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헌 전 차장 소환, 수사 2라운드 돌입
‘재판거래 및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2라운드가 시작됐다. 15일 오전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을 소환하면서다.
지금까지의 검찰 수사가 증거수집을 위한 ‘다지기 수사’였다면 앞으로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정점으로 하는 ‘윗선 수사’가 본격화할 전망이다. 서울중앙지검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은 지난 4개월간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증거물 분석과 함께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법관 50여명을 소환조사했다.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실체를 규명할 ‘키맨’으로 꼽힌다. 그는 양 전 대법원장의 지시를 받아 각종 사법행정 문건 작성 등 실무를 총괄했고, 진행 상황을 다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보고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특히 법원행정처가 각종 재판과 소송의 결론을 박근혜 정부 의중에 맞게 유도했다는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과 관련 임 전 차장이 청와대와 각 정부부처를 드나들며 중간과정을 조율한 것으로 검찰은 보고 있다.
"범죄 사실 '수두룩'"…직권남용 입증이 핵심
검찰 수사에 따르면 임 전 차장의 범죄 사실은 최대 40건에 달한다.
검찰은 청와대와 거래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개별 재판을 모두 별개의 범죄 사실로 규정해 수사 중이다. 40건의 범죄사실을 관통하는 핵심 혐의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다. 상고법원제 추진 등 법원의 현안을 위해 청와대와 재판을 거래하고 사법행정권을 남용했다는 의혹 자체가 직권남용을 제외하곤 법률에 근거해 처벌하기 어려운 탓이다.
문제는 직권남용의 경우 재판 단계에서 유죄를 입증하기 어렵단 점이다. 특히 재판거래나 법관사찰 등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사건 대부분이 보고서 등 문서 형태로만 존재할 뿐 실제 실행됐다는 물증이 없는 상태다. 익명을 요청한 검사장 출신의 한 변호사는 “미실행 문건을 작성한 것만으로 직권남용죄를 적용해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고 본다”며 “양승태 코트의 사법행정권 남용이 부도덕하고 잘못된 일이라 해도 이를 법률에 근거해 처벌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라고 말했다.
연이어 무죄 판결 나는 '직권남용'
실제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이르기까지 검찰은 직권남용 혐의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했지만 최근 재판에선 법원의 무죄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은 전국경제인연합회에 특정 시민단체를 지원해달라고 요구한 의혹을, 최경환 전 의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에 의원실 인턴 직원을 채용하라고 압박한 의혹을 받았는데 법원은 직권남용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다스의 미국 내 소송을 지원하고 차명재산의 상속세 절감 방안을 검토하는데 공무원들을 도입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았지만 무죄 판결이 내려졌다. 재판부는 “대통령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가 될 수는 있으나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가 성립하지는 않는다”고 봤다. 대통령으로서 잘못된 일을 했을지언정 이를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순 없다는 의미다.
"오해가 있는 부분 적극 해명하겠다"
검찰에 소환된 임 전 차장 역시 직권남용죄를 입증하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적극 활용해 방어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차장은 이날 검찰에 출석하며 “국민께 죄송하다”면서도 “제기된 의혹 중 오해가 있는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해명하겠다”고 말했다.
임 전 차장은 재판거래 의혹에 대해 검찰에서 “청와대 등 정부에 사법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형성하기 위해 선고된 대법원 판결 중 결과적으로 국정운영에 유리하게 작용하는 사례만 추출해 제시했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고 한다.
또 법관 사찰에 대해선 “법관의 돌출행동으로 사법부의 불신을 야기하고 국회 등에서 논란이 생길 것을 대비한 사전 대응 차원의 문건일 뿐 인사나 감찰 목적에 사용한 적은 없다”는 논리로 직권남용 혐의에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임 전 차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과 관련 핵심 인물인데다 범죄 사실이 방대해 이날 조사 외에도 2~3차례의 추가 소환조사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임 전 차장에 대한 소환조사는 향후 수사방향과 속도를 좌우할 만큼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며 “조사가 간단히 끝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