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석 논설위원이 간다] 선동열 국정감사 안과 밖
국회 본관 506호실에 10일 가장 많은 카메라가 몰렸다.
떠나는 선동열에 소감 물으니 #쓴웃음 지으며 “제가 뭐라 하겠나요” #김성한 “4번 타자로 팀 만들면 우승? #의원들 인기 노린 스타 망신주기” #우상호도 “외국서 보면 웃길 얘기” #논란 불구 병역특례제 수술 촉발 #김수민은 “불투명한 병역특례 #입대할 청년들 박탈감 생각해야”
이날 선동열(56) 야구국가대표팀 감독이 국감 증인으로 나왔다.
카메라 앞의 선 감독은 뚱한 표정이었다. 선수 시절 '무등산 폭격기'(해태 타이거즈 시절), '나고야의 태양'(일본 프로야구 주니치 드래건스 시절), '국보급 투수'로 불리던 야구계의 레전드에게선 위용과 카리스마를 찾아볼 수 없었다. 마운드에선 시선을 한몸에 받던 그였지만 이날은 일곱명의 증인들 틈에 끼어 앉아 의원들이 앞으로 나오라면 나오고, 일어서라면 일어서고, 앉으라면 앉아야 했다.
선동열 감독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 사람은 세 명이다.
맨 처음 김수민 바른미래당 의원이 움직였다. 국회 최연소인 32세의 여성, 청년비례대표 의원이다. 며칠 뒤 손혜원 민주당 의원, 조경태 자유한국당 의원까지 손을 들어 세 명이 그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지난 8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당시의 LG 오지환 선수 선발 문제 때문이었다.
선 감독의 증인채택에 대해선 상임위 내부에도 이견이 있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감 전 통화에서 “이미 우승을 했고, 부정부패한 사람도 아니고,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야구인인데 축하는 못 해줄 망정 정치권이 타박하는 건 외국에서 보면 웃길 얘기”라고 했다.
우 의원에 이어 김수민 의원과 통화했다. 아직은 30대 초반인 김 의원이 선동열이란 이름 석 자를 들어봤을까 궁금했다.
- 선동열이라는 이름을 아셨나.
- “이름은 당연히 알죠. 다만 그 시대에 태어나서 즐긴 사람은 아니니까...그냥 약간 서태지급이라는 정도로만 생각했습니다.”
- 야구는 좋아하시는지.
- “아주 좋아하진 않고, 야구장 가서 치킨 먹으면서 ‘선수송’ 부르는 정도입니다.”
- 그런데 어떤 생각에서 부르신 건지.
- “저는 청년의원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청년으로 살아가기에 여러가지 힘든 부분이 있는데요, 그중에서도 핵심이 ‘공정’이라 생각합니다. 선 감독님이 선발한 오지환 선수가 병역특례를 받게 됐는데, (특례를 못 받는) 청년과 부모세대의 상대적 박탈감이 큽니다. 그래서 불투명한 병역미필자의 대표선발 관행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그런 관행이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증인 신청한 겁니다.”
실제로 김 의원은 국감 당일 ‘공정’(公正)이란 키워드에 초점을 맞췄다.
논란의 중심인 오지환 선수는 28세다. 경찰청과 상무에 지원할 수 있는 나이는 만 27세까지인데, 작년에 지원을 하지 않았다. 축구 대표팀 황인범 선수는 경찰청 소속으로 대표팀에 선발돼 금메달을 따내는 데 기여한 뒤 조기 전역을 명받았다. 만약 오 선수도 그랬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텐데 1년 뒤 대표팀에 선발될 줄 어떻게 알았는지 기회를 차버렸다. 선 감독은 병역논란에 휘말린 그를 뽑으면서 논란을 자초했다.
그래서 김 의원은 ▶선 감독이 오 선수가 소속된 LG 구단, 그리고 구단의 이익을 대변하는 KBO(한국프로야구위원회)의 청탁을 받은 게 아니냐 ▶같은 값이면 군 미필자를 뽑는다는 잘못된 관행 때문에 오 선수와 경쟁한 김선빈ㆍ김재호ㆍ하주석 선수(이상 모두 군필자)를 탈락시킨 것 아니냐는 취지로 추궁했다.
그러나 선 감독은 “청탁은 없었고, 컨디션이 가장 좋은 (오지환) 선수를 뽑았을 뿐”이라며 “(그의) 병역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고 강조했다. 결국 이 문제는 끝까지 평행선을 달렸다.
조경태 의원은 선 감독에게 병역 특례 제도의 폐지에 대한 의견을 주로 물었다. 선 감독은 “제도에 따르겠다”고 했다.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국감에서 ▶병역특례 폐지 ▶특례혜택을 받은 이에게 ‘국방세’를 물리는 방안 ▶누적점수제를 도입해 특례요건을 강화하는 안 ▶입영 연령을 늦추는 안 등을 소개한 뒤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오지환 선발이 촉발한 논란이 결국 병역특례제도의 수술로 이어지게 됐다.
손혜원 의원은 “선 감독을 불러달라는 1200만 야구팬들의 빗발치는 요청이 있었다”거나 “야구 관객이 선 감독 때문에 20%나 줄었다”는, 근거 없는 주장을 내놓았다. 그러면서 “사과하시든지 사퇴하시라”고 압박했다. 이미 “시대적 흐름과 청년들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은 죄송하다”고 수차 사과했는데도 말이다. 이번 문제와 무슨 상관인지 선 감독의 연봉과 판공비까지 따져 물었다. 선 감독이 “연봉 2억원에 판공비가 포함됐다”고 하는데도 손 의원은 “KBO에서 제공하는 판공비가 무제한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이에 선 감독이 기막히다는 듯 웃음을 보이기도 했다.
이날 증인신문은 두 시간 만에 끝났다. 국감장을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가던 선 감독과 국회 엘리베이터 안에서 마주쳤다.
- 의원들의 질의가 어땠나.
- “….”
답변은 안 했지만, 그는 표가 나게 쓴웃음을 지었다.
- 국감 증인으로 나온 소감이 어떤지.
- “(곰곰 생각하더니) 제가 뭐라고 하겠습니까.”
선 감독에겐 이날이 굴욕의 날이었겠으나 이제 공정의 영역이 점점 넓어지고, 기준은 엄격해지고 있다는 점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야구 국가대표팀은 모두 24명이다. 24명 중 23명을 제대로 선발했다 해도 단 한 명만 불공정한 낌새가 나면 여론이 가만있지 않는다. '기회'와 '과정'에 의혹이 있는데, '결과'만 좋았다고 덮고 가는 시대는 지났다.
공정은 어쩌면 올해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화두 중 하나다. 선동열 국감도 그런 점에서 공정이란 가치를 세우는 데 치른 일종의 ‘공정비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