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문재인 대통령이 바티칸시국의 교황청을 방문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평양 초청’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 비핵화와 종전선언, 평화협정 등을 향한 한반도 평화 로드맵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큼직한 가교 역할을 맡게 될지 주목된다. 가톨릭교계 안팎에서는 ‘교황의 방북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보고 있다.
프란치스코, 같은 해 한국도 방문 #휴전선 철조망 면류관 선물 받아 #평소 “사제는 분리의 벽 없애야”
◆분단 현장에 대한 교황의 각별한 관심=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8월 한국을 방문(본지 2014년 1월 7일자 특종 보도)했다. 교황의 방한은 1989년 요한 바오로 2세 이후 25년 만이었다. 그것도 중국과 일본을 제외한 ‘한국 단독 방문’이었다. 한국에서 ‘제6회 아시아청년대회’가 열리긴 했지만 ‘한반도가 분단의 현장’이라는 게 더 근본적인 이유였다는 게 가톨릭 내부 평가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분단 현장 방문은 한국이 처음은 아니었다. 한국 방문 석 달 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찾았다. 당시 교황은 예수 탄생지인 베들레헴에서 이동 중 갑자기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분리장벽’으로 불리는 콘크리트 벽으로 걸어가 손을 얹고 기도했다. ‘분리장벽’은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거주 지역을 제한하기 위해 설치한 장벽이다.
교황은 또 하마스 등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의 테러로 목숨을 잃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위해서도 기도했다. 교황청으로 돌아간 지 한 달도 안 돼 페레스 이스라엘 대통령과 압바스 팔레스타인 수반을 바티칸으로 초청해 함께 평화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방한 당시 명동성당에서 휴전선 철조망으로 만든 가시면류관을 선물로 받았다. 당시 미사에서 “남북한은 한 형제”라는 발언을 일곱 차례나 되풀이했다. 예수회 출신인 교황은 교황이기 전에 사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제가 할 일은 분리와 단절의 벽을 제거하고 형제애의 다리를 놓아 주는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하기도 했다.
◆교황 방북 실현될까=교황의 방북은 바티칸시국과 북한, 다시 말해 국가 대 국가의 일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기부터 ‘교황 방북 추진설’은 있었다. 그러나 당사자인 북한의 공식 초청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번에 ‘북한의 공식 초청 의사’를 들고 교황을 만난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5일 “제가 들은 바로는 교황께서 내년 봄에 북한을 방문하고 싶어한다는 얘기가 있다”며 분위기를 띄웠다.
가톨릭의 수직적 조직 체계상 방북 여부에 대한 교황청의 공식 발표가 있기 전까지 한국 가톨릭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 대신 지난달 평양 정상회담에 동행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김정은 위원장과 만난 자리에서 “남북이 화해와 평화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교황청에 전달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이로 미뤄 김희중 대주교와 유흥식(대전교구장) 주교를 통해 교황 방북의 필요성을 교황청에 전달한 것으로 보인다. 교황청 고위 성직자들과 인맥이 두터운 유 주교는 현재 한국 가톨릭을 대표해 교황청에서 열리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주교 시노드)에 참석 중이다. 유 주교는 11일 현지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종교의 자유 보장 등 풀어야 할 문제를 안고 있으나 교황 방북이 정치적·종교적 고립을 탈피하고 (북한이) 국제사회로 나오는 좋은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며 교황 방북의 실현 가능성을 언급했다.
교황청과 중국의 관계 개선이 교황 방북의 선결 조건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성염 전 교황청 한국대사는 11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금 교황청이 가장 공들이는 게 중국과의 관계 정상화”라며 “주교 임명권까지 어느 정도 양보하며 그걸 추진하는데 성사되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발언했다. 교황 방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성 전 대사는 “김 위원장의 태도가 완전히 개방적으로 변했다”며 “(교황은) 오리라고 본다. 북한의 커밍아웃에 이보다 좋은 기회는 없다”고 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