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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절대적 종신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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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남중 기자 중앙일보
김남중 논설위원

김남중 논설위원

1996년 개봉한 미국 영화 ‘데드맨 워킹’과 2006년 개봉한 한국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두 영화는 책이 원작인 ‘대박’ 영화라는 것 말고도 공통점이 많다. 사형수와 그를 마지막 순간까지 돌본 수녀의 이야기를 통해 사형제의 모순을 다뤘다. 등장 수녀가 모두 실존인물이다. 전자는 세계를 돌며 생명의 존엄성을 호소한 ‘사형제 폐지 활동가’ 헬렌 프리진 수녀, 후자는 ‘사형수의 대모’ 조성애 수녀다.

30년 넘게 사형제 폐지 운동을 벌여 온 두 수녀는 2007년 서울에서 처음 만나 대담했다. 그 자리에서 ‘또 하나의 모방 살인’인 사형제의 비인간성을 고발하고 종신형 대체를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희망을 의미하지만 죽음은 곧 절망이다. 사형보다는 최악의 경우 감형이 없는 종신형 쪽으로 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게 요지다.

사형제 존폐 논쟁은 인류의 해묵은 과제다. 18세기 계몽시대 이후 250여 년간 철학자·법률가·종교인 간 찬반 논란이 이어졌다. 칸트와 루소는 사형제 찬성론자다. 공적 정의를 실현하는 수단이란 이유에서다. 이탈리아 형법학자 베카리아는 사형제 폐지론자다. 사형은 법이 스스로 저지르는 살인죄라고 봤다. 그는 종신형을 주장했다. 심지어 교황들도 생각이 엇갈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 선출 전부터 사형제 폐지 운동에 참여했다. 교황청이 “사형은 인간 불가침성과 존엄에 대한 공격이므로 허용될 수 없다”고 교리를 개정한 배경이다. 그러나 1950년대까지 재위한 비오 12세 전임 교황은 “공권력이 죗값으로 사형수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고 했다.

대체 형벌로 ‘절대적 종신형’이 대두되면서 국내에서도 사형제 폐지 논란이 다시 불거질 모양이다. 국가인권위원회가 그제 사면이나 가석방이 없는 절대적 종신형 같은 대체 형벌을 도입할 경우 사형제 폐지에 동의하는 비율이 66.9%로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았다. 문제는 단순히 사형제 폐지 찬반을 물었을 때는 ‘당장 폐지’ 4.4%, ‘향후 폐지’ 15.9%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사형제 존폐 논란의 귀착지가 여전히 가늠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살인마 유영철에게 모친과 아내, 4대 독자를 잃은 고모씨가 프리진 수녀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이 있다. “용서하니 마음이 편해졌다. 법이 오판해 만 명에 하나라도 무고한 사람이 죽으면 안 되기 때문에 사형제는 폐지하는 게 옳다.” 이 말에서 답을 찾을 수는 없을까. 국민 열에 일곱이 절대적 종신형이라면 사형을 대신해도 좋다지 않는가.

김남중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