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코파일] 하얀색 동물이면 모두 다 '알비노'일까

중앙일보

입력

알비노 너구리 [중앙포토]

알비노 너구리 [중앙포토]

알비니즘(Albinism)과 류시즘(Leucism)

희귀한 흰 참새나 흰 고라니, 흰 사슴 등이 발견되면 화제가 된다.
지난달 25일에도 설악산국립공원에서 흰 다람쥐가 발견됐다. 언론에서는 멜라닌 색소가 없는 알비노(Albino) 동물이 모처럼 발견됐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지난 달 25일 강원 속초시 설악산국립공원 내 설악폭포 인근에서 온몸이 흰색을 띤 다람쥐가 발견됐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이 다람쥐가 멜라닌 색소 결핍증인 알비노(Albino) 현상으로 몸이 하얗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비노가 아닌 류시즘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진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

지난 달 25일 강원 속초시 설악산국립공원 내 설악폭포 인근에서 온몸이 흰색을 띤 다람쥐가 발견됐다.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이 다람쥐가 멜라닌 색소 결핍증인 알비노(Albino) 현상으로 몸이 하얗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알비노가 아닌 류시즘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사진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 ]

하지만 조류생태학자인 최순규 박사는 “다람쥐가 흰색인 것은 알비노라서가 아니라 류시즘(leucism)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동물이 흰색을 띠고 있다고 해서 다 알비노가 아니라는 말이다.

최 박사는 “동물의 경우 눈 색깔을 보면 차이가 금방 드러난다. 눈 색깔이 붉거나 분홍색이면 알비노, 다른 개체들처럼 정상적인 눈 색깔을 보이면 류시즘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알비노와 류시즘의 이런 차이는 어떻게 해서 나타나는 것일까.

알비노 고릴라로 알려졌지만 짙은 색인 눈 색깔로 보면 류시즘 탓인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알비노 고릴라로 알려졌지만 짙은 색인 눈 색깔로 보면 류시즘 탓인 것으로 보인다. [중앙포토]

알비노,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

알비노 원숭이. 흰 털에 빨간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중앙포토]

알비노 원숭이. 흰 털에 빨간 눈동자가 인상적이다. [중앙포토]

먼저 알비노, 즉 알비니즘(albinism, 백색증)의 경우 유전자에 생긴 돌연변이 때문에 나타난다. 선천성이라는 얘기다.

멜라닌 색소는 멜라노사이트(melanocyte)라는 멜라닌 생성 세포에서 만들어진다.
이때 멜라닌을 생성에 간여하는 여러 효소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발생, 효소가 원래 기능을 못하게 되면 멜라닌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표적인 게 티로시나아제(tyrosinase) 효소다. 아미노산의 일종인 타이로신을 멜라닌으로 만드는 데 간여하는 이 효소에 문제가 생기면 멜라닌이 만들어지지 않고 알비노가 된다.
다른 색소의 생성은 문제가 없는데 멜라닌 색소 생성만 안 되는 것이 알비노다.

알비노 달팽이 [중앙포토]

알비노 달팽이 [중앙포토]

알비노를 일으키는 유전자는 열성이다.
우성이 아니라 열성이란 의미는 23쌍의 염색체를 가진 사람이 짝을 이룬 두 염색체 중 하나에 정상적인 유전자가 있으면 열성 유전자 특성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알비노가 되려면 부모 양쪽 모두로부터 돌연변이 유전자를 물려받아야 한다.
알비노가 근친 교배한 동물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은 이유다.

알비노의 경우 눈동자가 붉은색이나 분홍색을 띠는데, 이는 홍채나 망막 색소 상피(RPE)에 있어야 할 멜라닌이 없어서 그 아래 눈동자 혈관 색깔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류시즘, 조직 분화 과정에 이상

지난달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니다 강변에서 발견된 흰색 뉴트리아. 눈 색깔은 검은색이어서 알비니즘이라기 보다는 류시즘 탓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지난달 26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인근 니다 강변에서 발견된 흰색 뉴트리아. 눈 색깔은 검은색이어서 알비니즘이라기 보다는 류시즘 탓으로 보인다. [AP=연합뉴스]

류시즘은 유전자 자체 탓이 아니라 수정란이 세포 분열을 하고 조직 분화를 하는 과정에서 뒤늦게 나타난다.
척추동물의 발달 과정에서 신경릉(神經陵, neural crest)으로부터 색소 세포가 피부·모발·깃털 등으로 이동하거나 분화할 때 문제가 생긴 경우다.

그래서 필요한 곳에 색소 세포가 없는 경우, 즉 몸 표면의 전체 혹은 일부에 색소 세포가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몸 전체에 색소가 아예 없거나 부분적으로 색소가 나타난다.

색소 세포 자체가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생긴 경우이기 때문에 류시즘에서는 멜라닌뿐만 아니라 디른 색소도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

류시즘의 경우 눈동자 색깔은 대부분 정상이다. 눈동자 색소와 피부 색소의 출발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류시즘 블랙버드 [중앙포토]

류시즘 블랙버드 [중앙포토]

피부나 깃털 등의 색소 세포가 신경릉에서 분화되는 것과는 달리 망막색소상피(RPE)의 멜라닌 생성 세포는 신경관(神經管, neural tube)의 외부 주머니에서 시작된다. 신경관에서 안배(眼杯, optic cup)가 만들어지고, 망막도 만들어진다.

몸 전체에 류시즘 현상이 나타나 색소가 없더라도, 눈동자에서는 색소가 정상적으로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생존을 위협하는 알비니즘과 류시즘

알비노 기니아피그 [중앙포토]

알비노 기니아피그 [중앙포토]

알비니즘이든 사람들은 흰 동물을 보고 길조(吉兆)라고 하지만, 자연 생태계에서는 생존에 불리하게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선 하얀 색깔을 가진 동물은 눈에 잘 띈다. 포식자로부터 몸을 숨기는 데 불리하다.
또, 먹이 사냥을 하는 경우에도 먹잇감이 접근을 쉽게 알아채고 달아날 수 있다.

눈에 띄는 색깔을 하면 동료들로부터 추방당할 수도 있고, 짝짓기하는 데도 불리할 수 있다.

알비노의 경우 다른 유전적인 결함도 동시에 갖고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생존율이 떨어질 수 있다.

실제로 알비노 쥐나 고양이의 경우 청각에도 문제가 있음이 확인되기도 한다.

류시즘을 보이고 있는 키위. [중앙포토]

류시즘을 보이고 있는 키위. [중앙포토]

흰색은 태양 자외선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데 불리하다. 멜라닌이 든 멜라닌소체(melanosme)는 강한 자외선을 막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알비노의 비극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인 알비노 흑인 어린이들이 외출을 위해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고 있다. 이들은 알비노 팔다리에 마법의 힘이 있다고 믿는 이들의 공격을 받아 팔 다리를 잃었다. [AP=연합뉴스]

아프리카 탄자니아 출신인 알비노 흑인 어린이들이 외출을 위해 의수와 의족을 착용하고 있다. 이들은 알비노 팔다리에 마법의 힘이 있다고 믿는 이들의 공격을 받아 팔 다리를 잃었다. [AP=연합뉴스]

알비노는 사람에게도 나타난다. 종족과 상관없이 세계적으로 약 1만7000명당 한 명꼴로 태어나지만,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남쪽 지역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나타난다.

부룬디·탄자니아 등에서는 알비노로 태어난 사람들이 살해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이 지역 사람들은 알비노의 팔·다리·머리카락·생식기 등을 제물로 바치면 연애·건강·사업의 운이 잘 풀린다고 믿고 있다.
알비노의 신체를 먹으면 에이즈가 낫는다는 끔찍한 미신도 있다.

알비노를 납치·살해하고 신체를 잘라 매매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알비노들은 아예 보호소에서 경찰의 보호를 받기도 한다.

지난 6월 13일 세계 알비니즘 인식의 날을 맞아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알비노인 드뉴즈드 캥거(오른쪽)가 언니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6월 13일 세계 알비니즘 인식의 날을 맞아 아이티 포르토프랭스에서 알비노인 드뉴즈드 캥거(오른쪽)가 언니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멜라닌이 없는 알비노는 시력이 약하다.
자외선에 노출되면 쉽게 화상을 입는 데다 피부암도 잘 걸린다.
팔자소관이라지만 원치 않은 유전자로 온갖 고통을 겪는 알비노가 생명의 위협까지 받는다는 사실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이자벨리즘, 더러운 속옷 색깔

이자벨리즘을 보이는 펭귄. [중앙포토]

이자벨리즘을 보이는 펭귄. [중앙포토]

이자벨리즘(Isabellism)이란 말과 같은 동물의 털이나 새 깃털에 밝은 회색 노란색, 엷은 황갈색, 엷은 크림 갈색 등이 나타나는 경우를 말한다. 1600년대에 이런 색깔을 ‘이자벨라 색(Isabelline)’이라 부른 데서 연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자벨라란 단어가 색깔 이름이 된 것은 불확실하지만, 전설에 뿌리를 두고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1601년 7월 오스텐드 공성전이 벌어지자 스페인의 공주인 인판타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Infanta Isabella Clara Eugenia of Spain)는 남편인 오스트리아의 알버트 대공의 승리를 재촉하기 위해 선언을 한다.
오스텐드를 점령하고 오스트리아 지역을 통일하기 전까지는 속옷을 벗거나 갈아입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공성전은 3년이 걸렸고, 긴 시간 동안 바래버린 속옷을 딴 색깔 이름이 등장했다는 것이다.

이 전설의 배경이 된 시기보다 ‘이자벨라색(Isabelline)’이란 단어가 먼저 사용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스페인의 공주인 인판타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

스페인의 공주인 인판타 이사벨라 클라라 에우헤니아

그래서 15세기 후반 스페인의 이사벨 1세 때 아라곤의 페르난도 2세가 그라나다를 공격한 상황에서 유래했다는 주장도 있다.
당시 8개월 동안 이어진 공성전에서 오랫동안 갈아입지 않은 이사벨의 속옷에서 유래됐다는 것이다.

이자벨리즘의 경우 펭귄에서도 드물게 나타나는데, 무리에서 쫓겨나더라도 야생에서 생존하는 데는 별 지장이 없는 것으로 관찰됐다.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