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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확산하는 웰다잉 존엄사 … 현실에 맞게 규정 손질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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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인간의 오복 중 하나를 고종명(考終命)이라고 한다. 편안하고 깔끔하게 세상과 이별하는 웰다잉(well dying)이다. 100세 시대를 일컫는 ‘호모 헌드레드’ 시대로 향하고 있지만 고종명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장기간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다가 허무하게 생을 마감하는 이가 많다. 연간 5만 명에 이른다. 가족도, 환자도 고통스럽다.

시행 8개월 2만 명 연명의료 중단 #100세 시대 ‘아름다운 이별’ 필수 #절차 간소화하고 인프라 확충해야

보건복지부가 올해 2월 시행한 ‘연명의료 결정법(일명 존엄사법)’은 이런 고민에서 출발했다. 환자나 가족의 희망에 따라 연명치료 선택과 결정을 합법화한 것이다. 대상은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부착,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등 네 가지다. 그런데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말기 암 등으로 회복 가능성이 없어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거부한 이들이 8개월 만에 2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시행 초 3200여 명보다 7배 가까이로 늘었다.

말기 전립샘 환자인 85세 김병국 할아버지는 “인간답게 살다 가겠다”며 치료를 중단했다. 지난 8월에는 ‘생전(生前) 장례식’도 열었다. “죽은 다음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며 평상복을 입고 지인 50명과 즐겁게 춤추며 이별 파티를 했다. 지난해 12월 신문에 생전 부고장 광고를 내고 생전 장례식을 열어 화제를 불렀던 일본 건설기계업체 고마쓰의 인자키 사토루(安崎曉) 전 사장의 ‘한국판’이었다.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해 보니 열 명 중 일곱 명이 생전 장례식에 긍정적이었다. 연명치료를 하지 않고 지난 5월 타계한 구본무 LG 회장의 울림도 컸다. 아름다운 생의 이별법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웰다잉 문화가 점차 확산하고는 있지만 갈 길은 멀다. 현실과 동떨어진 까다롭고 복잡한 규정부터 걸림돌이다. 당장 연명치료 중단에 필요한 가족 동의 범위 간소화가 시급하다. 미성년자를 제외한 가족 전원(배우자 및 직계 존·비속)의 합의를 의무화하다 보니 증조부와 증손까지 포함된다. 많게는 십수 명의 사인을 받아야 하고, 연락 끊은 손자를 못 찾아 발을 구르는 일까지 벌어진다고 한다. 이 얼마나 비현실적인가. 가족 범위를 1촌 이내 직계 존·비속으로 좁히거나 미국처럼 법정대리인 제도를 활용하는 방안 등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네 가지로 한정된 연명의료 대상 확대도 필요하다. 체외 인공심장기계인 ‘에크모’의 경우 인공호흡기보다 몇 배는 더 고통스럽다고 한다. 그런데 인공호흡기를 떼어내는 것은 되고, 에크모는 안 된다는 건 모순 아닌가.

연명의료 중단 결정 기구인 병원윤리위원회 운영도 개선해야 한다. 중환자실이 있는 전국 병원 151곳과 요양병원의 99%, 157개 시·군·구에는 윤리위가 없어 존엄사 자체가 불가능하다. 유기적인 가동이 절실하다. 더불어 전체 말기 암 환자의 10%만 이용 가능한 호스피스 시설 확충에도 팔을 걷어붙이기 바란다. 선진국은 50%가 넘는다. 환자의 품위 있는 생의 이별도 국가가 돌보는 시대다.