해 손흥민 계속 기용

김학범 감독(左), 벤투 감독(右)

김학범 감독(左), 벤투 감독(右)

벤투 감독의 초반 기세가 좋다.
“우리는 강력한 대표팀을 만들기 위해 사람을 쫓아다니는 게 아니라, 대표팀 철학을 정립하고 거기 맞는 감독을 선임하려고 했다. 그 철학은 ‘능동적 경기 스타일로 경기를 지배하고, 열정적 체력과 긍정적 태도로 승리를 추구한다’다.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기대했던 그림은 나오는 것 같다. 두 번의 캠프(합숙훈련)를 보니 경기에 접근하고 준비하는 게 아주 효율적이고 전문적이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감독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표현·전달하는 게 쉽지는 않다. 벤투는 내가 어떤 축구를 추구하겠다, 어떤 뼈대를 만들겠다는 메시지를 정확히 전달했고, 그것이 팀 내에서 공유되고 있었다. 이번 네 차례 평가전은 내년 1월 아시안컵을 목표로 팀의 뼈대를 만드는 기회였다. 그래서 손흥민(26·토트넘) 같은 선수는 혹사 논란에도 불구하고 계속 경기에 투입한 것이다.”
반면 이탈리아에서 날아온 이승우(20·베로나)는 우루과이·파나마전에서 1분도 뛰지 못했는데.
“그런 점에서 벤투는 매우 냉정하다. 한국적 정서·분위기를 알고 있지만 결정의 근거로 삼지는 않는다.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선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쓴다. 대표적인 게 장현수(27·FC 도쿄)다. 우루과이전 승리 후 ‘장현수는 우리가 특별히 관심 갖고 보호해줘야 한다. 확실히 도움을 줄 선수’라고 못을 박았다. 벤투 감독은 소신이 강한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 스타일이다.”
벤투 이 사람이면 되겠다 싶었던 이유는.
“첫 만남부터 프로페셔널 느낌이 왔다. 인터뷰를 마치 전투하듯이, 자세 딱 잡고 진지하게 했다. 훈련장 상태는 어떤가, 해외 이동할 때 비행기는 전용기인가 등 우리 환경을 조목조목 물어봤다. 다섯 명인 ‘벤투 팀’도 역할이 분명했다. 훈련자료를 달라고 하니 다음날 바로 USB에 담아 왔다. 훈련·경기 자료에서 선수 데이터까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었다. ‘이게 우리 훈련 모듈이다. 빌드업(공격전개)을 위해 이 훈련, 상대 빌드업 차단을 위해 이 훈련을 한다’는 식으로 설명했다.”
‘명장 영입에 실패하니까 중국에서도 쫓겨난 감독을 데려왔다’는 악평이 많았는데.
“내부 회의에서도 그런 걱정이 나왔다. 나는 ‘중국에 아무나 가나. 세계적인 명장만 가지 않나. 중국에서 실패했으니까 우리에게 기회가 온 것 아니겠나’고 말했다. 그는 그리스·브라질·중국 프로팀을 맡아 문화·환경 차이에 따른 고생을 많이 했다. 특히 중국에서 쫓겨난 데 대해 자존심이 무척 상했고, 반드시 반전을 이뤄 명예회복을 하겠다는 열망이 느껴졌다.”
언론 보도 때문에 마음고생이 심했다던데.
“별의별 사람 이름이 ‘내정’ ‘유력’ ‘단독’이란 타이틀로 오르내렸다. 그 중에는 우리가 접촉도 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할릴호지치(전 일본 감독) 같은 이는 몸값 올리려고 언론을 이용하기도 했다. 협상이 잘 진행되던 후보도 관련 기사가 뜨면 조건을 확 올려버린다. 그래서 어느 시점까지는 보도를 자제하는 ‘협조’가 필요하다고 했더니 주위에서 ‘순진한 사람’이라고 하더라. 하하.”

‘다시 옛날로 돌아가야 하나’ 절망도

김 위원장은 아시안게임 기간에 천당과 지옥을 몇 차례나 오갔다. 한국은 예선 2차전 말레이시아에 지면서 ‘고난의 행군’을 시작했다. 8강전(우즈베키스탄)-준결승(베트남)-결승전(일본)까지 첩첩산중을 거쳐야 했다.

김학범 감독 선임 배경은.
“‘대표팀 감독은 이런이런 프로세스를 갖고 뽑겠다’는 내 기자회견 기사를 본 감독님이 ‘나도 되겠구나’ 했던 모양이다. 다음날 출발하는 아르헨티나행 비행기를 취소하고 준비에 들어갔다고 한다. 인터뷰 때 두꺼운 책 세 권 분량의 자료를 갖고 왔다. 무명(無名)의 세월을 견뎠고, 한 번 꺾였지만 지도자로서 능력은 검증된 분이었다. 준비 과정도 더 이상 좋을 수 없었다. 그런데 탈락 위기에 몰리니 ‘저렇게 검증된 감독이 저렇게 준비했는데 안 된다면 누가 할 수 있나. 과거 방식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건가’하는 회의가 밀려왔다. 김 감독도 그것 때문에 더 힘들어하셨다. 어쨌든 시련을 하나하나 극복하고 금메달을 일궈낸 과정이 좋았고, 국민도 이를 통해 한국 축구에서 희망을 본 것 같다.”
모처럼 불붙은 축구 열기를 살려내려면.
“내년 아시안컵과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 재능 있는 선수들이 지속적으로 나오도록 유소년 정책·교육·대회 등을 잘 연구해야 한다. 더 중요한 건 신뢰다. 팬과 축구협회의 신뢰가 형성됐다면 이번 감독 선임 과정이 이처럼 힘들진 않았을 거다. 난 ‘국민 밉상’이 될까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홍콩의 히딩크’ 김판곤 “박항서 감독이 부럽다”

홍콩 대표팀을 맡았을 때 김판곤 감독 모습. [사진 김판곤]

홍콩 대표팀을 맡았을 때 김판곤 감독 모습. [사진 김판곤]

경남 진주 출신인 김판곤 위원장은 마산 창신고와 호남대에서 활약한 미드필더였다. K리그 울산 현대에서도 뛰었지만 왼쪽 정강이뼈가 부러지는 큰 부상으로 7번이나 수술대에 올랐다. 은퇴 전부터 지도자를 준비한 그는 아시아축구연맹(AFC) B라이선스를 딸 때 교육생 중 유일하게 노트북을 갖고 강의실에 들어갔고, 과제는 프린터로 출력해서 냈다. 이걸 눈여겨 본 홍콩 출신 강사가 홍콩에 와서 선수로 더 뛰라고 제안했다.

2000년 7월 홍콩으로 건너간 그는 홍콩 레인저스 감독 겸 선수가 됐다. ‘김판곤 매직’은 꼴찌였던 팀을 다음해 홍콩 프로리그 1라운드 1위에 올려놨다.

한국에 돌아와 K리그 부산 아이파크에서 일하고 있던 그에게 홍콩 사우스차이나 구단에서 찾아왔다. 100년 역사의 명문인 사우스차이나 관계자는 “당신이 가르쳤던 선수들이 국가대표가 되고 우리 팀 주전이 됐다. 그들이 당신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김판곤은 사우스차이나를 리그 우승과 AFC컵 4강으로 이끌었다. 대회 때만 잠시 맡는 파트타임 국가대표 감독으로서 2009년 동아시안컵 2차 예선에서 북한을 꺾고 우승했고, 그해 동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땄다. 2018 러시아 월드컵 2차예선 때는 중국과 마지막까지 최종예선 티켓을 놓고 경쟁했다.

김 위원장은 “K리그 지도자 한류는 내가 원조인데(웃음), 요즘 ‘베트남 히딩크’로 불리는 박항서 감독님 보면 솔직히 부럽다. 기회가 온다면 좀 더 큰 무대에서 역량을 펼쳐보고 싶다”고 말했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 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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