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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개혁·개방엔 꽃길만 놓인 게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2018.10.16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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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중국 경험에서 본 북한 개혁·개방의 난제

북한이 ‘개혁·개방’을 공식 선포한 것도 아니건만 적잖은 사람들이 그에 장밋빛 미래를 그리고 있다. 하지만 중국의 경험을 되짚어보면 개혁·개방이 걷기 좋은 꽃길만은 아니었음은 분명하다. 북한이 개혁·개방의 길에 들어선다 하더라도 그를 밀고 나가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 풀어야 할 난제가 적지 않다. 어려움을 미리 생각하는 건 현재의 흥을 깨고 비관론을 키우기 위함이 아니다. 미래의 도전을 잘 준비하고, 현재의 단추를 잘 끼우기 위해 남북한 모두 숙고할 문제 몇 가지를 꼽아본다.

중국 개혁·개방의 성공 비결은
과거 실패에 대한 반성에 기초해

핵 개발 성공한 북한 세습 정권이
과거와의 절연 이뤄낼 수 있을까

피까지 부르는 개혁 부작용에도
북한은 포기 않고 전진할 수 있나

개혁·개방은 확신과 집념, 인내력이 있는 지도자를 요구한다. 그래야 굴곡진 변화에 안정감과 지속성을 부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대약진(1958~60년)’으로 피폐해진 중국경제를 추스르는 역할을 맡아 60년대 초 개혁·개방의 일각을 실험했다. 하지만 이내 ‘자본주의의 길을 걷는 자’로 낙인 찍혀 자리에서 쫓겨났다. 이후 중국이 ‘문화대혁명’으로 동란의 10년(1966~76년)을 보내고 그 소용돌이가 멎을 때쯤 다시 등장해 개혁·개방(78년)을 시작했다. 지도자에겐 그런 오뚝이 고집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통념과 달리, 개혁·개방이 한번 접어들면 되돌이킬 수 없는 ‘불가역’의 길은 아니다. 실제 중국도 역행을 반복했다. 하지만 크게 볼 때 중국이 개혁·개방의 길을 지속해서 걸을 수 있었던 건 덩샤오핑의 지도력과 더불어 중국 국민 다수의 과거에 대한 반성에 힘입은 바 컸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커다란 공감대가 역행을 막는 큰 바위 역할을 한 것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덩샤오핑은 마오쩌둥 시대의 청산과 더불어 개혁·개방을 추구했다. ‘공(功) 70%, 과(過) 30%’로 정리해 마오쩌둥에 대한 숭배를 중단시켰다. 한데 이 같은 과거와의 절연이 과연 세습 독재 북한에서도 실천될 수 있을까? 실패와 반성의 반석 위에서 개혁·개방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핵과 미사일의 성공적 개발을 통해 국제적 협상력을 높이고 경제개발에까지 나설 정도로 ‘지난 시절을 위대하게 이끌어온’ 지도자가 과연 그 과거와 절연을 해낼까?

개혁·개방으로 모두가 동시에 잘살게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빈부 격차는상당 기간 벌어질 것이다. 문제는 ‘누가’ 잘살게 되느냐 하는 점이다. 물론 시장 기회를 잘 포착한 기업가정신을 가진 성실한 이가 그들 중에 있겠다. 하지만 중국 개혁·개방의 역사는 성공의 기회가 종전 권력층 주변의 인물들에게 더 크게 주어졌음을 보여준다. 마오쩌둥 시기에 대한 일정한 정리가 있었음에도 기존 당·정부 관료들의 이권 챙기기가 많았다.

그를 미리 알고 예방하는 것이 정의로운 일이겠지만, 기존 체제의 기득권층에게 당근(이권)을 주지 않고선 개혁·개방의 변화에 동참케 할 수 없어 눈감아줬던 것도 사실이다. 그로 인한 ‘관료부패’에 대한 불만은 개혁·개방 후 10년쯤 지난 89년 중국 천안문 광장에서 터져 나왔고 그 자리는 피로 마무리됐다. 북한은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풀 것인가?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발전은 처음부터 고도의 윤리적 고고함을 유지한 채 지속하는 게 아니다. 중국의 개혁·개방 초기 밀수가 성행했다. 시장의 반응은 정부의 시책을 기다리지 않고 앞서 나갔다. 민영기업의 성장이 앞섰던 저장성, 광둥성 등에선 불법적 사(私)금융이 횡행했고 그에 얽힌 유아 납치까지 있었다. 저임 노동과 환경파괴, 배금주의가 만연했다. 당연히 사회주의 계획경제 시절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돌아가고 싶어들 했지만, 더 암울한 과거가 그들을 앞으로 가게 했던 것이다. 시장경제 채택 이후 도덕과 윤리 수준은 ‘J 커브’ 모양으로 적어도 한동안 하락 양상을 보이다 세월과 함께 점차 개선되기 마련이다. 그런 굽이진 길을, 역행을 막아줄 큰 바위를 두지 않은 북한이 뒤돌아보지 않고 꿋꿋이 전진할 수 있을까?

현재 북한의 변화에 낙관적인 인사 중 다수는 인권과 환경, 그리고 민주주의를 높이 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북한이 중국식 개혁·개방을 따를 경우 위에 언급한 가치의 파괴에 대해선 어떤 태도와 행동을 취할 것인가? ‘명(明)’과 ‘암(暗)’ 중에 ‘암’만을 걷어내고 ‘명’만을 취하고자 하겠으나 그것이 과연 얼마나 현실적일까? 적어도 덩샤오핑은 그리할 수 없다고 보아 많은 경우 ‘암’을 지탄 속에서까지 인내했다. 덩샤오핑을 따를 것인가? 도덕적 딜레마가 도전처럼 다가올 수 있다.

북한은 이미 시장경제인가? ‘장마당’ 경제의 비중 증가를 그 긍정의 증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계획이 무너지고 시장(장마당)이 물자를 중개한다고 해서 개혁·개방과 시장경제의 발전이 본궤도에 올랐다고 보기는 어렵다. 시장경제는 ‘시장’과 ‘기업’으로 구성된다. 기업의 발전이 시장경제 발전의 또 다른 한 축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개별 기업들에 상당한 자유가 허용될 때 촉발된다. 민영기업들이 중앙권력의 통제에서 벗어나 뛸 수 있는 공간이 크게 열려야 하는 것이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의 경제발전은 베이징에서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동남 연해 지역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중앙 정권의 통제 속에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공단만으론 시장경제 성장의 동력을 충분히 만들기 어렵다는 뜻이다. 북한이 과거 중국보다 유리한 게 있다면 사회주의의 이론적 지침에서 이미 자유롭다는 점이다. 중국은 개혁·개방 정책이 마르크스-레닌주의 교과서에 위배되는 걸 무마하기 위해 새로운 이론과 원칙 만들기에 바빴다.

북한은 그럴 필요가 없어 같은 부담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민족끼리’ 하는 ‘자주적 노선’이란 막연한 방침으로는 개혁·개방의 숱한 도전을 이겨내며 앞으로 나가기에 부족함이 클 것이다. 더불어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로부터 자신을 괴리시키고 폐쇄성을 키우는 함정도 갖고 있다.

중국이 개혁·개방을 선포하고 10년도 채 되지 않은 86년에 베트남도 ‘도이모이’란 이름의 베트남식 개혁·개방을 시작했다. 하지만 베트남(2017년 1인당 GDP 2300달러)은 세계와 접궤(接軌)를 신속히 이뤄내지 못해 성장은 한동안 정체되고 앞서가는 중국(8800달러)과의 격차도 벌어졌다.

역사에 기록된 이런 난제들을 피하기 위해 북한은 ‘중국식’도 ‘베트남식’도 아닌 다른 개혁·개방을 하겠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로써 그 많은 골칫거리가 실제 사라지는 건 아니다. 도전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 해법은 지금부터 숙고해야 한다. 마음가짐 또한 더욱 단단해져야 할 것이다.

◆은종학
서울대 국제경제학과 졸업. 중국 칭화대 박사.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중국팀 부연구위원, LG경제연구원 중국팀 선임연구원 역임. 중국의 경제와 과학기술, 혁신이론을 연구하고 있다.

은종학 국민대 중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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