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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에 미친 두 남자 김창호·임일진, 30년 함께하고 한날 가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네팔 구르자히말 원정대를 이끌다 사고로 숨진 김창호(49·노스페이스) 대장은 한국 산악계에서 ‘문무를 겸비한 산악인’으로 통한다. 해병대원 시절 3분30초 잠수 기록을 세웠다. 또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정보를 보유한 산악인으로 꼽힐 만큼 산악 연구에도 매진했다. 그래서 “2000년대 이후 한국 히말라야 원정대는 정보가 많은 김창호의 외장하드에서 시작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지난 2011년 고 박영석 대장의 안나푸르나 남벽 신루트 원정도 김창호의 사무실 컴퓨터 화면을 보며 시작됐다.

지난달 28일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가 네팔로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임일진 감독, 유영직 대원,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사진 원정대 제공]

지난달 28일 '2018 코리안웨이 구르자히말' 원정대가 네팔로 떠나기 직전 인천공항에서 기념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했다. 왼쪽부터 임일진 감독, 유영직 대원, 김창호 대장, 이재훈 대원. [사진 원정대 제공]

기인(奇人) 김창호에 관한 스토리는 무궁무진하다. 홀로 2년여 동안 파키스탄 카라코람 빙하를 탐사하며 ‘히든 크레바스(보이지 않는 빙하 속 틈)’에 빠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긴 장대를 양손에 쥐고 걸었다는 일, 빙하에서 강도를 만나 총에 맞아 죽을 뻔 했지만 이후 파키스탄 법정에서 이들을 용서했다는 일화 등이다.

김 대장은 2013년 아시아 최초 8000m 14좌 무산소 완등으로 ‘산악 영웅’의 길을 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하지만 ‘코리안웨이’라는 김창호의 길을 택했다. 산의 높이를 따지지 않고 알파인 스타일(인공산소를 쓰지 않는 거벽 등반)로 자신만의 선을 그리는 일, 즉 신루트 등반이다. 그리고 지난 2016년 강가푸르나(7455m) 남벽에 이어 지난해 인도 다람수라(6446m)·팝수라(6451m) 남벽에 신루트를 냈다. 하지만 세 번째 길목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

방송 출연이나 등반 서적 출판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김 대장은 평소 “나는 지금 산을 가고 있는 사람이다. 뒤돌아보면 죽는다”고 말했다. “산 외에 다른 것에 한눈을 팔지 않겠다”는 자기신념의 표출이었다.

함께 사고를 당한 임일진(49·한국외대 산악부 OB) 감독은 클라이머이자 산악 다큐멘터리 제작자다. 지난 2013년 김 대장과 함께 한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카메라를 들고 캠프4(8000m)까지 등반하는 것은 물론 캠프 매니저 역할까지 겸했다. 당시 사망 전 고 서성호 대원에게 얼음을 깨 물을 끓여주는 살신성인의 인간미를 보이기도 했다. 다큐 감독으로선 2008년 ‘벽’으로 아시아 최초 이탈리아 트렌토국제산악영화제 특별상을 받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임 감독은 작품으로 산악계의 아픈 곳을 꼬집기도 했다. 지난 2016년 울주산악영화제 개막작으로 선보인 ‘알피니스트’가 대표적이다. 영화는 정상 등정의 환희 뒤에 숨은 이면을 들춘다. 산악인 박명원 씨는 “외골수처럼 철저하게 산과 산악 다큐를 파고든 산악인”이라고 말했다. 김 대장과 임 감독은 지난 1988년 대학 산악부 1년 시절에 처음 만나 전 세계 산을 함께 누빈 30년 지기다.

유영직(51)·이재훈(24) 대원은 한국 산악계에서 몇 안 되는 알파인스타일 등반가였다. 특히 이 대원은 지난해 다람수라·팝수라 원정에도 함께 한 차세대 주자였다. 또 산악인이자 기업인인 정준모 씨는 이번 임 감독의 다큐 제작에 사비로 3000만원을 후원하고, 후배를 격려하기 위해 베이스캠프를 찾았다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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