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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식물성 햄버거, 인조고기, 배양육 … 미국의 미래 먹거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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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미국 출장 중 세계은행에 들렀을 때다. 은행 관계자의 추천으로 워싱턴 DC의 한 식당에서 식물로만 만든 패티를 넣은 햄버거를 먹어봤다. 그날 먹은 햄버거는 실제 고기 패티가 들어 있는 햄버거보다 약 25% 정도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었다. 겉모양도 비슷했고 맛도 차이를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햄버거 패티는 식물에서 추출한 단백질에 비타민·아미노산·설탕·헴(heme, 헤모글로빈의 색소) 등을 섞어 만든다. 콩과 식물의 뿌리에서 추출한 헴이 고기 특유의 붉은 색깔과 피 맛을 내는 데 큰 몫을 한단다.

식물로 만든 ‘패티 햄버거’ 시판 중 #인조고기는 미래 단백질 공급원 #물·사료·토지와 온실가스 줄여줘 #한국도 미래 단백질 공급 고민해야

식물성 햄버거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이 워싱턴 DC에만 8곳이고, 미국 전역에는 3000여 곳이나 된다. 채식 햄버거 생산업체인 ‘임파서블 푸드(Impossible Food)’가 출시한 임파서블 버거는 미국 대형 식품유통업체와 계약해 유명 레스토랑에 납품하고 있다. 또한 할리우드 스타인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투자해 화제가 됐던 ‘비욘드 미트(Beyond Meat)’는 미국에서만 1100만 개 이상 팔렸다고 한다. 앞으로 맛·식감·가격의 미묘한 차이는 점점 사라질 것이고 먹을 수 있는 식당의 숫자도 점차 늘어날 것이다.

식물성 패티와 같은 인조고기(인공육)의 출현은 글로벌 농업 관계자들 사이에서 농업의 지속가능성과 혁신 사례로 언급된다. 인조고기는 전통적인 가축 사육 과정을 통하지 않고 생산한 고기를 통칭하는 용어다.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주목받고 있다. 급증하는 육류 소비를 대체해 물·사료·토지 사용을 줄이고 축산으로 인한 환경 부하 및 온실가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앞서 언급한 식물성 고기와 배양육이 포함된다.

특히 배양육은 연구·개발 중인 분야라 다소 생소한 용어일 수 있다. 배양육이란 살아있는 동물의 줄기세포를 채취해 양분을 제공하고 적절한 조건에서 배양해 얻어낸 고기다. 햄버거 패티를 예로 든 식물성 단백질과는 그 원천과 생성 방법에 차이가 있다.

시론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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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양육 산업의 가장 큰 걸림돌은 비용이다. 배양육 100g을 만드는 데 들어간 비용은 37만5000 달러(2013년 기준)나 됐다. 지난해 그 비용이 1986달러까지 떨어졌지만, 전통 축산보다 아직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비용뿐만 아니라 배양육의 상용화까지는 해결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무엇보다 실제 고기와 비교했을 때 맛과 식감에 차이가 있어 사실감이 아직은 결여돼 있다. 또한 가공물에 대한 심리적 거부감과 이물질 오염 우려, 부자연스러움과 신뢰성의 결여 등 소비자의 부정적인 인식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도 세계 도처에서 이미 배양육 개발 연구와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일례로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인 ‘멤피스 미트(Memphis Meat)’는 2015년에 세계 최초로 배양육 미트볼을 선보였고 배양육 개발에 17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 이스라엘의 수퍼 미트는 닭고기 배양육 개발에 300만 달러를 투자했다.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우주선의 장기 식품 개선책을 마련하고 단백질을 공급하기 위해 배양육을 연구하고 있다. 빌 게이츠를 비롯한 세계 유수 기업인과 기업이 배양육 시장에 뛰어드는 등 관심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향후 10년 이내에 배양육의 생산과 공급이 대중화될 것으로 예상한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50년 미래보고서는 세계 인구가 96억 명으로 늘어나 육류를 비롯한 단백질 수요가 지금보다 70% 증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쇠고기나 돼지고기 1kg을 얻으려면 약 15t의 물과 사료 3~7kg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사육에 필요한 토지와 각종 오·폐수 처리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FAO는 축산 부문이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14.5%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미래 먹거리에 대한 발상의 전환과 혁신이 필요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이처럼 미래 먹거리를 위해 나라 밖에서는 급박하게 변화가 진행 중이다. 그런데도 한국은 배양육이 기존 산업 생태계에 미칠 영향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문제에 대한 준비가 아주 미흡한 실정이다. 기존 축산업으로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미래 단백질 수요에 대응해 부족한 단백질 일부를 대체 축산물로 전환해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여기에서 발생하는 기존 산업과의 관계, 생명 윤리적인 문제 등에 대해서도 지속해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정부와 농업인뿐 아니라 산·학·연이 협력해 급격하게 변화하는 미래 먹거리 산업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김창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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