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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스포츠 대통령은 누군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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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정제원 기자 중앙일보 문화스포츠디렉터
정제원 스포츠팀장

정제원 스포츠팀장

전 세계 스포츠의 대통령은 토마스 바흐다. 독일 출신인 그는 2013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 남자 펜싱 플뢰레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낸 선수 출신이다. 대학에서 법과 정치학을 전공한 덕분에 은퇴 이후엔 변호사와 스포츠 행정가로 활동했다.

김운용·이건희·박용성 이후 개인 자격 IOC 위원 명맥 끊겨 #국제 무대에 영향력 발휘할 수 있는 스포츠 외교관 육성해야

바흐가 전 세계 스포츠 대통령으로 불리는 이유는 IOC의 권한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올림픽과 관련한 모든 사항을 IOC가 결정한다. 올림픽 개최지를 정하는 건 물론 출전 종목과 올림픽을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를 결정할 권리를 갖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2032년 올림픽 남북 공동 유치 의사를 밝혔다. 뜻대로 되면 한국은 1988년에 이어 두 번째로 여름 올림픽을 열게 된다. 그러나 IOC 위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다면 공염불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스포츠 외교를 짊어질 스포츠 대통령은 누군가. 한국의 IOC 위원은 현재 2004년 아테네 올림픽 탁구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유승민 선수위원 한 명뿐이다. 운동선수 출신이 아닌 개인 자격의 IOC 위원은 한 명도 없다. 1996년 IOC 위원에 선임됐던 이건희 삼성 회장은 2017년 8월 건강상의 이유를 들어 IOC 위원직에서 사퇴했다. 후안 사마란치 IOC 위원장과 함께 세계 스포츠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했던 김운용 전 위원도 지난해 타계했다. 국제유도연맹(IFJ) 회장 출신인 박용성 전 위원도 물러난 지 오래다. 2022년 겨울 올림픽을 여는 중국은 IOC 위원이 3명이나 된다. 또 미국·캐나다·프랑스·스위스·이탈리아 등도 각각 3명의 IOC 위원을 보유하고 있다. 일본은 1명뿐이었는데 최근 2명으로 늘었다.

2018년 현재 IOC 현역위원은 103명이다. IOC 위원을 배출한 나라는 72개국이다. 정원은 115명인데 꼭 총원을 채우진 않는다. 자격별로 살펴보면 개인 자격이 70명, 선수위원은 15명이다. 또 국제경기단체의 대표가 15명, 각국 올림픽위원장 중 15명이 IOC 위원이 될 수 있다. 임기는 1999년 이전에 선출된 위원은 80세까지, 그 이후는 70세까지다. 선수위원의 임기는 4~8년이다.

지난 2월 평창 겨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한국은 IOC 위원을 배출하기 위해 그동안 물밑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IOC 위원이라는 게 우리가 하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다. 영향력이 센 만큼 특혜도 많은 IOC 위원이 되기 위해선 그에 걸맞은 자격을 갖춰야 한다. 무엇보다도 교양과 스포츠에 대한 경험이 풍부해야 하고, 2~3개 정도의 외국어 구사 능력도 갖춰야 한다. 리더십과 경륜도 필요하다. 그래서 IOC 위원은 급여가 없는 명예직인데도 세계 어디를 가든 국빈 대우를 받는다.

지난 6월 화장품 제조업체인 아모레퍼시픽의 서경배 회장이 스위스 로잔의 IOC 본부를 찾아갔다. 어렵사리 바흐 위원장을 만나 IOC 위원이 되고 싶다는 의중을 밝혔지만 안타깝게도 거절당했다. IOC가 올림픽은 물론 국제 스포츠계에 기여한 바가 없는 화장품 업체의 회장을 IOC 위원으로 뽑아줄 리가 만무했다. 바른미래당 이동섭 의원은 “청와대 실세가 국내 스포츠계는 물론 국제 스포츠 분야에도 전문성이 없는 인물을 IOC 위원으로 추천했다가 망신만 당했다. 서경배 회장을 IOC 위원으로 추천하자 일부 IOC 위원들은 굉장히 당혹스러워했다”고 주장했다.

IOC와 국제 스포츠계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그 문턱을 넘기 위해선 세계 스포츠 외교 무대에서 꾸준하게 활동할 만한 인물을 키워야 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스포츠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을 밀어붙였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IOC 위원도 정부 산하기관처럼 낙하산으로 내려보내면 될 줄 알았을까. 청와대가 밀면 IOC도 무조건 오케이 할 줄 알았나 보다. 아직도 체육을 정치의 시녀쯤으로 여기는 게 문제다. 스포츠를 만만하게 보고 덤벼들었다가 망한 사례는 최순실 한 명으로 족하다.

정제원 스포츠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